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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이클 모리스_집단본능

부족적임: 갈라치기 하는 문화적 본능이 우리를 화합시킬 방법

by 안철

마이클 모리스, 집단본능, 전미영 옮김, 부키, 2025.

Micheal Morrice, Tribal: How the Cultural Instincts That Divide Us Can Help Bring Us Together, Thesis. 2024.



어떤 책을 펼쳐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대체로 제목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집단 본능”이란 제목 때문에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집단 본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족 본능”을 다루고 있더군요. 그래도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야인지라 내처 읽었습니다만, 읽으면 읽을수록 또 혼란에 빠지게 되더군요. 문화심리학 서적이길 기대했는데, 점점 경영학의 리더십 분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제야 이 책의 한국십진분류를 확인해 봤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분류번호는 331, 그러니까 사회학으로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어질어질합니다.

책의 원제는 “부족적임: 갈라치기 하는 문화적 본능이 우리를 화합시킬 방법”으로, 집단 collective과는 거리가 멉니다. 인류학적 개념이었던 부족 tribe은 로빈 던바가 제안한 ‘던바의 수’로 정의되곤 합니다. 던바에 따르면, 인간이 안정적으로 사회적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인지적 한계치는 150명 수준으로, 이 수치는 인류학적으로 전통적 부족 tribe의 평균 규모와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 보니, 집단 본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영어 표현은 여러 가지가 됩니다. 부족본능이라 번역하는 게 자연스러울 Tribal instinct를 시작으로, 군집 본능 herd instinct, 동조 conformity, 집단의식 collective mind, 군집 의식 hive mind 등이 심리학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collective mind는 에밀 뒤르켐의 collective consciousness 개념을 시작으로 최근 collective intelligence에 이르기까지 꽤나 잘 정리된 개념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하는 진화인류학자 조지프 헨릭의 견해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 비밀이 바로 이 ‘집단 지성’이라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혼재되는 개념에 번역이 널을 뛰었을 테고, 결국 출판사에서는 낯선 ‘부족’ 개념보다는 쉽게 이해되는 ‘집단’으로 건너뛰었을 겁니다. 특히나 21세기 미국 언론에서 부족주의 tribalism에 대한 새로운 용례를 사용하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는 뉴라이트 사관의 이영훈 같은 자들의 ‘종족주의’란 용어가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었기에 그 부정적인 어감도 상쇄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제목 하나만으로도 짧지 않은 문장들을 써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출판사의 ‘작명’이 개판이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그리하여 제목에 의한 프라이밍 priming이 독서에 얼마나 큰 방해가 됐는지도 설명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 책은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체인지 메이커 change maker들이 활용하는 문화 코드의 숨은 역학 dynamics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서론, ‘The Riddle of Hiddink’는 제법 길게 하나의 챕터를 이루게 됩니다. 거스 히딩크가 한국 국가대표팀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 영웅이 되고 싶은 충동, 전통을 유지하려는 열망 등 부족 동기”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하여 체인지 메이커가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33쪽
히딩크의 코칭 정책은 한 번의 대회를 겨냥해 하나의 팀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파급 효과는 훨씬 광범위했다. 새로운 사회 패턴이 축구 경기장에서 관중석으로, 거리로, 그리고 교육, 기업, 정부 기관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문화 변화의 힘과 위험성을 동시에 말해준다. 문화는 유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다. 때로는 완전히 급변할 수도 있다. 문화 패턴은 촉발되고 인코딩 되는 방식 때문에 때로 도미노 효과를 일으키며 확산되기도 한다. 따라서 체인지 메이커는 변화를 시작하는 방법뿐 아니라 변화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그 자체로 어떻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3가지 기본적인 “부족 본능 tribal instinct”, 그러니까 ⓐ 일상적인 추론과 행동에서 동료들의 패턴에 맞추려는 충동으로서의 “동료 본능 peer instinct”, ⓑ 영광을 향한 열망, 헌신하려는 의지로서의 “영웅 본능 hero instinct”, ⓒ전통에서 위안을 느끼고 전통을 유지하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것으로서의 “조상 본능 ancestor instinct”을 1부에서 설명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부족”이란 의미는 “공유 문화를 통해 활성화되는 공동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로, 정체나 원시성과 연관 짓는 오랜 관념을 떨쳐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공유된 이념, 전문성 또는 미학으로 결속된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의미와 동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동굴 벽화를 그렸던 씨족에서부터 오늘날의 북클럽, 기술 기업, 민족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동체를 지배하는 일반 원칙을 찾는 데 이 개념을 사용한다”라고 소개합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부족적 직관이 반드시 이 지구와 우리의 모든 분열을 치유할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희망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8만 년 전의 조상들조차 분명하게 알았던 한 가지 사실, “지금 과제들은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우리는 부족 안에서 함께할 때만 번영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만을 하는 ‘경제인 Homo economicus’이 아니라, 때론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협력하는 삶의 태도를 보이는 ‘부족인 Homo tributus’이라고 말도 덧붙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문단에서 인용한 라틴어 경구를 되새김질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별들은 우리를 이끌지만 우리를 구속하지는 않는다.
astra inclinat, sed non obligant.



1부 Tribal Trigger: 우리를 부족 본능으로 이끄는 3가지 본능

세 가지 부족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방아쇠는 부족 표지 tribal sign, 부족 상징 tribal symbol, 부족 의식 tribal ceremony라고 정리합니다.

동료 코드의 본질은 ‘동기화 Syncing up’입니다.

저자는 투르카나호 호모 에렉투스 발자국 화석은 팀을 이룬 활동의 증거라고 봅니다. “그들의 위대한 혁신은 주먹도끼가 아니라, 사냥대, 채집대, 조리팀이었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언어를 통한 통한 의사소통”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나 인간의 뇌는 “복잡한 사회적 인지를 위한 선천적 배선 덕분에” 사회생활을 의외로 쉽게 이어갈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독립적인 이성적 행위자가 아니라, 동료 패턴을 따르게끔 배선된 부족적 생물”이라고 선언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동료 본능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정상적 또는 전형적 경로로 향하도록 한다”라고 봅니다. 우리가 동료 코드에 끌리는 이유도 “확실성에 대한 갈망”이 원인으로, “의견 일치를 통해 확실하다는 감각을 얻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많은 경우에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보다는 그 선택을 올바른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데요, 최적화보다 조정 등 실행이 더 중요하는 겁니다.

이때 동료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방아쇠가 부족 표지 tribal sign로, 언어나 복장의 형태가 강력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리콴유가 싱가포르를 개혁할 수 있었던 것도 공용어로서의 영어와 공무원에게 강제한 하얀색 유니폼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합니다. ‘문화 카멜레온 현상’에서 이중언어사용자가 더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이나, 군대에서 군복을 입히면 ‘군기가 바짝 드는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웅 코드의 본질은 ‘거인 죽이기 Slaying Giants’입니다.

저자는 매머드의 정면에서 용감하게 창을 던진 하이델베르크인처럼, 골리앗과의 정면 대결을 자청했던 다윗처럼, 무모할 정도의 용감한 행동이 영웅 본능의 본질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때, “공동체에 기여하려면 구성원들이 어떤 행동을 승인하고 칭찬하는지, 반대로 어떤 행동을 거부하고 경멸하는지 알아차려야” 하는데, 이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영웅 코드”가 됩니다. 능력주의를 배격하는 일부 부족 사회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부족원에게 겸손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그가 단독으로 사냥해 온 사냥감조차도 더 많이 배분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든 그런 ‘영웅’에게는 확실히 보상을 합니다. 물적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면, 명성이나 사회관계에서의 배려와 같은 심리적 보상을 제공한다는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대의를 위해 커다란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흔히 관계와 소속감에 의해 강화됩니다. 심지어 테러 행위조차 부적응자인 “고독한 늑대”가 아니라 급진화된 네트워크로 탄탄하게 연결된 구성원이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은 이유입니다.

이때 영웅 본능 시스템은 학습 휴리스틱 learning heuristic을 활용합니다. “가장 사회적 지위가 높은 구성원들의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편리한 ‘지름길’이 됩니다. 개인이 공동체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은 공동체가 높이 평가하는 전형적인 자질을 갖추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영웅 코드는 부족 상징 symbol에서 유발된다고 봅니다. 공동체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한 표지로, 부족 상징이 집단 정체성과 이상을 촉발하면 우리는 세상을 “우리” 대 “그들”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사례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들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사명과 깃발 로고는 다른 소매은행들을 인수할 때는 잘 통했는데, 투자은행 메릴린치에서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조상코드의 본질은 ‘참배하기 Visiting the Temple’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후기 석기시대의 호모 사피엔스는 석재 거래상, 유혹자, 신전 건축자로서 다른 씨족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인근 씨족과 점점 더 많은 “공통 기반”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때 집단 지식이 후대로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전통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통이 교훈을 보존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전통을 암기식으로 배운 뒤에 강박적으로 복제”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른들이 동시에 의식 시범을 보이면서 집단적 제도라고 알려주면 아이들은 암기식 학습과 엄격한 재연이라는 의식 모드에 몰입”해서, “경건하고 강박적인 반복을 통해 일상이 의례화”된다는 겁니다. 많은 공동체에서 극단적인 입단식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집단에 대한 일체감과 의무감을 구축하곤 합니다. 특히나 혐오감을 주는 의례는 헌신을 증명하고 이를 통해 헌신을 확고히 하는 ‘값비싼 신호’가 됩니다. 이를 에밀 뒤르켐 Emile Durkheim은 “집단 열광 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상 코드를 소환하는 상황 단서는 “부족 의식 tribal ceremony”입니다. “집단의 과거를 참조해 연출된 공개 행사”로 가톨릭 미사, 그리스식 결혼식, 공화당 전당 대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2부 Tribal Signals: 부족 본능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저자는 사람들의 문화 코드들을 형성하는 정보를 “부족 신호 tribal signal”라고 명명하고, “각각의 부족 본능은 각기 다른 부족 신호에 반응해 업데이트된다”라고 설명합니다.


먼저, 동료 코드는 “우세 신호 prevalence signal”에 의해 반응합니다.

우세 신호란 특정 행동, 신념, 규범, 태도 등이 집단 내에서 얼마나 일반적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지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를 의미합니다. 미국의 금주법 Prohibition이 제정될 때에는 금주가 우세 신호였지만, <리터러시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서 여론 조사를 한 이후에는 음주가 우세 신호로 지위를 회복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 데이먼 센톨라 Damon Centola를 인용해, “집단은 상호작용 과정에서 조율에 대한 압력 때문에 관습에 안주하지만, 대안적 관행에 확고하게 전념하는 ‘활동가들’이 등장하면 그들의 영향력이 집단의 관습을 뒤흔들고 아예 뒤집어놓을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센툴라는 이런 일을 일으키는 ‘임계 질량’이 구성원의 약 25%임도 발견했습니다. 25%를 넘어가게 되면, 대안 관행이 기존 관행을 바꾸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죠.

그리고 “소수 의견의 영향력은 빈도뿐 아니라 눈에 띄는 정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도 봤습니다. 쉽게 말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거죠. 금주 서약을 한 미국인은 전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서약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눈에 띄었기에, 금주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건 아닙니다. 우리에겐 “과도한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한 심리적 방어가 존재”합니다. 과유불급이란 거죠. 특히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상주의적 경향이 있어서, “자기들의 말을 들으면 사실에 따라 정보를 얻고 이성으로 설득되리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쓸데없이 반감을 사는 경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되레 막으려던 행동을 우세 신호로 전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영웅코드는 명성 신호 prestige signal에 의해 반응합니다.

명성 신호는 특정 개인이 집단 내에서 지위, 존경, 능력, 전문성 등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로, 단순한 권위(authority)나 힘(force)과는 구분되며, 능력과 존경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리더십과 관련됩니다.

국산품 사용과 검소한 생활을 통해 모범을 보인 마하트마 간디나, 기업 혁신에 성공한 오길비, 나델라, 나야르 같은 경영자들이 그 예가 됩니다. “텍사스를 건드리지 마라 Don’t mess with Texas”와 같이, 적절히 유명인을 활용해 성공하는 캠페인이 있는 반면, 교도소를 동일 지역 출신 젊은이들의 주요 사회화 기관으로 만들어 버린 ‘삼진아웃 법’과 같은 실패 사례도 존재합니다. 사이비 종교나 군대 역시 고유한 이상을 심어주기 위해 사회적 상호작용과 명성 신호를 통제합니다.


조상 코드는 선례 신호 precedent signal에 반응합니다.

선례 신호는 특정 행동, 규범, 판단, 관행 등이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수행한 ‘선례’를 보여주는 신호로, 개인이나 집단이 향후 의사결정이나 행동을 할 때 참고하는 기준이 됩니다. 쉽게 말해, “이전에 사람들이 이렇게 했으니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사회적 학습·모방을 촉진하는 신호란 겁니다.

따라서 선례 신호는 새로운 관습을 도입하거나 기존 루틴의 의미를 바꾸는 데 사용될 수 있다. “현재 활동에 부족의 과거와 연관성을 부여해 전통적인, 따라서 경외할 가치가 있는 의미 있고 중요한 사안으로 프레이밍 framing”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역사와 현재와의 접점을 알고 싶어 합니다. 인류학자들은 우리는 누구의 후손이며, 어떤 전통이 집단을 정의하는지에 대한 공유 서사에 극적인 변화가 드러나는 것도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설득력 있는 선례 신호를 만드는 2가지 서사 속성은 고대성 antiquity과 일관성 consistency이라고 말합니다.

고대성은 “허술한 것은 오래 살아남을 수 없으니, 오래 살아남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이란 추론에 근거합니다.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이 제안한 개념인 ‘만들어진 전통 invented tradition’처럼, 영국 왕실을 둘러싼 화려한 행사가 그런 기능을 합니다. 모리스 알박스 Maurice Hallbwachs의 ‘집단 기억’도 참고할 만한 개념입니다. 알박스는 기억이 개인의 내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종교, 학교, 직장 등 다양한 사회적 집단의 틀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기억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규범에 의해 구조화된다는 것입니다.

일관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고도로 일관된 선례는 현 상황과 몹시 유사하기에 더 정확한 구속력을 갖”게 되며, “이를 따르는 것은 집단 정체성을 선명하게 만”듭니다. “선택적 회상 selective recall”과 “공명 프레이밍 resonant framing”을 통해 강화하는데, “리더는 자신이 선호하는 계획과 유사한 과거의 특정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구속력 있는 선례에 따른 의무, 곧 집단 정체성에 긴요한 것으로 합리화”하며, “과거에서 익숙한 부분들과의 일관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프레임을 구성”합니다. 그 사례로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링컨은 워싱턴의 용어와 타이밍을 적절히 차용해 자신이 새로 정한 휴일이 90년 전 워싱턴이 보증한 것처럼 만들었다”라고 설명합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가 만든 진실화해위원회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에 우분투 ubuntu 정신을 차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거죠.



3부 Tribal Ripples: 우리를 지켜준 본능이 우리를 위협할 때

물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같은 곳에 계속 돌을 던진다고 해서 똑같은 파문이 이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공한 계획과 비슷한 전략을 사용해도 어떤 계획은 실패하곤 합니다.

에콰도르에서 시간 엄수 캠페인을 벌인 결과, 한 곳에서는 성공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실패했습니다. 강력하게 진행되었지만 실패한 키토의 캠페인과 달리 암바토의 토착 운동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점진적으로 단계를 밟았다는 점이 성공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우선 습관을 바꾸기 위한 우세 신호를 보냈고, 다음에는 새로운 이상을 심어주는 명성 신호를 보냈으며, 이어 전통과 제도를 만들기 위한 선례 신호를 보냈다”는 겁니다. “이 순서에서 각각의 변화는 다음 변화를 위한 길을 닦”았고, 이런 일련의 단계를 거쳐야 이 같은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거죠.

미국의 티 파티 Tea Party 운동도 그렇습니다. 억만장자 코크 Koch 형제의 재단, ‘번영을 위한 미국은 Americans for Prosperity’에 의해 시작되지만, “그들이 훈련시킨 조직책들은 각자의 지역 사회로 돌아가 모임을 열고 납세자의 진짜 걱정거리를 파고들었다”습니다. 성공적인 풀뿌리 운동 grassroots movement이 된 것이죠. 물론 풀뿌리 운동에 대항한 가짜 풀뿌리운동, 아스트로터핑(astroturfing)도 성공 사례를 보이기도 합니다.

경제학자 제프리 색스 Jefferey Sachs의 경제 정책이 폴란드에서는 성공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실패했던 것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며, 10년에 걸친 레고의 재창조 드라마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독성 부족주의 toxic tribalism의 등장 또한 ‘부족적 파문’의 하나입니다.

“선거 결과 부정, 의회 교착 상태 등 양당제 기능 붕괴는 단순히 정부 기능을 저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약화”시키는데,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민주주의 종말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하며 독성 부족주의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와 같은 레토릭이 같은 용례가 될 듯합니다.

저자는 “독성 부족주의 비유는 저널리즘을 다채롭게 만들지만 정확한 이해나 실용적 해결책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하는데요, “부족 본능에는 외부인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에 “동료 본능적 순응성이 핵심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라고 인정하긴 합니다. 이 동료 본능은 “주거 공동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당파성 거품 bubble을 일으켰고”, “이 거품은 우리의 의견을 재확인해 주는 뉴스와 의견을 가진 동료들로 우리를 둘러싸고, 반대되는 관점으로부터 절연”시켰으며, “에코 효과를 내는 反響室이 되어 순응적 표현을 촉진하고 동료의 지지 반응을 제공”했다고 분석합니다. 그렇게 ”동료 본능에 따른 순응 학습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믿음이 현실을 직접 반영한다고 생각“해서, 잘못된 예측을 낳는다고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에 대한 뒤틀린 인식을 형성”합니다. 저자는 이것이 인식론적 부족주의 epistemic tribalism라고 명명합니다.

또한 인간은 “모든 인류가 아니라 우리 씨족이나 우리 공동체에 베풀도록 배선되어 있”는데, 이는 편협한 이타주의 parochial altruism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내집단에 대한 관용은 항상 차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부족 관용이 더 넓은 정의를 가로막는다는 뜻에서, 영웅 본능의 이런 전이를 윤리적 부족주의 ethical tribalism라고 부릅니다. “사정에 따라 규칙을 바꾸거나 같은 부족의 누군가에게 유리하도록 판단하는 윤리적 부족주의는 ‘차별’이 아니라 ‘친절’로 인식”됩니다. 따라서 “분노, 악의, 불쾌감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는 거죠. 명백한 차별 행위와는 다른 양태이지만, “윤리적 부족주의는 불평등을 영속화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 문제를 강조하는 편견 교육은 내집단 편애라는 덜 인식된 문제를 부지불식간에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전통을 유지하려는 조상 본능 또한 ‘독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전통주의 traditionalism의 위험은 절대주의 absolutism와 흑백 사고 black-and-white thinking”에서 시작하는데, 이는 “도덕적 확신을 낳고 부수적인 피해를 변명”하는데 복무하게 됩니다. “평화, 사랑, 화합을 옹호하는 종교가 그토록 자주 가장 잔인한 폭력을 조장하는 이유도 전통 수호의 중요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전통이 오래될수록 더 긍정적으로 느끼지만 경쟁 집단의 전통에 대해서는 오래될수록 더 위협을 느낀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소수 집단이 사회의 다수와 종교나 이념을 공유하지 않으면 폭력적인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거죠.

저자는 “갈등은 이 책에서 살펴본 3가지 기본 부족 본능에서 비롯된다”라고 지적합니다. “당파적 맹목성은 거주지 분류와 온라인 반향실에 의해 지나치게 강화된 동료 코드 순응성에서 나온다”라고 지적하면서 인식론적 부족주의 사례라고 강변합니다. “민족 불평등은 동족에게 베풀고 싶은 충동과 그 중동을 가속화하는 채용 절차에서 발생”하는데, 윤리적 부족주의 사례라고 설명합니다. “종파 극단주의는 전통에 대한 세뇌, 지각된 위협, 매혹적인 의식을 통한 선동에서 발생”하는데, 실존적 부족주의의 사례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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