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가는 버스 안에서
영주 시외버스 터미널. 처음 와 보는 곳이다. 버스 터미널 한가운데 서서 길 잃은 아이처럼 한참을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엉겁결에 이곳에 도착했던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목적지도 없이 막연하기만 했다. 영주에서 출발하여 갈 수 있는 도시의 이름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단양, 제천, 영월, 원주… 모두 나와 연고 하나 없는 낯선 이름뿐이다. 난 어디든 가야 했고 그곳이 어느 곳이든 상관은 없었다. 그때 내 눈에 띈 작은 지도책 하나. 터미널 안 조그만 잡화점, 그 가게만큼이나 작은 포켓 지도를 만나게 된 건 내 여행이 더욱 풍부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얼른 지도 하나 사들고 영월이란 행선지가 쓰여 있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지도책을 펼쳤다. 그리고 지도 위에서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찾아보았다. 작은 점 하나로 영주라는 곳이 표시되어 있고 역시 또 작은 점 하나로 내가 가려고 하는 낯선 동네가 표시되어 있었다. 버스는 구불구불 도로를 달리고 있고 그 길 위에는 많은 것들이 나타났다 사라져 갔다. 낯선 곳을 향해 6시간 넘게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고된 여정이긴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산이 깊다 싶으면 계곡이 나타났고 물줄기가 길어진다 싶으면 커다란 강이 이내 모습을 보이곤 했다. 겨우 한 두 명이 타고 내리는 시골 간이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그 마을의 재미나거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함께 버스에 올랐다. 그 덕분에 난 고장 사람들만 알고 있는 기쁨과 슬픔과 비밀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꼬물거리는 강아지 몇 마리를 박스에 담아 온 할머니는 버스 안에서 긴급 입양이 결정되기도 했고, 원주댁 작은 아들 결혼식에는 키우는 소여물 줄 사람이 없어 참석하기 어렵다고 아쉬워하는 할아버지 이야기도 귀동냥했다. 이런 세상 사는 이야기들은 홀로 여행의 적적함과 무료함을 달래줄 뿐 아니라 잠시 잠깐이지만 나도 그 마을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외로움도 쓸쓸함도 잠시 멈춤이 되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싶으면 가방에 넣어 두었던 포켓지도를 다시 꺼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지도책은 작지만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커다란 세상을 다 보여주었다. 지도를 펼쳐 들고 내가 지나고 있는 곳이 어딘지 지도 속의 좌표를 찾아내어 실제 눈으로 보는 세상과 기호로만 보여주는 단순한 세상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깨알 같은 작은 기호들을 찾아내어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고고학자처럼 기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여행일지는 더욱 풍성해졌다. 그렇게 작은 점 하나, 암호처럼 보이는 기호들이지만 펼쳐진 세상에서는 수많은 재미있고 구수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건 지도를 보는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을 달려왔지만 지도 위의 나는 일 센티미터쯤 움직인 걸로 표시가 되었다. 그러나 일 센티미터 안에는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상,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그 일 센티미터를 움직이기 위해 난 도전을 해야 했고 그 모험은 늘 나에게 놀라운 일 센티미터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이 작은 포켓지도는 어느덧 내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애장품이 되어갔다. 어디를 가든 지도 속의 세계를 먼저 찾아보면 그곳은 더 이상 낯설기만 하지 않았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혼자지만 덜 외로울 수 있었고 가끔씩 휘몰아치듯 다가오는 깊은 고독감도 제법 버틸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내 지도는 버스에서, 기차에서 때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길 위에서 늘 펼쳐졌다. 얼마나 접었다 펼쳤다를 수없이 했는지 접혀있던 부분이 다 해져서 너덜너덜 해지기도 했다. 여행의 기록이 쌓여 갈수록 지도는 더 낡아지고 중간중간 찢어진 곳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새 지도를 사고 싶진 않았다. 늙어가는 지도를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투명 테이프를 붙여가며 보수공사를 한 지도는 나만의 보물이 되어 갔다.
그런 지도가 내 손을 떠나버린 일이 생겼다. 제법 나를 따르는 후배가 지도 이야기를 듣더니 입대기념으로 지도를 선물로 달라는 거였다. 난 새 지도를 하나 사주거나 다른 선물을 해주겠다고 하니 끝까지 내 손때 묻은 그 지도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요즘이야 복무기간이 18개월 정도로 짧아졌지만 80년대만 해도 대략 3년을 군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입대를 하는 지인에게는 최대한 온정(?)을 베풀던 시절이라 더 이상 후배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어 결국 내 지도를 선물로 주게 되었다. 하지만 미처 몰랐다. 그 지도를 떠나보낸 상실감이 그토록 클 줄은…
난 다음 여행에 바로 똑같은 지도를 새로 샀지만 너덜너덜, 내 손때 묻은 지도가 아니었다. 내가 거쳐갔던 마을, 도시, 강을 따라가며 표시해 둔 작은 동그라미도 없었고 새 잉크 냄새만 풀풀 풍겨 나는 그냥 지도일 뿐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겨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는 내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후배지만 가끔 그 녀석이 한 번씩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만큼이나 그 지도에 담겨있는 소중한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간절히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라고 좋게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제 내 여행길에 포켓 지도는 따라나서지 않는다. 손쉽게 휴대전화의 내비게이션을 켜고 친절한 음성으로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의 말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왜 그 길에는 풍성한 이야기가 따라오지 않는 걸까? 접혀 있던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술술 풀어져 나오던 이야기들이 그립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변하였지만 난 여전히 그 작은 일 센티미터의 기적을 간직하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