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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랑B Oct 09. 2021

바이러스를 이기는 완벽한 방법

로라 스피니, <죽음의 청기사>

 오늘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수는 1,953명이다. 누적 확진자 수는 33만 명을 향해 가는 중이다. 전 국민의 77.7%가 1회 이상 백신 접종을 받았고 정부가 주째 사회적 거리두기높은 단계유지하고 있는데도 확진자 수는 좀처럼 줄어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신 효력을 무화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잇따라 출현하는 데다 돌파 감염 사례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의 공존을 뜻하는 '위드코로나'가 언급되는 이유다. 이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봉쇄 정책을 유지하면 경기 침체는 물론이고 판데믹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왜 인간은 바이러스 앞에 이토록 무력할까? 천연두를 종식시키고 에이즈를 생활질병 수준으로 크게 완화한 의학은 왜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을 약화하지 못할까? 건강했던 젊은이가 백신 접종 6일 만에 사망하는가 하면, 코로나19 감염에서 회복한 사람들은 기억력 감퇴와 집중력 저하, 무기력감, 우울감 같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병에 걸렸던 사람들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이들도 오랫동안 일상 활동에 제한을 받은 탓에 코로나 우울을 겪는다. 병으로 죽기도 하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들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100세 시대 준비가 큰 화두였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게, 사람들은 참으로 빠르게 죽어가는 듯이 보이기만 한다.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다른 것으로부터 안전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죽음에 관한 한 우리 인간은 모두가 방벽이 없는 도시에 산다."



 로라 스피니의 <죽음의 청기사>는 1918년에 발병해 약 2년 간 세계를 휩쓴 스페인독감에 관한 총체적 기록이다. 원제는 <Pale Rider>.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서부극이 아니라 성서의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기수 중 하나로,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는 네 가지 재앙 중 질병을 상징하는 말이다. 대체 이 스페인독감이 어땠기에 이런 제목을 붙였나 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이해가 되었다. 스페인독감의 치명률은 2.5%. 계절성 독감 치명률이 0.5% 이하라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비율이다. (코로나19 치명률은 2%가량이다.) 감염자는 5억 명, 사망자는 최소 5000만 명에서 최대 1억 명. 유행 초기에는 증상이 다른 호흡기 질환과 유사했때문에 지금도 정확한 사망자 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방역 대책도 백신도 없었 당시의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는 가족과 이웃을 보면서 어떤 공포를 느꼈을지는 상상할 있다. 우리도 매일같이 일일 확진자 수에 일희일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로라 스피니의 <죽음의 청기사> 전자책. 종이책 표지는 창백한 푸른색이어서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이 책에 따르면 독감의 기원은 2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에 독감과 비슷한 병이 유행했다는 문헌기록이 있는데, 당시에는 독감이라는 병명이 없었고 히포크라테스가 에피데믹(epidemic)이라용어로 질병이 퍼지는 현상명명했다고 한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위에 인용한 기록을 남긴 이유다. 그 병에 걸렸다 하면 시신처럼 얼굴이 푸르뎅뎅해져 때에 따라서는 출혈을 일으키며 숨이 끊어진 주검그야말로 산처럼 쌓였으므로.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뒤 유행병에 관해 신뢰할만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때는 16세기로, 1557년 잉글랜드에 유행병이 돌아 무려 국민의 6%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행병은 특정 지역에서 특정 질병의 발병 수가 이따금 급작스럽게 증가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스페인독감처럼 한 지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퍼진 범유행병(Pandemic)은 증상이든, 감염원이든, 감염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든 간에 유행병과는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다. 로라 스피니는 이 점에 관해 의학과 역학과 보건의료학을 망라하며 여러 학설을 제시한다. 이를 종합하면 스페인독감 바이러스가 상이한 바이러스 간 결합으로 인해 강한 독성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다. 사람끼리 사람을 낳는 것처럼 바이러스끼리도 바이러스를 낳는데,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는 인체 내에서 새로운 바이러스 생산을 막는 면역물질인 인터페론을 속여 바이러스를 차단하지 못하게 했다고 하니 정말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1918년은 전쟁이 한창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유럽 국가들은 몸속에 병원체를 지닌 사들을 세계 곳곳에 보냈고, 사람들은 이를 까맣게 모른 채 전장에서 귀환한 병사들을 위해 환영잔치를 열었다. 바로 이것이 스페인독감의 범유행을 초래한 주요인이다. 병의 발생 자체는 우연이지만 병을 키운 주범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1930년대에 독감의 원인이 바이러스임을 입증했던 영국과 미국 연구진은 스페인독감이 돼지가 사람에게 옮긴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을 수 있다고 주장해서 동료들을 놀라게 했다. 그 후 사람 독감과 돼지독감의 염기서열을 비교한 결과 그들의 의심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1918년 이후 돼지 사이에 유행하고 있었던 아형 바이러스 H1N1이 2009년 사람들 사이에서 변형된 형태로 재발했고, 그것이 21세기의 첫 범유행성 독감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것의 별명이 '돼지독감'이었다. 그렇게 부른 이유는 뻔했다. 하지만 더 긴 기간으로 봤을 때 독감을 사람에게 전파한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돼지는 단지 매개였을 뿐.



 독감 바이러스는 보통 거위와 오리 같은 조류에게서 돼지를 거쳐 사람에게 옮는다고 알려졌다. 2002년에 유행한 사스는 사스-코로나 바이러스가 관박쥐에서 사향고양이로, 사향고양이에서 사람으로 전파되어 생긴 질병인데, 야생에서 마주칠 일이 없는 관박쥐와 사향고양이가 바이러스를 옮길 만큼 지척에 있게 된 원인은 인간의 분별없는 야생동물 사냥이다. 어디 그뿐인가. 거위, 오리, 닭 등의 가금류를 길들인 것도, 돼지와 소를 가축으로 기른 것도 인간이다. 돼지의 경우 최소 5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사육했고 인류는 1만 2천 년 전에 농업혁명을 일으키며 한 지역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5000년이라는 세월은 조류 내장에 서식하던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을 새로운 서식지로 골라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인간은 농경 시작 이후 인구수가 급증했고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복닥거리며 살았으므로, 바이러스에게는 더없이 이상적인 숙주인 셈이다.


 전 세계 인구는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년 사이에 70억으로 폭증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비행기며 배, 기차를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 글로벌 경제는 많은 국가와 지역을 직물처럼 얽히게 하여 언제 어디서든 원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세계를 재편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순식간에 전 지구로 확산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이러스 유전자인 RNA는 DNA에 비해 화학적 안정성이 떨어져 복제 오류가 잦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이가 발생할 수 있고, 인류는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이기는 지식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사실상 인간이 범유행병에 대항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바이러스의 진화 경로를 부단히 예측하여 때에 맞는 백신을 개발해 될수록 많은 사람에게 맞추고, 기본 위생수칙을 잘 지키는 것뿐이다.



스페인독감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또 다른 범유행성 독감이 불가피하게 찾아오리라는 것, 다만 그로 인해 1000만 명이 죽느냐 1억 명이 죽느냐는 그것을 마주한 세계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서 무엇을 배우게 될까? 아마도 사람마다, 지역마다, 계급이나 문화에 따라 다를 것이다. 코로나19가 한발 물러난 뒤의 삶도, 그 후에 변화될 세계의 모습도 단지 미약하게나마 추측해볼 따름이다. 미래는 판데믹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사람들이 스페인독감에 맞서 싸운 경험에 의거해 의역학과 보건의료분야를 발전시키고 백신을 개발하고 세계보건기구를 출범시킨 것처럼. 인간은 새로운 질병탄생과 만연을 막지도 없애지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공동의 삶에 책임을 다하는 한 미생물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어낼 날은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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