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별 손님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애초에 장마철에 젖은 수건과 같이 이틀을 담아둔 것은 내 잘못이다. 그러나 군데군데 생긴 작은 곰팡이 얼룩을 제거하면서 오히려 누런 얼룩을 더 심하게 남긴 것은 세탁소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이게 죽고 살 일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솔직히 무슨 몇백억 짜리 옷도 아니지 않냐고? 옷 한 벌에 죽고 살 일 물론 없고, 그래 봤자 149,000원짜리 랄프로렌 나부랭이입니다만, 특수 얼룩 제거비 15,000원을 받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셨으면서 지금 그 말씀은 아닌 거 아닌가요?
직원에게 따로 주문해서 구입한 흰 리넨 셔츠를 아이는 딱 한 번 입었다. 바로 빨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흰 빨랫감이 모이기를 기다리다가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젖은 수건과 맞닿았던 곳곳에 작은 곰팡이 얼룩이 생긴 것이다. 세탁 편의점에 가져갔더니 특수 얼룩 제거가 가능한 세탁소가 나을 것 같다며 옆 아파트 단지에 있는 세탁소를 소개해 주었다.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이런 건 만 오천 원은 받아야 해! 이틀 뒤에 와요!’하고 옷을 가져가더니 옷 전체 면적의 절반만큼 에 덜 빠진 커피 얼룩 같은 오염을 남겨 놓았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세탁소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비닐을 들추고 옷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금요일 퇴근길에 나는 이미 지칠 만큼 지쳐 있었고 들고 있던 짐(가방, 노트북 파우치, 먹다 남은 음료)에 옷 한 벌 걸린 옷걸이를 하나 더 들고 걷는 것도 힘에 부쳤다. 옷이 그 모양이라는 건 비가 와서 날씨가 어둑했던 이른 아침에 아이에게 입혀 외출하고 난 다음이었다. 차에서 내려 걷는 아이의 등을 보고 깜짝 놀라 아이를 불렀을 때, 돌아본 아이의 어깨와 배, 양쪽 소매까지도 모두 누런 얼룩이 져 있음을 보았을 때, 앞으로 하게 될 마음고생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워낙 얇다 보니 세탁소에서는 옷이 이런 상태라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그때 바로 가져오지 않았냐고 바로 꼬투리를 잡을 것이다, 뭘 흘려놓고 다시 가져왔는지도 모르지 않냐고 시치미를 뗄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다시 빨아볼까도 싶지만 이건 그렇게 지워지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거기 직원도 여러 명이던데 괜히 싸우지 말고 그냥 없었던 옷인 것처럼 잊어버리자, 괜히 지긋지긋한 흉통만 더 심해지면 병원비만 또 든다, 하지만 우리 형편에 쉽게 턱턱 사는 가격의 옷은 아니다, 소비자원에 상담을 해볼까, 아직 리넨 셔츠의 계절은 한참이나 남았는데..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다 세탁소에 전화를 걸었을 때 아저씨는 ‘우리’가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고 했다. 막말로 세탁소 삼십 년 넘게 하면서 별의별 이상한 손님을 다 본다고 했다. 옷이 리넨이라 얇아서 얼룩을 잘 못 보셨을 수도 있어요, 네 네, 이상한 손님도 많으시겠죠, 어지간하면 비위를 맞춰주며 좋게 해결하고 싶었는데 이게 죽고 살 일은 아니지 않냐, 우리가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솔직히 무슨 몇백억짜리 옷도 아니지 않냐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참지 못하게 되었다.
“사장님. 제가 여태 웃으면서 말씀드렸지요? 못 보셨을 수도 있으니 한 번 보시고 얼룩만 좀 빼 달라고요. 사장님 삼십 년 넘게 세탁소 하시면서 이상한 손님 많이 보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삼십 년 넘게 세탁소 다니면서 이렇게 이상하게 옷을 만들어 놓은 데 처음 봤어요. 몇백억이요? 몇백억짜리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 원짜리도 아니고, 만 원짜리면, 그게 뭐가요? 그리고 제가 언제 사장님한테 죽을죄 지었으니 사과하라 그랬어요? 몇백억짜리면 여기 맡기지도 않아요. 아무튼 제 말씀은요 지금 같아서는 곰팡이 얼룩이 차라리 더 나을 정도니까 확인해 보시고 입을 수 있는 정도로만 해달라고요. 옷 가지고 갈게요.”
옷을 들고 세탁소에 갔을 때는 전화를 받았던 남자 사장님은 안 계시고 부부로 짐작되는 여자 사장님만 계셨다. 그분은 옷을 확인하면서 내가 상상했던 모든 말을 했다. 왜 바로 가져오지 않았냐(어두워서 안 보였다), ‘당신네’가 뭘 묻힌 거 아니냐(뭘 어떻게 묻히면 어깨부터 소매에 등판까지 다 묻히나요), 바지에 넣어 입으면 이염이 생기기도 한다(넣어 입지도 않았지만 바지 안에 상의 어깨부터 넣어 입나요), 입고 다니다 어디서 그런 거 아니겠냐(아침 아홉 시에 발견하자마자 찍은 사진 보여드릴게요), 그러게 왜 곰팡이를 피게 했냐(그래서 만 오천 원 드리고 맡긴 건데요), 일단 두고 가셔라, 안되면 ‘우리’는 그다음은 모른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장님은 몰라도 저는 그다음에 대해 생각할 거예요).. 그 끝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복원비는 우리가 안 받을 테니, 세탁비만 몇천 원 내세요,였다.
헐.
아예 시작을 안 했음 안 했지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아까 남자 사장님도 전화로 몇백 억 말씀하시더니, 사장님도..”
“말꼬리 잡지 마요!”
“말꼬리는 사장님들이 잡으시죠. 옷이 이렇게 되었는데 지금 계속 같은 말 되풀이하시잖아요. 제가 왜 세탁비를 드려요? 사장님이 잘못해서 다시 세탁하게 생겼는데. 그러면 미안하다고 최대한 해보겠다고 하시는 게 맞죠!”
“‘우리’가 잘못한 건 얼룩이니까, 얼룩만 뺀다고요. 그러니까 세탁비는 받아야겠어요.”
“아~ 그러세요? 그러면 얼룩만 빼고 주세요. 세탁은 제가 집에 가서 할 테니.”
“어떻게 얼룩만 빼고 줘요? 얼룩을 뺐으면 옷을 빨아야지.”
“그러니까, 그 빠는 거 제가 한다고요. 얼룩만 잘못하셨다면서요?”
그렇게 유치한 언쟁을 벌인 끝에 결국 세탁비를 내지 않고 가게를 돌아 나오다, 잔뜩 걸린 옷 사이 저 끝에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한 명 서 있는 것을 눈치챘다.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세탁소 사장님 부부의 아들인 모양이었다. 세상 착한 얼굴로 엄마 아빠를 도우러 나와 있다가 이 상황을 보게 된 것일까. 30년간 겪었다던 별의별 손님 중 하나에 내가 들어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방금 내가 보인 옹졸한 진상짓이 저 아들에게 입힐 상처는 얼마나 클까. 아들 앞에서 손님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인 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정신없이 울면서 보느라 대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이 정웅인에게 아들 앞에서 모욕을 주었을 때, 아이가 매 맞는 아빠를 보고 울면서 아빠 아빠 불렀을 때, 나는 얼마나 분개했던가. 내가 본 액션/누아르 영화 중 생각만 해도 괴로운 장면 1위가 되어 그 이후로 더 이상 그런 영화를 안 보는 거였지 않은가. 아무리 부족한 부모라도 자식 앞에서 만큼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어이가 없다’며 미쳐 날뛰는 배우를 보며 주먹을 꽉 쥐지 않았었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 가족의 기분을 망쳐 놓은 내가 부끄러웠다.
이틀 뒤 다시 옷을 찾으러 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청년이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여 사장님은 청년에게 손을 들어 ‘내가 할게’ 표시했고, 청년은 잠자코 옷 사이로 사라졌다. 결국 얼룩을 지우지 못한 사장님이 “이게 안 되더라고..” 하고 말끝을 흐렸고, 나는 “할 수 없죠, 애쓰셨어요.”라고 대답했다. 사장님은 다시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했고, 나는 “아이한테 이 옷 입혀 나간 날 중요한 인터뷰가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속상했어요.” 했다.
“아.. 속상하셨겠다.. 미안해요.”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가 무엇이 속상했는지, 왜 화가 났는지를 말했더라면. 처음부터 ‘우리’와 ‘당신네’로 편을 가르지 않았더라면. 하필 특별한 날에 아이에게 얼룩진 옷을 입히는 바람에 엄마로서 속상했던 감정을 상대방이 이해하고, 아이 앞에서 진상 손님을 대하느라 속상했을 상대방(청년을 포함해서)의 감정을 이해하며 비로소 ‘한’ 마음이 되니,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그래서, 그 옷을 그냥 들고 왔어? 입지도 못하게 된 걸? 내가 다시 가볼까?”
옷을 버리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동생이 화를 내며 말했다. 얘는 세 살 때도 내가 밖에서 울면서 들어오면 “누나, 누가 그래쪄? 내가 가서 혼 내주까?” 하더니 여태도 그런다.
“아니야”
“왜!”
“거기, 아들이 있어. 너무 순하게 생긴 다 큰 아들.”
“아.. 그럼 안되지.”
안 되는 거 아는 걸 보니 내 동생도 다 큰 모양이다. 끝이 좋다고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겠지만, 부디 그 청년의 마음만은 슬픔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