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아, 만나서 참 외로웠어

단양의 깊은 밤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끝없는 초록의 물이었다. 멋진 풍경이긴 했지만 거대한 물에 잠겨 떠오르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공존할 수 없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가는 동안 버스가 신단양에 가까이 왔나 보다. 물과 산이 장악하던 길에도 이제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이 보이고, 음식점이 보이고, 거리의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이렇게 무언가가 사라지면 또 어디선가는 새로움이란 단어로 시작하는 것이 삶의 생명력인가? 내가 떠나온 곳에서 잠시 사라진 나는 이곳 물의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움은 무엇일까?라는 기대를 하며 들뜬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건물에 ‘민박’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5000원이란 숙박비에 비해 욕실까지 딸린 호사스러운 방을 보고는 누가 채갈까 싶어 얼른 짐을 풀었다. 하지만 빠른 선택은 그만큼이나 빠르게 후회와 자책이란 단어로 바뀌었다. 학생들이 MT 라도 왔는지 우르르, 왁자지껄, 떠들썩한 젊음의 소음들이 곧 민박집을 지배해 버렸기 때문이다. 게임이라도 하는지 웃음소리가 넘쳐났고 기타에 맞춰 목청껏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라는 노래가 내 고막 안으로 파고들었다. 가사대로 그들은 밤새 시끄러울 작정 같았다.


그 소음에 당당히 맞서고 싶었다. 아무리 너희들이 웃고 떠들어도 난 나만의 세계를 즐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전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솔직히 나도 그들 틈에 끼어서 조개껍질도 목에 걸고 ‘공 공 칠 빵, 으악~’ 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더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난 결국 거리로 나와버렸다.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카리스마 장착한 과대표가 방문을 똑똑 두들기며 ‘우리랑 같이 어울릴래?’라고 손을 내밀 것 같은 환상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정말 바보 같은 공상이며 망상이었다. 고문 같던 젊음의 소란에서 벗어나자 잠시 살 것 같아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는 물안개에 쌓여 가고 있었다. 물소리도 어둠에 묻혀 들었는지 고요와 적막뿐이었다. 시야를 가두는 물안개 속을 허우적허우적 걸어갔다. 미스터리 같은 물안개 사이로 스며드는 주황색 나트륨등 불빛은 서럽게도 아름다웠다. 결국 난 사람들의 소음 속에서도 견딜 수 없이 외로웠고 몽환적인 밤의 세계에서도 지독한 고독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혼자 여행 온 사람, 그래서 뭐든지 혼자 해야 하는 사람, 그 혼자의 외로움과 막막함도 다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난 그 밤 실패를 인정해야만 했다. 너무 외로워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주황빛 안갯속을 얼마나 걸었을까. 맨 정신에 그 즐거운 소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지금이야 ‘혼술’이란 단어가 있을 만큼 혼자 마시는 술에 거부감이 없지만 스무 살, 난 처음으로 혼자 마시는 술의 아름다운 슬픔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단양은 나에게 외로움의 도시이다. 사실 내가 단양을 찾았던 것도 그곳이 가기 힘들고 깊이 숨겨져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당시 단양은 경부선과 중앙선을 갈아타며 하루를 다 투자해서 가야 할 만큼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이었다.(지금은 KTX도 고속버스도 있어 편안히 갈 수 있다) 단양의 첫 만남은 짙은 초록의 물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눈에 담지도 못할 만큼 거대한 남한강의 자태가 나에게 훅하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물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역사 분위기는 점점 잊혀가는 드라마 세트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역 앞에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현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선 저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았다. 난 기사 아저씨께 “ 여기는 왜 역 앞에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물었다. “ 여기는 충주댐 건설로 다 수몰된 구단양 이고, 이제 사람들이 사는 곳은 신단양입니다” 아저씨의 답에 난 비로소 황량한 역 앞의 분위기가 이해되었다. 사람들이 살던 터전을 잃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태어난 첫 울음소리부터, 동네 골목에는 내 어릴 적 이야기가 아직도 흘러나오는 곳, 그곳을 우린 고향이라 부른다. 고향이 물에 잠기어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차창 밖으로 지나는 것 같아 여행자의 마음이 허허로웠다. 단양은 결국 물에 의해서 숨겨져 있는 곳이었구나.


나도 물에 숨어들었다.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진토닉을 마시면서 난 술에도 취하고 나에게도 취해갔다. 혼자 떠나는 길이, 또 혼자 지새우는 밤의 색깔이 어떻다는 건 이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혼자 떠나는 것에 큰 주저함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날 단양에서의 밤은 외롭다, 외롭다 그렇게 외로울 수 없었다. 술이 점점 더 해지자 그 외로움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얼굴들 속에서 지금이라도 여기로 와 줄 수 있는 누군가를 탐색해 봤지만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밤 깊은 단양에 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난 그 외로움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이깟 외로움쯤이야 하고 코웃음 치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아무도 모르게 떠나온 그 길에 정당성이 부여되고 나 스스로 ‘너 진짜 멋지게 잘하고 있어’라고 속삭이며 쓰다듬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홀로 여행을 즐기는 제법 멋진 여행자’가 아니라 여전히 무리의 소속감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유약한 모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참 이상하다. 스스로 무리에서 탈출해 놓고 왜 홀로 여행을 떠나온 이 시점에서 지독한 외로움에 무릎을 꺾는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은 외로움이고 함께의 또 다른 이름은 구속이다.


단양의 깊은 밤, 외로움을 만나서 반가웠고, 외로움을 만나서 외로웠다. 난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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