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야"
아침을 먹은 후 할머니가 들려준 전설이 깃든 호박소라는 폭포를 찾아 나섰다. 폭포의 깊이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닿지 않을 만큼 깊고 그 속엔 용이되어 승천하기를 기다리는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가뭄이 들면 그곳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는, 말 그대로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옛이야기가 담긴 곳이었다.
할머니 댁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 있게 나섰지만 폭포의 물소리를 듣기까지는 꽤나 걸어가야 했다. 폭포를 향해 가는 길은 역시 나 혼자뿐이었다. 시골길, 너무도 한적하고 아무도 오가는 사람이 없는 길을 홀로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풀숲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리와 때로는 내 발걸음 소리까지 흠칫 놀라며 가는 길은 괴괴하고 무서웠다. 마음 한구석에서 약간의 후회감이 들었다 ‘ 이렇게 한적하고 무서울 줄 알았다면 나서지 말걸…..’ 그러나 이미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한 삼십여분을 걸었나 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난 잰걸음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드디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물줄기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장엄함이 마치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왜 용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오는지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곳까지 끌어안고 왔던 고민과 방황을 잊을 만큼 폭포가 주는 압도적 위압감에 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거대하고 우렁찬 물줄기 앞에서 난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고백하건대 태어나 처음으로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신성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세 남자가 불쑥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들도 폭포 앞에 여자아이가 혼자 앉아 있는 모습에 놀랐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는 게 싫어서 서둘러 일어섰다. 그때 한 남자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와 가져 온 수박이 있는데 같이 먹자고 한다. 알겠다 하기도, 거절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난처했는데 갑자기 폭포 뒤쪽 산에서 한 아저씨가 홀연히 나타났다. 배낭을 메고 있는 모습에 등산 온 사람이구나 라는 짐작은 갔지만 갑작스러운 아저씨의 출현은 마치 산신령 같았다. 내가 독차지하고 있던 폭포 앞의 풍경은 순식간에 다섯 명의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산신령까지 합류해서 수박파티가 벌어졌다. 파티 참가자들의 면면은
나, 태어나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도전한 세상 어리바리한 대학 일 학년 생
세 남자, 부산에서 같은 대학을 다니는 친구사이, 나와 같은 새내기들
산신령, 산을 좋아해서 홀로 등산을 즐기는 삼십 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남자
우리는 길 떠 남 이란 인연으로 만나, 함께 수박을 먹고, 폭포소리를 듣고, 늦여름의 오후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 일정은 호박소까지였지만 아저씨의 제안으로 다 같이 계곡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오천평반석’이라는 곳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혼자서 호박소까지 오는 길도 으스스한 기분을 느꼈기에 계곡 물줄기를 따라 더 올라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동행들 덕분에 난 호위무사를 네 명씩이나 이끌고 유람을 즐기는 별당아씨가 될 수가 있었다. 계곡 물줄기를 거스르며 오르는 길은 혼자일 때와 다른 분위기였다. 호박소까지의 길이 맑고 고즈넉한 달빛 같은 길이었다면 계곡 깊숙한 곳을 찾아 나서는 길은 작열하는 태양처럼 힘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간간이 재미있는 농담이 오가기도 했고 모두 처음 본 사람들임에도 오래된 길동무 같았다.
‘오천평반석’. 말 그대로 오천 평쯤 되어 보이는 널찍한 바위가 계곡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이 깊은 계곡에 어떻게 이런 바위가 있을 수 있는지 자연의 신비로움에 또 한 번 놀랐다. 아저씨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이런 비경을 만날 수 없었을 텐데 나의 발걸음을 붙잡아 준 아저씨에게 감사했다. 난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동안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 앞에 서니 나의 존재는 한껏 작아졌다. 내가 작아지니 나의 고민도 먼지처럼 작아져 계곡물에 흘러 흘러 떠 내려가는 듯했다. 인기척에 돌아보니 아저씨도 내 옆에서 흐르는 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무슨 일로 힘든지는 모르겠어. 지금 죽을 것 같고 세상이 다 싫어도 살다 보면 살만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와. 아직 죽음을 택하기엔 너무 어려. 그러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힘을 내면 어떨까?”
난 처음엔 아저씨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해 눈만 멀뚱멀뚱 거리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저씨의 진심 어린 걱정이 담긴 표정을 보고는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자살여행을 온 사람이라고 착각한 거였다. 그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명백했다. 난 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름의 의식을 거행하려고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썼었다. 그리고 호박소에 올 때 편지봉투에 담아 뒷주머니에 꽂고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유서로 보였던 것이다. 80년대 중반 아직 여자 홀로 여행을 다니는 게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어린 학생이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왔다는 것도 눈에 띄는데 뒷주머니에 편지봉투까지 꽂혀 있으니 누가 봐도 오해를 불러 올만 했다.
난 호위무사들의 오해를 풀어줘야 했다. 죽으러 온 거 절대 아니라고 말해도 처음엔 믿지를 않았다. 계속 나를 설득하고 또 따뜻한 말로 위로도 전해주었다. 가슴이 아릿해 오며 그들의 진심 어린 마음에 감동받았다. 사실 수박을 먹자고 한 것도 어떻게든 나를 구하려고 한 세 남자의 비장한 계획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계곡 따라 더 걸어가자고 한 아저씨의 제안도 나를 설득하는 시간을 벌고자 했던 것이다.
나만 몰랐던 비밀작전은 그렇게 깔깔거리며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내 첫 여행을 통해 제일 큰 깨달음이 있다면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알게 된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제법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았지만 한 번도 그 자연의 위대함과 감사함을 깨달은 적이 없었다. 내 곁에서 늘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가족들처럼 자연도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가깝고 익숙한 것에는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듯 내가 누리는 자연에 고맙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었다. 늘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만난 거대한 계곡의 물줄기, 하늘로 오르는 듯한 폭포,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소박하지만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 나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에 감사했고, 잠시나마 그들의 삶 속에 함께 했다는 것이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자 혼자 여행을 다니면 이런 오해가 생기는구나, 사람들이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생경스럽게 바라보는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판 남인 내가 갑자기 나타나 하룻밤 재워달라, 밥도 달라, 요구했던 것도 두 분의 눈에는 오해와 편견의 시각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 대한 열린 마음을 보여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이 더 깊이 와닿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