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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May 21. 2021

비 오는 날

잠을 자고 있는 새벽부터 비가 내려서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까지 하루 종일 내리는 비.

나는 그런 날을 좋아한다.

이동하기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비 오는 날의 공기와 운치를 사랑한다.

특히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과 더불어 잔잔한 행복이 밀려옴을 느낀다.

산세 가까이에 일부러 다가가고 싶고, 어느 처마 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다.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날 갈 일이 생겼다.

우산을 쓰고 짐을  찾아간 유치원에선 초록들이 나를 반겼다.

그 유치원에서 가장 큰 건 아이들이 쓰는 교실 건물이 아니다. 건물은 작은데 다른 건 다 크다.

특히 아이들이 뛰어노는 커다란 공간이 유치원 전체면적의 70% 정도를 차지하는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사실 그 공간이 마음에 들어서 그 유치원은 선택했다.

원래도 마음에 드는 그 공간이 비가 오는 날 가니 더욱 운치 있고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아닌가.

산으로 둘러싸여서 인지 눈에 초록이 한꺼번에 다가오니 '이건 뭐지'

이런 행복을 맛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이 초록을 보고 초록을 밟고 만지며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도 한 없이 넓어졌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더 여유로운 마음이 드는 건 왜 일까.

자연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주며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있다.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비를 만날 때가 있다.

날씨운 타령을 하며 보통은 맑고 쨍쨍한 날만을 기대하는데 나는 조금 반대다.

특히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예보가 있으면 산간지방으로 간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곳은 '포도호텔'이다.

그곳에 하룻밤 묵을 때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촉촉한 대지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고,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모든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부자가 되어보며

스텔라 한 잔과 더불어 뜨끈한 우동으로 미각의 천국을 맛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테라스로 나가 처마 밑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흙냄새와 비 냄새를 맡으며 제주 막걸리 한 모금한다던가

촉촉한 공기를 느끼며 좋아하는 책을 좀 읽는다.

그러다 책에서 눈을 떼기만 하면 온갖 푸르름과 제주의 정취가 나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다 으슬으슬 추운 느낌이 들면

따뜻한 온천수를 받아서 히노끼탕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휴가가 어디 있으랴.

나는 조금 지치거나 힘든 하루 일과 후에 침대에 누워 비 오는 날 제주의 포도호텔을 생각하며 그곳에 가는 날을 학수고대하곤 한다.

제주 여행을 가게 되면 하루 이틀은 제발 비가 오길 바라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은 미술관 투어도 제격이다.

야외와 연결된 전시도 물론 문제없다.

우산을 쓰는 불편함을 감수하리 만큼 정취와 운치를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나 미술관을 비 오는 날에 가게 되면 기념품으로 당연 우산이 제격이 되고 만다.

사야 할 정당성과 지갑에서 스스럼없이 자연스레 돈이 나오는 유연함이 따라온다.

비 오는 날에 가고 싶었던 전시와 미술관에서 예술에 한 껏 취해서, 돌아오는 길에 온기 넘치는 카페에 앉아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건, 우리의 현재를 축복하는 일이고 행복을 뒤집에 쓰는 일인 것이다.

 



공휴일이나 주말에 비가 많이 내리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집에서 한창 여유를 부리고, 먼가 기름을 사용해 튀기거나 부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바람을 동반하지 않는 비라면 창문을 살짝 열어 귀가 청명 해 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어디 잠깐 외출을 할 때도 차들이 느릿느릿 움직여서 좋고 그러다 실내로 들어서면 느껴지는 온기가 정스럽다.

비 오는 날의 외출은 얼른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하는데,

내가 거처하는 곳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안락함을 동시에 느끼며 새삼 집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커지게 되는 것 같다.

쉬고 싶어도 날이 좋으면 약속이 잡히기 마련이고 더구나 아이 키우는 가정은 어디라도 나가게 마련인 것이다.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주말들 사이에 시원한 비 소식이 있으면 공식적으로 집안에서 보내게 될 주말을 준비한다.

읽고 싶었던 책을 주문한다거나, 왠지 그날 먹고 싶었던 요리를 생각해 재료를 미리 사놓는다.

함께 볼 영화를 고르기도 하고 '비 오니까 그거나 하자' 하며 가족이 마음을 합쳐본다.

여유로운 주말의 한가함을 만끽하며 침대에 구르다 책도 읽다 괜히 TV도 틀어보다 출출하면 배를 채우는 시간들이 모두 느릿느릿 흘러간다.

잠깐 비가 그칠 때 집 앞에 편의점으로 가서 간식거리를 사 오는 소소한 행복을 챙기며 보내는 비 오는 주말인 것이다.



캠핑장에서 만나는 비를 빼놓을 수가 없다.

텐트가 젖기 때문에 남편은 싫어할 수 있겠으나, 아늑한 텐트 안에서 어묵탕을 호호~ 불어먹고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절로 힐링을 한다.

캠핑장은 초록을 만나기 제격인 곳이므로 물을 머금은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또 예술작품이 된다.

우산을 들고 화장실에 가고 매점을 왔다 갔다 하며 비 오는 날 다른 텐트에서 무얼 해서 먹는지 일부러 구경하며 우리 텐트로 돌아오는 재미도 솔솔 하다.

간혹 너무 맛있겠다고 생각되면 없는 재료로 우리도 만들어 먹을 궁리를 하거나 주인어른들께 재료를 얻어보기도 한다.

좀 눕고 싶어서 텐트 방에 들어가게 되면 편안하게 누워서 무상무념을 경험하게 된다.

혹 막걸리나 맥주 한잔을 한 상태라면 잠시 잠깐 낮잠으로 이어지겠지만.

그 꿀 같은 잠을 아파트에서는 들을 수 없는 사운드를 감상하며 잘 수 있는 행운을 캠핑장이니 누리는 것이지  

나는 정녕 청각의 동물인가.


이토록 비 오는 모든 날 모든 순간을 의미를 두고 사랑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비 오는 날이 더 즐겁기 위해 우산에 특별히 신경 쓴다.

공짜로 얻은 우산보다 내가 정성 들여 고르고 골라 꽤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산 우산을 쓰는 것이다.


"앗싸, 오늘 비 오니까 내 우산을 쓰고 나가야지!"


우산으로 들려오는 우두둑 빗소리를 음악 삼아 출근하게 되는 것이다.

소중한 내 우산이기에 신경 쓰며 관리하게 되고 잃어버리지 않게 각별히 예의주시 한다.

내가 그러다 보니 딸아이의 우산도 장화도 기분 좋게 고르게 하고 비 오는 날도 수많은 날 중에 한날임을,

그날도 기분 좋고 행복한 날임을 스스로 알게 된 것 같다.

밖에서 뛰어놀진 못해도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물웅덩이 장난을 칠 수 있고 첨벙첨벙 걸어도 발이 젖지 않으니 과감하게 걸으며 비 오는 날 놀이를 하는 것이다.

물론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고 가만히 놔둔다.

1년의 모든 날씨를 느끼며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러분의 비 오는 날은 어떤가요?

모든 날 모든 순간을 행복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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