큐레이션이란 용어의 전유와 권력 의지
Everyone’s a Curator Now
When everything is “curated”, What does the word even mean?
Lou Stoppard. New York Times. 2020. 3. 3.
지난 2020년 3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큐레이터 루 스토퍼드의 기고문 제목입니다. 이 제목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죄다 ‘큐레이터’고 모든 게 ‘큐레이트’ 된다면, 도대체 큐레이트란 말은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입니까? 이쯤 되면 영어 관용어구 “Everything is Nothing”이나 불교 용어 ‘색즉시공’이 떠오를 지경입니다. 만물큐레이션설로 단결하는 우주를 통해 심오한 불교철학의 세계로 빠져들다는 게 아니라면, 전문영역의 용어(jargon)로 시작한 큐레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용어(term)로서의 정확한 정의(definition)도 없이 종개념 어휘를 적당한 유개념의 대체어로 쓰는 이 황당한 언어생활에는 ‘대략 난감’함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황당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북큐레이션입니다. book과 curation을 합성한 단어로, 전유(專有, appropriation)와 재전유 과정을 거치면서 의미가 바꿔었습니다. “개나 소나 큐레이션”이란 용례가 자리 잡은 뒤에는, 북큐레이션이란 무엇인지 정의도 공유되지 않은 채 여러 의미로 남용되고 있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큐레이션이란 단어의 전유 과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북큐레이션이란 용어의 허위성이 드러나며, 그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것도 드러날 것입니다.
이번 글은 ‘진정성’과 마찬가지로 북큐레이션이란 말이 얼마나 헛헛하게 쓰이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그 어중간한 말장난이 종국적으로 치고 싶었던 장난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이클 바스카는 2016년에 출간한 책, 『큐레이션』에서 “미술 관련 종사자 또는 세련된 도시인이나 쓸 법한 말로 생각하거나 미술관 및 패션 블로그 같은 곳에나 등장하는 표현”으로만 큐레이션을 간주하지 말라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큐레이션에 대해 보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이 개념은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로 불리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큐레이션이 미술계에서 시작해 확산됐다는 생각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 격일 수 있다”는 헛소리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억지를 불식하기 위해, 큐레이션이란 말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쓰이다가 무엇으로 정착했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99년에 출판된 랜덤하우스의 웹스터 컬리지 사전(Webster’s College Dictionary)에는 curate라는 동사도 없고, curation이란 명사도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curate 그리고 curator라는 명사만 올라와 있습니다.
라틴어 동사인 쿠라레(curare, ‘돌보다’는 의미)에 형용사 파생접사 –atus를 결합한 형용사 쿠라투스(curatus, ‘잘 돌보는’이란 의미)는 영어 명사 큐릿(curate)의 어원이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성직자의 의미를 띠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curare에 행위자를 뜻하는 명사 파생접사 –tor가 결합한 명사인 쿠라토르(curator, ‘관리인, 사육자’라는 의미)는 영어 명사 큐레이터(curator)의 어원이 됩니다. 박물관/미술관/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을 뜻하거나 관리직을 의미합니다.
물론 두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도 3가지가 있긴 합니다. 우선 성격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명사형 파생접사 –ship을 결합한 명사가 둘 있습니다. curateship과 curatorship입니다. 한자어로 굳이 바꾸자면 ‘목회자성(牧會者性)’과 ‘학예사성(學藝士性)’ 정도가 되겠지요. 나머지 하나는 curatorial입니다. 형용사 파생접사인 –ial을 써서 ‘큐레이터의’라는 형용사가 만들어졌습니다.
1999년에 만들어진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단어라고 해서 새로이 만들어지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언어란 사회가 필요로 하면 새로이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파생이란 언어의 형태론적 법칙이 힘껏 지원까지 해주는 마당에, 그깟 단어 하나 못 만들어낼까요? 동사파생접사 –ate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curate를 그대로 동사로 사용하고, 여기서 명사파생접사 –ation을 이용해 curation이란 명사를 만들어내면 보다 생산성 있는 언어생활이 가능해질 겁니다. 그렇게 신조어 큐레이트와 큐레이션이 탄생한 것이겠지요.
우선 큐레이터란 무엇인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16세기와 17세기 당시 아주 부유한 수집가들은 이른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또는 분더캄머(WunderKammer)라고 불리는 방을 만들어 과학기기에서부터 고대 유물 조각에 이르기까지 온갖 진귀한 것들을 한데 모아두곤 했다. 그리고 그 수집품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하지 않도록 돌보는 것은 하나의 직업이 됐다.
- 마이클 바스카. 『큐레이션』. 예문아카이브. 2016. 91쪽
최초의 용례는 단순히 관리인이란 의미로 쿠라토르의 일이 시작된 듯합니다. 그러다가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진 루브르 박물관이 근대적 기획(modern institution)으로 작동하면서, 박물관 종사자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왕가 소유의 재산이었던 예술품을 국유화하고, 그 국유재산을 관리하면서 인민에게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를 담당하는 새로운 직역이 생긴 것이죠.
프랑스어로 박물관 종사자들은 콩세르바퇴르(conservateur)입니다. 말 그대로 콩세르베(conserver, 보존/유지하다는 뜻) 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1818년에 프랑수아 르네 드 사토브리앙 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이 <Conservateur>라는 잡지를 통해 보수주의적 정치 성향을 드러낸 이후로, 보수주의자란 의미로도 쓰이게 됐습니다. 영국에서도 conservator(컨저베이터)를 씁니다. 미국에서는 컨저베이터와 큐레이터의 미묘한 차이를 두고 있는데요, 보존전문가를 컨저베이터, 전시기획자를 큐레이터 정도로 구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학예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 명칭에서부터 그 직역이 추구하는 바가 잘 드러납니다. 콩세르바퇴르는 ‘보존’에 방점이, 큐레이터는 ‘관리’에 방점이, 학예사는 ‘연구’에 방점이 찍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는 약탈문화재가 넘쳐나 이를 제대로 보존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관 주도의 문화정책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이 ‘학술기관’으로 작동하다 보니 명칭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가 다르다 보니,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야 서로 다르지만, 그 인력을 다루는 방식에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학위를 요구하거나 공인된 현장 경력을 요구하는데요, 프랑스의 콩세르바퇴르나 일본의 학예원, 우리나라의 학예사 제도가 그렇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능사-기사-기능장-기술사 자격 제도와 유사하게 적용됩니다. 높은 학위를 가질수록 높은 등급에 짧은 현장 경력으로 접근(반대로 학위가 낮거나 없을 경우에는 더 긴 현장 경력을 요구)할 수 있다는 거죠. 위계 구조(hierarchy)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어로 번역을 하자면, Artistic Director-Curatorial Director-Senior Curator-curator-Assistant curator 정도의 위계를 보입니다. 우리 학예사 제도의 1급 정학예사-2급 정학예사-3급 정학예사-준학예사의 자격이 대충 그런 위계에 맞춰집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16세기 분더캄머의 관리인이라서 모르겠지만, 21세기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아무나 될 수 없고, 그래서 큐레이터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서는 “the art or profession of a curator”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큐레이터의 업무를 파악하는 것으로 큐레이션의 개념이 쉽게 잡힐 수 있을 겁니다.
큐레이터가 일하는 곳은 보통 박물관(museum)입니다. 무사이 9 자매를 모신 신전을 뜻하는 무세움이란 단어는 통상 박물관으로 번역됩니다. 이 중에서 미술에 관한 박물관을 미술관이라고 부르니, 단순히 미술관에만 한정 지을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럼 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박물관”이란 문화ㆍ예술ㆍ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역사ㆍ고고(考古)ㆍ인류ㆍ민속ㆍ예술ㆍ동물ㆍ식물ㆍ광물ㆍ과학ㆍ기술ㆍ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관리ㆍ보존ㆍ조사ㆍ연구ㆍ전시ㆍ교육하는 시설을 말한다.
2. “미술관”이란 문화ㆍ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ㆍ조각ㆍ공예ㆍ건축ㆍ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관리ㆍ보존ㆍ조사ㆍ연구ㆍ전시ㆍ교육하는 시설을 말한다.
-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약칭: 박물관미술관법)
미술관이 저런 일을 하는 시설이다 보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자료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전시하고, 관련 교육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큐레이터의 역할은 학예 연구, 전시 기획, 소장품 구입 및 관리, 교육의 네 가지로 말할 수 있으며, 오늘날은 미술관과 관람자의 소통과 체험을 확대하는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라고 봅니다.(이지호. <큐레이터십과 관련된 권력>. 한국미술이론학회. 미술이론과 현장 제3권. 2005.1.)
이 업무 내용에서 학술업무를 제외하고 나면, ‘수집-보존-전시’라는 세 가지 활동이 눈에 띄게 됩니다. 이는 미리엄-웹스터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의미, “to select and organize (artistic works) for presentation in (something, such as an exhibit, show, or program)”와도 맞닿습니다. 아무래도 이 지점이 큐레이션, 즉 큐레이터의 일이란 유개념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의 전유 개념은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의 소유와 활용에 주목합니다. 전유는 특정 사회적 맥락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문화 자본을 활용하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개인이나 집단은 사회적 권력을 강화하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던 시기에 미술 시장에는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유명 큐레이터들이 존재했고요. 오랜 미술관 근무 경력을 토대로 여러 국제 전시에서 두각을 나타내, 특정 독립 큐레이터들은 ‘전시권력’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확보했습니다. 하랄트 제만 Harald Szeemann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으로 참여하고,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Hans Ulrich Obrist가 리옹 비엔날레에 콘셉트 큐레이터로 참여하는 등, 스타 큐레이터들이 나타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후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커미셔너(commissioner)나 예술감독으로 중량감을 뽐내는 이들도 많아졌죠. 그렇다 보니 미술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획득한 ‘문화 자본’이 탐나 보이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이들에게 선점되었던 큐레이터란 지위를, 유개념을 통해 일반화하고 전유하는 것으로 여기저기서 권력 의지를 드러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의 권력 의지(Wille zur Macht) 개념에 기대어 본다면 위버멘쉬(Übermensch)를 향한 자기 초월의 의지로 긍정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리 낭만적이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천민자본주의에서 출발한 다소 나이브한 지위 획득 노력에 불과해 보입니다.
첫 번째 전유는 디지털 큐레이션(또는 데이터 큐레이션)이란 개념으로 발현됩니다. 2000년대 초반 월드와이드웹 상의 무수한 데이터뿐만 아니라, 여러 곳의 데이터센터에서 쌓아두고 있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이때 유용한 데이터를 선별하고 분류해서 제공한다는 개념이 ‘수집-보전-전시’의 큐레이션의 개념과 유사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전산실 너드(nerd)들의 작업이 뉴욕 화랑가의 세련된 큐레이터들의 작업과 그리 다를 바 없다는 디지털 큐레이션이란 전유가 발생합니다.
다음은 관련 논문들을 통해 살펴본 디지털 큐레이션의 개념들입니다.
- 수집, 관리된 디지털 자원에 가치와 지식을 부가하거나 추가하여 재사용을 가능하게 함
- 디지털 자원을 수집, 유지, 영구보존, 제공하는 아카이빙 활동.
- 디지털 자원을 수집, 보존, 아카이빙, 제공하는 것.
- 데이터를 생애주기에 맞춰 저장․관리하며 보존, 재사용을 도모하는 활동
이렇게 디지털 큐레이션이란 용어의 전유가 이루어지자, 그 개념에 근거해 또 다른 큐레이션의 개념들이 생겨납니다. 콘텐츠 큐레이션이란 개념이 일반적입니다. “큐레이션은 박물관 미술관 등 예술 분야에서 전시할 작품을 고를 때 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가 넘쳐나자 유용한 정보를 고르고 편집하는 경우 ‘큐레이션’ 개념을 광범위하게 사용한다”는 선언은 일반적이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큐레이션 서비스(Curation Service)는 이용자의 소비 경험을 바탕으로 그 성향을 파악, 이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1대 1 맞춤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단언하기에 이릅니다. 심지어 “무엇이든 넘쳐나는 과잉 사회에서의 소비 경제에 있어 우리가 원하고 필요한 만큼만 취할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균형을 맞추는 역할”이라고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여러 가지 새로운 방식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인정하건 말건 돌이킬 수 없다는 마이클 바스카의 주장에 호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자신들의 일을 재규정하면서 재전유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글을 기고한 루 스토퍼드와 같은 행동이 그런 의미에서 이루어진 것이겠지요.
아무 말 대잔치인 김미정의 『북큐레이션』은 제게 재앙과도 같은 책이었습니다. 이 글을 정리하게 된 이유이며, 그 때문에 찝찝한 채무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 결심이 하나의 글로 결실을 맺기까지 2년이나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정말 많은 논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번역서나 국내 저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큐레이션에 관한 책은 마이클 바스카의 책이 유일한데요, 동의할 수 없는 주장들로 점철되었습니다. 스티브 로젠바움의 『큐레이션』은 콘텐츠 큐레이션에 관한 책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이외의 책들, 그러니까 제목에 큐레이션이 들어가는 대부분의 책들은 큐레이션의 개념에 대한 통찰이 전무했습니다. 마치 진성성을 다루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큐레이션의 개념을 자명한 것으로 규정하고 실재를 규정할 순 없지만 부재함으로써 그 필요를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로 동원하는 개념들은 디지털 큐레이션이나 콘텐츠 큐레이션의 개념들이었습니다.
여러 논문들을 살펴보니, 주로 도서관을 중심으로 북큐레이션이 연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도서관 사서의 업무 자체가 학예사의 업무와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인 듯합니다. 사서 역시 학예연구직이 개설되어 있고, 수서-분류-대출의 업무가 큐레이터의 수집-보존-전시의 프로세스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소장 자료가 풍부한 도서관이라도 모든 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는 재정과 인적자원, 공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컬렉션 개발 관행은 가능한 한 모든 자원을 소장하려는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의 이해관계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자료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제공하려는 목표를 반영한다. 특히 산업화된 세계의 연구자들은 도서관의 인쇄 소장자료는 물론 컬렉션 공유 파트너십과 오픈 엡을 통해 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헤이젠 Dan C. Hazen이 말한 것처럼 ‘정보의 풍요를 이해시키는 것도 도서관의 임무 중 일부’이다. 분야별 자료 지침과 정보 지도를 만들고 종합 검색 수단을 제공하는 큐레이션 활동을 통해서 말이다. 도서관 사서들은 선별적인 구매뿐 아니라 필요시 전략적인 제거 작업을 통하여 전자 및 인쇄 자료가 최신 상태로 유지되고 쉽게 탐색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 앨릭스 홀츠먼, 세라 칼리크먼 리핀콧. <23장 도서관 >.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 교유서가. 2024.
그래서 책과 독자의 연결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민해 보고 있는데요, 이런 시도들이 테마 컬렉션, 테마 도서, 전시 도서와 같은 용어들로 시행되고 있고, 이들을 연구하면서 북큐레이션 용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북큐레이션’의 유형을 살펴보면, 다음 네 가지 유형으로 도서 목록 제공형, 상시 전시형, 오브제 전시형, 프로그램 연계형이 있다는 분석을 의미 있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콘텐츠 큐레이션에서 전유한 일대일 맞춤 서비스 개념보다는 박물관 큐레이션에서 전유한 일대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일반화 서비스를 북큐레이션의 개념으로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2024년 현재 북큐레이션이란 어중간한 말장난은 개념마저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화가의 작품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비평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대중적인 지지도 따르지 않으며, 또 전시 기획자의 눈에 띄지 못하면 대중적인 지지도 받지 못한다. 결국 화가의 예술 작업은 자신만의 아틀리에에 쌓아둘 작품을 만드는 고독한 작업에 머물고 만다.”
- 이지호. <큐레이터십과 관련된 권력>. 한국미술이론학회. 미술이론과 현장 제3권. 2005.1.
이지호는 “미술관의 기능이 1980년대 이전과 달리 더 강회 되고 위상이 늘어나면서 자칫 큐레이터들이 작가들에게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미술비평의 영역이 확보되지 않은 우리 미술계의 상황에서 이들 큐레이터가 비평의 영역까지 장악한 데다가, “무엇보다 전시 기획에서부터 작가 선정 그리고 소장품 구입 선정의 추천권을 갖고 있”어서 막강한 권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선정은 권력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베스트 10' 같은 선정행위를 무척 좋아하는데요, 여기에 '공신력'이라는 권위가 부여되어 있길 기대하곤 합니다. 유튜브나 블로그 콘텐츠를 살펴보면 '개나 소나' 자의적인 선정 권력을 행사합니다만, 그 '공신력'을 문제 삼아 선정행위의 무용성이 반증되곤 합니다. 좀 웃기는 일이지요.
문학권력이란 용어의 탄생 배경에는 이 '선정'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력이 권위마저 얻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등단'이란 제도를 통해 사람을 가려서 문단에 편입시키는 권력, '문학상'이란 제도를 통해 문단 내에서도 상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권력이 출판사 개개의 주관적 발현에서 시작했던 거죠. 하지만 그 과정에 문단 내 권위자들의 권위를 덧칠해서, 그럴듯한 권위의 자가증식을 꾀합니다. 그렇게 '선정'의 과정에 개입하는 권위자들은 권력을 분점 하며 거대한 '문학권력'을 이뤄냈던 것이죠. 그렇다 보니 선정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권위를 공고히 한다는 그 순환구조에 편입하기 위한 노력들은 여러 곳에서 일어납니다. '슬프지만 진실'인 이런 관습을 무심히 보고 넘기긴 어려울 듯합니다.
문학권력이 등단과 문학상 수상을 선정하면서 권력과 권위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가지듯, 큐레이터 역시 전시 대상을 선정하는 것으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권력의 선순환 구조를 갖추게 됩니다. 심지어 작품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화랑의 큐레이터라면 수집가에게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스노비즘(Snobism)은 특정 사회적 계층이나 집단에 대한 동경과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감을 느끼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특정 문화적 취향이나 생활 방식을 고급스럽고 우월한 것으로 여겨 이를 모방하곤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스놉(snob)들은 자신의 소속이나 취향을 통해 사회적 우월성을 주장하며, 다른 집단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서도 살펴본 니체의 권력의지는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충동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권력이나 물리적 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실현, 자기 표현,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투영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스놉들은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종 자신이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고도 합니다. 일종의 변형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작동한다는 겁니다. 엘리트 계층이나 특정 사회적 계층에 대한 소속감이 우월감을 가져오고, 이에 기반해 사회적 차별이나 불평등을 강화합니다. 부르디외적 개념의 전유가 발생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큐레이터의 정체성을 전유해 스스로를 포장하고, 거기서 소속과 배제의 메커니즘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인간의 권력 의지는 니체적 해석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적 마인드’만으로도 충분히 성립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할 수 있는 권력이 생긴다는 것은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데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중에 하나가 ‘권장 도서 선정에 따른 백마진’ 같은 것이 있습니다. 권장도서를 선정하면 해당 도서의 판매가 늘어나니, 그 수익분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해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초기에는 좀 더 낮은 공급율 정도의 특혜로 만족했지만, 욕심이 점점 커지고 탐욕의 자기 합리화가 진행되면서 전체 수익 대비 백마진을 요구했던 겁니다. 선정하는 자가 권력이다 보니 말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것이 이런 갑질은 선정 도서의 품질에 대한 공신력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일이란 점입니다. 갑질을 할 때까지는 권위를 쌓기 위해 제대로 된 선정을 해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북큐레이션이란 작업이 이와 같은 선정 권력을 휘두르기 위한 작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국공립 도서관에서 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는 북큐레이션이라면 더더욱이나 관련성이 낮아집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일지라도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북큐레이션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세종도서’나, 한국출판문화협회의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정도가 ‘선정의 힘’을 보여줄 뿐입니다.
되레 협회의 난립과 자격증 장사가 아직까지는 더 골치 아픈 문제인 듯합니다. 미술계에서는 큐레이터가 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반면에, 북큐레이터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헛된 선전만 늘어날 뿐입니다. 큐레이터란 직함이 주는 반짝거림이나 팔아치우자는 장삿속만 보입니다. 그래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가 편집’과 같은 용어로 표현되던 것이 이제는 죄다 큐레이션으로 바뀐 속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봐야 ‘plan’, ‘editorial work’, ‘design’, 'VMD'처럼 그때그때 유행했던 용어들을 대체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