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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안하나이하나 Feb 24. 2022

아줌마들은 오늘도 줌바를 춘다_월요일이 기다려져

 

 그렇게 싫던 월요일이 조금 즐거워진 건 줌바를 시작하고 일어난 변화다.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수요일에 줌바 수업이 있다. 수요일 이후 꼬박 5일을 기다린 뒤에 맞는 월요일, 주말 내 찌뿌둥했던 몸을 풀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헬스장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각자 본인의 자리를 찾아 서고 씩씩한 걸음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GX룸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음악이 플레이되고 선생님을 따라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리듬감 넘치는 다음 곡을 따라 몸의 움직임이 조금씩 크고 화려해진다. 우리는 줌바의 세계로 조금씩 빠져든다.   


 줌바 동작은 사실 꽤 단순하다. 살사, 라틴댄스, 메렝게 같은 춤과 에어로빅이 결합된 줌바는 기본 스텝들이 어렵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패턴이라 선생님의 동작을 눈여겨보면서 몇 번 추다 보면 금세 따라 할 수 있다.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오른쪽과 왼쪽 위치를 짚어줄뿐더러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네 번과 같이 몇 번을 움직여야 하는지도 손가락으로 미리 친절히 알려준다. 아이돌 댄스만큼 어렵지 않고 단순 동작의 반복인데도 엉덩이와 골반을 실룩실룩 대며 한곡을 열정적으로 다 추고 나면 숨이 턱끝까지 찬다. 마치 내가 격렬한 무대 공연을 마친 아이돌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투입된 노력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은 운동이다.  

 

 몇 주전, 아빠의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적이 있었다. 엄마가 떠나고 내게 남은 유일한 가족인 아빠의 건강에 나는 매우 예민한 편이다.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단 얘기에 눈앞이 뿌예졌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뒤죽박죽 엉켜버렸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날은 정말이지 춤을 출 기분이 아니었지만 평소대로 줌바 수업에 갔다. 우울함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여느 날 보다도 더 열심히 춤을 췄다. 분명 음악은 신났는데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흐르는 눈물을 훔쳐냈다. 눈물을 흘리며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거울 속 내 모습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바로 이 구역의 미친 X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 눈물의 줌바를 잊을 수가 없다. 줌바를 추러 가지 않았다면 불안감을 지우려 나는 내 방에서 술과 함께 질질 짜고 있었겠지. 줌바를 출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날을 제외하곤 대부분 즐거운 마음으로 줌바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신나는 라틴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품고 있던 걱정과 우울감을 다 잊고 멕시코나 쿠바 어디쯤을 여행하고 있다. 요즘 같이 해외여행도 가기 힘든 코시국에 상상여행을 떠나는데 줌바만 한 게 없다. 나는 칸쿤의 푸른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데낄라 한 샷을 입에 털어 넣고 백사장 위에서 엉덩이를 실룩대며 춤을 춘다. 아... 집에 가기 싫다.  


 거울 속 실상은 주유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흐느적 대는 풍선 같은 모습일지라도 나는 줌바를 추는 나를 사랑한다. 거울 속 나를 보며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올지라도 즐겁다. 가끔 힘들어서 인상이 구겨지면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나를 저격하며 엄지와 검지로 미소 짓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럼 난 마스크 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소를 최대한 크게 지어 보인다. 선생님은 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쌍 따봉을 내게 보낸다. 

줌바는 어느새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상에 작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었다. 중남미에 가려면 적어도 20~30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피곤한 비행 없이도 5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중남미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수업 멤버가 늘으면 늘었지 기존 멤버들이 빠지질 않는 거 보면 나뿐만 아니라 수업에 참여하는 대부분에게도 줌바는 일상의 즐거움이자 활력이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가 끝나면 언젠가 다시 중남미 여행을 가서 줌바 클럽에 가고 싶다. 그때는 정말로 멋지고 섹시한 옷을 입고 숙련된 모습으로 줌바를 출 테다. 오늘이 수요일이니... 다시 또 5일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제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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