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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랑B Sep 11. 2021

책 속의 책 읽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김이경, <책 먹는 법>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모르는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시는 엄마 말씀에 따르면, 다섯 살 무렵부터 엄마에게 책을 들고 가서 읽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당시 우리 집에는 한국 전래동화전집과 계몽사에서 출간한 디즈니 명작동화 세트가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 속의 나는 그 책들을 표지가 닳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몇몇 책은 표지, 제목,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책에 진심인 꼬마 독서가였던 셈이다.



얼마 전에 복간된 계몽사 디즈니 명작동화전집. (출처:예스24)


 

 가끔 궁금해한다. 그 어린 나이에 책이 뭔 줄 알고 좋아했던 걸까? 내 기억에 엄마도 아빠도 책을 자주 읽으시는 편은 아니었다. 내가 워낙 책을 좋아하니까 사달라고 하면 사주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유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첫째, 집에 책이 있었다. 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둘째, 우리 부모님은 독서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되 강요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유익한 활동이어도 강제성이 부여되면 하기 싫은 법. 나도 부모님이 억지로 책을 쥐어주며 읽으라고 강요하셨다면 책 읽기를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 예로, 나는 독후감 쓰기를 무지무지 싫어했다. 학창 시절 단골 숙제였기 때문이다. 혼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책 한 바닥을 꽉꽉 채워서 독후감을 쓰고 나면 책 읽으면서 느낀 즐거움까지 반감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첫째가는 독서 철학은 '즐겁고 재미있을 것'인 셈이다. 재미있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꾸준히 하는 활동, 즉 취미가 된다. 고로, 나의 취미는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이렇게 말하면 다들 존경(?)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자기는 책만 펼치면 잠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그걸 취미로 읽느냐는 거다. 그런가 하면 어떤 독서가들은 책을 취미로 읽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강변한다. 사람답게 살려면 당연히 독서를 해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취미가 되냐고. 취미로 책 읽는 사람은 어딜 가나 약간 신기한 존재인 모양이다. 내 입장에서는 나를 대단하다고 여기거나 책 모독자쯤으로 보는 사람들이 신기한데 말이다. 다른 이의 경험을 경험하고, 타인의 견해와 신념을 수용하거나 비판하고, 소설 속 인물의 좌충우돌 인생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독서다. 세상에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김이경의 <책 먹는 법>. 180페이지 남짓한 작고 얇은 책 속에 알찬 내용이 가득하다.



 김이경의 <책 먹는 법>도 그래서 고른 책이다. 제목부터 구미가 당겼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읽은 책에 관해, 혹은 자기만의 독서법에 관해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책은 꽤나 읽음직한 이야깃거리다.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애독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든든하다. 한번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둘도 없는 동지로 곁에 있어주는 느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김이경은 내가 첫손가락에 꼽는 동지다. 나만의 일방적인 사귐이긴 하지만, 독서에 관한 생각이 신기하리만치 비슷해서 책을 읽기 시작한 날부터 나의 가장 좋은 책 동지가 되었다.



재미로 책을 읽다가 그걸로 밥벌이까지 한 제 경험에 비춰 보면, 독서가 취미인 것은 우습고 한심한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일인 듯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입니다. 직업도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권하는 마당에 아무리 책 읽기가 중요하다고 죽기 살기로 의무감으로 읽을 게 뭡니까? 좋아서 읽으면 그만이지.



 '작가가 내 속을 들여다봤나?' 하고 생각했던 구절이다. 사람마다 의약 처방이 다른 것처럼 책도 사람마다 취향이나 수용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꼭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부작용이 나기 쉽다. 권장도서목록을 따라 독서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지만, 내 경험상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최고다. 일단 재미를 느껴야 책에서 뭘 얻어도 얻는 법이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독서는 지루하고, 지루하면 책 내용은커녕 책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로 하는 독서에는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바로 편독(偏讀)이다. 편독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세상에 알차고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분야 책만 읽느라 새로운 분야 책을 읽는 즐거움을 놓치면 얼마나 아까운가 말이다. 나는 학창 시절 세계문학과 추리소설 외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편독가였다. 덕분에 SF의 무지개 같은 다채로움과 역사, 철학의 광대한 지식을 기억력 짱짱한 10대에 접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스럽다. 심지어 혀를 깨물 만큼 싫어했던 수학, 과학도 그 분야 대가들의 책으로 읽으니 다른 차원을 모험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수학 교과서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먼저 접했으면 나는 일찌감치 수포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재미로 하는 독서가 품은 함정은 또 있다. 삶과 독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재미를 얻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어느 정도 독서 연륜이 쌓이니까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책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애써 책에 줄 긋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건만, 뭔가가 2% 부족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책을 읽은 뒤에 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책을 세속적 성공이나 명예를 얻으려고 읽은 것은 아니다. 그런 걸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인데, 아무리 돌이켜도 그런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아서 몹시 실망하던 차<책 먹는 법> 다음 구절에서 머리가 트이는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



요리법이 궁금하면 요리 책을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는 철학 책을 펼치듯이, 책이란 알고 싶은 것,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도움을 얻으려 읽는 것입니다. 즉 독서란 살아가면서 생기는 구체적 물음에 실용적인 해법을 찾는 수단이지요. 그러니 질문이 있을 때 읽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독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고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나는 머릿속에 지식을 쌓고 싶어서 책을 읽은 적은 많아도 살면서 생기는 질문을 품고 책을 읽은 적은 없었다. 사회, 타인, 관계 등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관해 크고 작은 의문이 생기는 경험은 누구나 한다. 그걸 끝까지 붙잡고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느냐 아니냐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독서와 속 빈 강정에 불과한 독서가 나뉘는 법인데, 나는 '독서는 뭐니 뭐니 해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중요한 원칙을 놓친 것이다. '이 기로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떡해야 하지?' 같은 질문을 갖고 관련된 책을 골라 읽으면 독서하는 재미는 자연히 따라온다. 아니, 그런 독서에는 재미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질문을 갖고 책을 읽었는데 새로운 질문이 생기거나 의문이 쌓일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또 다른 책을 읽는다. 때로는 독서에서 답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그 답에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 또다시 책을 찾아 읽는다.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을 수도 있고 같은 주제에 관한 다른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또는 그 책의 저자가 추천한 책이나 책을 쓰면서 참고한 책을 읽어보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책 속의 책 읽기'라고 부른다. 즐겨 보는 교양 프로그램 제목을 따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도 부른다. 이야말로 독서 저변을 넓히고, 책 읽는 재미와 독서의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어제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삶의 동력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요즘이다.



책을 제대로 잘 읽으려는 모든 노력은 지금 내 삶의 문제에 제대로 잘 응답하려는 간절한 요구에서 나옵니다. 독서란 다만 그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질문은 열쇠다. 그리고 책은 자물쇠다. 열쇠를 제대로 쓰려면 거기 맞는 자물쇠를 찾아야 한다. 많고 많은 자물쇠 중에서 내가 가진 열쇠에 맞는 것을 찾으려면 되도록 많은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봐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힌 문이 활짝 열린다. 그 자물쇠가 반드시 하나라는 법도 없고, 당장 찾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자물쇠를 찾는 과정은 때로 고통스러워도 결국 충만한 삶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축축 처지는 날에도 기꺼이 책을 펼쳐 치열하게 읽고 질문하고 고민한다. 제대로 읽고, 제대로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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