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거리는 시골 시내버스 안. 하교시간이 되었는지 중, 고등학생들이 뿜어내는 유쾌한 이야기와 몸짓들로 가득하다. 버스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방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아이들도 평소 보지 못한 낯선 얼굴이 어색 한지 내가 앉은자리 주변만 작은 섬처럼 혼자 동동 떠있다. 내가 내려야 할 곳은 어린 청춘들의 즐거운 소음이 다 사라진 후에 만날 수 있는 곳, 즉 종점이다.
가방에서 관제엽서 한 장을 꺼내 흔들거리는 버스에 어울리는 필체로 친구에게 소식을 써 내려갔다.
‘ 지금 밀양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 시내버스 안이야. 어쩌다 보니 다시 이곳을 찾았어. 처음 이곳을 찾았던 시간들이 다시 생각나. 하지만 그때처럼 막막하거나 두렵지는 않아. 난 이제 혼자인 게 제법 익숙하거나 또는 즐길 줄도 알게 되었거든. 은경아,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늘 네가 떠올라. 네가 내 여행 동반자라면 또 다른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겠지. 그래서 가끔 너와 함께 하는 여행을 꿈꾸게 돼. 이제 그만 써야겠어. 왜냐하면 곧 내릴 아이에게 이 엽서를 우체통에 넣어 달라고 부탁해야 하거든. 안녕, 네가 있는 강릉으로 찾아갈게 잘 지내.’
난 하차벨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 이거 저기 보이는 우체통에 넣어줄래? 급한 거라 지금 꼭 보내야 하거든”
밀봉되지 않은 엽서라 잠깐만 읽어봐도 아무것도 급할 게 없는 내용임을 알아차리겠지만 굳이 급하다는 말에 힘을 주어 아이에게 말했다. 여드름이 송송 올라와 있는 남학생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해줄 수 없단 말은 하지 않았다. 장난기 많은 아이라면 어떤 내용인지 쓱~ 훑어볼 만도 한데 얼떨결에 받아 든 엽서를 들고 있는 아이의 표정은 난처해 보였지만 믿음직스러웠다. 아이는 내리자마자 빨간 우체통을 향해 직진해 주었다. 버스 안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를 의식한 건지 넣기 전에 나와 한번 눈 맞춤을 하더니 엽서를 쏙 우체통에 넣어주고는 후련하게 돌아서 갔다.
내 홀로 여행의 동반자를 늘 자처하는 관제엽서는 내 여행의 최애템이다. 여행을 가는 지역의 우체국에 들러 50원짜리 관제엽서를 스무 장쯤 사는 것으로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그렇게 천 원 정도면 내가 보낼 소식과 사연들을 맘껏 쏟아낼 수 있기에 엽서를 사는 것은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직원 몇 명 말고는 텅 비어 있는 시골 우체국에서 한 명, 두 명, 세명 그 순간 떠오르는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소식을 써 내려갔다.
어쩔 땐 아무 내용도 없이 시 한 구절 일 때도 있었고, 때론 어디에 왔고 어디를 갈 것이고 또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일정을 공유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80년대식 SNS였다.
“미란아, 너 어디 여행 다니는 지는 우리 과 친구들이 다 알아” 나와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가 그립고 보고 싶을 때마다 친구가 다니는 학과 우편함으로 엽서를 보내곤 했었다. 개인 우편함이 아니다 보니 과 동기들이 자연스럽게 엽서를 보게 되었고 내용 대부분이 홀로 떠다니는 여행 이야기이다 보니 자연스레 내 엽서는 친구 동기생들의 화제가 되었단다.
“우리 과 애들이 네가 누군지 한번 보고 싶대. 어떻게 여자 혼자 여행을 다닐 수 있는지 다들 신기해하고 궁금해하거든”
그렇다 난 그 당시 비슷한 또래의 호기심과 부러움을 자극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여학생이 혼자 여행을 다니는 일은 정말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밀병기 같은 내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 홀로 여행의 굿 파트너는 바로 관제엽서였다.
잠깐 관제엽서 예찬을 해 보자면,
일단 봉투, 편지지, 우표 이 삼종세트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 이미 우표가 인쇄되어 있는 관제엽서 한 장이면 바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간편함이 있고 가격까지 착하다. 그리고 엽서 크기가 손바닥만 하기 때문에 글을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나처럼 여러 여행지를 이동하면서 간단한 소식을 전하는 용도로는 정말 최고였다. 그리고 여행하는 지역 우체국 직인이 찍혀있는 엽서는 바로 기념품 또는 굿즈가 되어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관제엽서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쓸쓸하기도 한 홀로 여행의 멋진 동반자가 되어주기 때문이었다.
20대의 고민과 방황을 완벽하게 표출할 수 있었던 방법이 홀로 여행이었던 나는 정말 여행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런 여행이 늘 행복하고 즐겁고 충만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외로움은 늘 따라다녔고 때로는 무섭고 두려운 상황도 맞닥뜨려야 했으며 오해와 편견은 당연히 견뎌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엽서를 꺼내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혼자 하는 여행의 허전함과 고독, 모든 것을 혼자 다 감당해야만 하는 막막함 그리고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나약함까지…..
그런 솔직한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새 난 친구의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고 친구와 힘을 모아 불안을 이겨낼 수도 있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엽서가 시, 공간을 초월하여 나와 친구들을 이어 주었던 것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유치환/ 행복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란 시 한 구절처럼 난 작은 엽서 가득 때론 행복하기도 또 때로는 힘들고 불안하기도 한 사연들을 보냈다. 어쩔 땐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 또 어떤 때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이기도 했다. 작은 엽서 한 장이지만 그 안에는 내 찬란한 이십 대의 찬란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