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학생이에요 -3편

" 괭이가 다녀 갔구먼"

칠흑 같은 밤이 깊어 가고 있다. 시골의 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깜깜했고 조용하다. 집 앞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소리도 얇은 창호문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난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 잠자리가 불편해서만은 아니다. 집을 떠나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했고 혹시라도 내 소식이 부모님께 전해졌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후일에 대한 걱정이 엄습하기도 했다.

홀로서기. 지금 내가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중인가? 내가 이곳까지 왔어야 할 분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모든 게 명확하지도 설명되지도 않는 복잡한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설핏 잠이 들었나 보다. 방 밖에서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처음엔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사람의 소리인지, 동물의 소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정체가 내는 소리인지. 그러나 분명한 건 이 낯선 곳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나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난 일어나 방 밖을 살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온 신경을 집중해 들어보니 짐승이 내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깊은 산골이다 보니 산짐승이 내려온 듯했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두 소리는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 공격의 대상이 나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입을 틀어막고 숨소리도 단속했다. 사람의 냄새, 사람의 숨결, 사람의 움직임등 모든 것을 감추어 밖의 정체 모를 짐승들이 나를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만 했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라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문살에 얇게 발라진 창호지뿐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홀로 떠나 온 여행에서 정체도 모를 산짐승에게 공격을 당할 위기에 처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벌써 산짐승에게 목을 물어 뜯기는 기분이었다.


난 살아남고 싶었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빌었다. 그러나 처음엔 으르렁 거리며 위협만 하던 두 짐승은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처절하게 물어뜯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피비린내 나는 혈투의 현장에는 우당탕탕, 쨍그랑 모든 것들이 뒤집어지고 깨지고 있었다. 그 모든 혼란과 공포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 일 뿐이었다. 제발 내가 발각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깨어 있을 수도 의식을 잃을 수도 없는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방이 조용해지는 듯하더니 희미한 빛이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지난밤의 공포가 너무 커서 문을 열어 확인해 볼 용기가 없었다. 아직도 그 짐승들이 방 밖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았다.

조금 후 할머니의 반가운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살짝 문을 열어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할머니한테 달려 나갔다. 그리고 밤새 산짐승들이 내려와 얼마나 대단한 혈투를 벌였는지, 그 소리는 얼마나 소름 끼쳤는지 내가 느낀 공포를 쉴 새 없이 할머니께 고해바쳤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할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셨다.

“밤새 괭이가 다녀갔구먼 음식 넣어 논 바구니를 다 뒤집어엎어놨어”.

난 믿을 수 없었다. 그토록 날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한 존재가 그저 한낱 길고양이였다고? 내가 분명 들었던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던 으르렁거림이 고양이의 울음소리였다고? 내가 표적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던 포식자들의 혈투가 사람이 남긴 음식을 먹기 위해 싸운 길고양이들의 다툼이었을 뿐이라고? 참으로 맥이 빠지고 허탈한 순간이었다. 난 끝까지 할머니에게 고양이가 아니라 엄청 큰 짐승들이었다고 호들갑을 떨어 보았지만 “그렇게 겁이 많아서 혼자 어떻게 여행을 다녀” 라며 등 한번 두들겨 주실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처음으로 난 혼자 자는 밤을 경험했던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지낸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예상치 못한 어떤 경우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누군가에게는 일상 일 수도, 별거 아닐 수도 있는 혼자 자는 밤이 나로서는 오롯이 혼자 겪어야만 했던 밤이었다. 결국 혼자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밤새 상상의 공포 체험에 시달리게 했던 것이다.

나의 나약함을 감추고 싶고, 미 성숙함을 채우고 싶어 떠난 홀로 여행의 첫날부터 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19년을 살며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던 어설픈 발걸음부터 웃지 못할 해프닝을 치렀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순간들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솔직히 내 가슴은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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