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나누기 계절
나이를 계절로 나눠보자?
사색의 계절 가을이 끝나간다. 이제 쌀쌀한 겨울님이 오시는 그 길목 어딘가에서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공원 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수많은 상념들이 내 머릿속을 또 스쳐 지나간다.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나 역시 계절감을 굉장히 중요히 여긴다. 다시 저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이를 계절로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 바야흐로 100세 인생 시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절기를 25년으로 잡아 보았다.
< 산수문제 >
100세 ÷ 4계절 = ?
< 정답 >
1-25세 봄, 26-50세 여름, 51- 75세 가을, 76-100세 겨울
음, 저 정답이 사실이라면 내 나이는 여름이군.
그렇다면 당신의 나이는 무슨 계절인가요.
나는 친 조부모는 밭농사를 지으셨고, 외 조부모는 과수원을 하셨다.
아직도 아른거리는 어린 시절 추억이 있다. 몇 학년인진 기억이 안 나지만 초등학교 3학년쯤인 것 같다. 여름방학 때 친가의 고추 밭일을 도운 적이 있다. 고추는 7월에 들어서 장마기간에 첫 수확을 한다. 어린 내가 무슨 큰 도움이 됐을까냐마는, 재미있게 고추를 따던 기억이 난다.
또 한 가지 기억이 있다. 외갓집에 가면 외할아버지가 배를 수확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배 수확 시기에 까마귀를 내쫓기 위해 공포탄 총을 쏘시곤 했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늦여름이 끝나가던 시기에 할아버지는 하얀색 습자지로 수확한 배를 포장하시곤 했는데, 나도 그것을 도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인생은 아마도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씨를 뿌리고, 작물을 키우고 때가 되면 수확하고 수확한 곡물로 겨울을 나고.
모든 것은 때가 있고, 그 시기를 놓치면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시기를 놓쳤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희망에 가득 찬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희망의 말을 건네는 글을 쓰고싶다. 그저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작은 통찰을 전할 수 있고, 이 메시지가 희망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여름의 중반기를 살아가는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봄을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하고픈 말 (AKA 꼰대놀이)
단 한마디를 하고 싶다. 다양한 씨를 뿌리라고, 최대한 많이 파종하라고. 즉, 공부하라는 거다.
공부해라. 정말 미친 사람처럼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공부해라.
꼭 학교 공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 공부가 물론 제일 중요하지만 '인생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라는 것이다. 뻔한 말이지만 '다독' 하는 것이 최고의 경험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 다양한 독서를 했다. 고전 소설부터 만화책까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해외여행을 할 기회는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읽었던 활자들은 지금도 나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부해라! 독서해라! (미안합니다. 꼰대짓해서.)
To. 현재 여름을 살고 있는 청년들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나는 여름의 날들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도 한창 더울 한여름날.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사실 10대 때 다독을 제외하곤 뿌려놓은 것이 많이 없다. 사실 공부를 아예 안 했다. 20대 초반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편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편입 공부하기 귀찮아서.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내 마음에 짐이 된다. 그래서 아까 그렇게 10대, 20대 초반의 '봄사람'들에게 꼰대짓을 한 것이다.
그렇게 철없던 나의 10대, 20대가 지나갔다. 30살이 넘으면서 인생의 굴곡을 겪었고 그동안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의 폭을 경험했다.
취업과, 결혼 그리고 결혼생활. 극도의 두려움 그 뒤에 찾아온 안정감. 그리고 또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독함. 그리고 찾아오는 권태감. 다시 또 안정과 권태로움이 파도치듯 오가는 30대 중반.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우울감.
우울감이 지속되자 우울증이 되었고 그 마음의 병이 몸의 병까지 되었다. 갑상선항진증. 6개월간의 약물 치료 끝에 몸은 치료되었고, 지금은 멘탈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내가 끝났다고, 늦었다고 항상 생각했다. 10대와 20대를 무계획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도 안 해, 편입도 안 해. 졸업해서 신문사에는 들어갔지만 내가 들어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내가 더 좋은 대학을 갔으면 이렇게까지 후회하지는 않았겠지.
그렇다, 봄 시기의 나는 많은 것을 놓쳤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사실 이제라도 새로운 씨를 뿌릴 수 있다. 그리고 적게나마 10대, 20대의 내가 파종한 '다독'이라는 씨앗을 최대한 잘 살려서 모내기를 하면 된다.
To. 현재 가을을 살고 있는 장년층 분들
사실 이 부분부터는 나의 조언을 걸러 들으셔도 된다. 아직 나는 50대 이상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맞지만, 나는 기자 출신이기에 기사보도체에 익숙하다. 앞으로도 평서형으로 계속 쓸 계획이다. 내 매거진 '스테이션'의 문체 통일성을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유년, 청년시절이 불우했을지라도, 힘을 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수확하는 것을 보고 비교하며 질투가 날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당신 주변에 그 친구를 보면서 질투할 시간과 에너지로 다른 것에 투자하길 바란다.
남들과 비교해 자신의 수확물이 보잘것없더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그나마 작게라도 심어놓았던 한 톨의 쌀알까지 수확하라고 하고 싶다.
가을이 됐으니 쌀가마니를 이제 열어보자.
어?! 그런데 별로 쌀이 없어 보인다. 이정도 수확물로 나의 겨울을 잘 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 자신의 쌀가마니 개수로 겨울을 안전하게 보내지 못할 것 같으면 이제라도 마지막 힘을 짜내서 비닐하우스를 만드시길 바란다.
수확한 쌀과 보리가 없으면, 이제라도 밭에 투자하라고 하고 싶다. 인간은 꼭 밥을 먹지 않아도 다른 음식으로도 충분히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으니까.
당신의 밭은 무엇인가? 보험 쪽에서 일했는가? 공인중개사? 당신은 혹시 와인이나 맥주에 관해서 박식한가?
나는 당신이 무슨 인생을 살아 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만이 갖고 있는 어떠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최대한 살려서 새로운 밭을 일구길 바란다. 추운 겨울을 위해서.
To. 현재 겨울을 살고 있는 어르신 분들
정말 이 부분은 내가 할 말이 없다. 걸러 듣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무시하셔도 된다. 내 글을 읽는걸 멈추고 여름사람인 내가 하는 말을 그냥 '무슨 저런 철없는 소리를 하나.' 하고 지나가셔도 된다.
75세가 넘어가신 어르신들은 이제 정말 때를 준비하시는 분들이다. 건강, 단 그것 하나에만 신경쓰는 것에 온 집중을 다 하셔야 한다. 다른 거 다 필요 없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 생각하셔야 할 것이 있다.
후학.
겨울의 나이에 해당되시는 분들은 자신의 인생을 후대에 전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눈이 내리는 한파 속 자신이 마련한 집 안에서 도란도란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꼭 성공담일 필요는 없다. 물론 어르신이 그동안 이룬 업적을 얘기하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그보다 다른 것을 나누길 원한다.
당신의 후회, 회한, 아픔...
인생에는 밝은 면만 있지 않다. 어두운 면을 함께 젊은 세대와 나눈다면 어떨까? 어르신의 실수와 잘못이 후대에 와서 더 나아지고 고쳐질지 어떻게 아는가.
'실버 파워'
신문 경제면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단지 경제적인 면을 강조하는 단어 같지만 꼭 그러지만도 않은지도.
씨는 봄에만 뿌리는 것이 아니다. 물론 봄에 뿌리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긴 하다. 그러나 여름에도, 가을에도 심지어 겨울에도 뿌릴 수 있다.
문제는 뿌린 것을 기르는 과정과 수확의 시기다. 무엇을 키운 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참을성을 갖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자. 당신이 뿌린 작물이 언제 수확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인생이 꽃피고 열매가 열리는 그날까지 나는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
당신의 곁엔 언제나 타자기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