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동굴의 수호천사
동굴은 어둡고, 축축하고, 괴괴한 분위기에 소름마저 돋았다. 시커먼 괴물이 커다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듯한 고수동굴 입구에서 발길이 주춤거렸다. 그때, 불안에 떠는 내 상황을 알기라도 하듯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동굴입구를 막 들어서고 있었다.
“ 얘, 너도 혼자 왔니? 그럼 누나랑 같이 들어가자.”
얼마나 반갑던지 팔짱이라도 낄 기세로 같이 들어가자고 말하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던 그 남학생은 기나긴 동굴탐사동안 무뚝뚝하긴 했지만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주었다. 위험해 보이는 곳은 먼저 앞서가기도, 손을 잡아주기도 하며 츤데레 같은 친절로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탐사가 다 끝나고 밝은 곳에서 서로 얼굴 보며 제대로 된 인사를 했는데, 아뿔싸 그 아인 고등학생도 동생뻘도 아닌, 나와 동갑내기 대학생이었다.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누나 어쩌고 저쩌고 하며 친한 척하길래 ‘뭐 이런 애가 있지?’ 하는 신기한 생각에 그냥 아무 말 안 했단다. 그것도 모르고 끝까지 “고마우니까 누나가 밥 사줄게”하며 식당까지 데리고 갔으니 얼마나 무안하고 미안하던지….
엉뚱한 착각 덕분에, 잠시의 민망함과 창피함은 있었지만 지나치게 한산하고 으스스하기까지 한 동굴 탐사를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고 누나(?)가 쏘는 밥상 앞에서 우리는 여행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때 그 친구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입구에서 동동거리며 망설이다 발을 돌렸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생각해 봐도 생생하게 그날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주말도, 휴가 시즌도 아닌 평일. 입장권을 끊어 놓고는 아무도 동굴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어 누군가의 인기척을 막연히 기다리던 그 시간.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낯선 타인. 그 사람에게 주저 없이 말을 걸었다. ‘나와 함께 가자고’.
누군가는 묻는다. “아무리 혼자 다니는 여행이지만 매번 이런 인연과 일들이 일어난다고?” 아무래도 스스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 거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담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질문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고, 모두 실제 있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나에게 유독 이런 다양한 사연들이 다가왔을까? 그 질문에 오래도록 답을 찾지 못했었다. 그냥 운이 좋았어, 또는 다른 사람보다 모험심이 강했나 봐, 그도 아니면 내가 좀 유별난 사람이구나 하는 자아비판도 해봤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타인의 해석(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란 책에서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여행을 한다는 건 낯선 이와의 만남에서 경계를 풀어야 하는 작업이 수반되는 일이다. 특히 홀로 여행은 더욱 그렇다. 혼자만의 시간에 침잠되는 목적으로 여행을 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과 관심에 노출되고 그들과의 교류를 차단하기는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말한다. “낯선 사람은 일종의 위험입니다. 그 사람이 친절한 사람인지 위험한 사람인지, 재미있는 사람인지 지루한 사람인지,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인지 행복한 사람인지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하고 굉장히 서툽니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사람과 대면하는 걸 마냥 피할 수만은 없겠지요. 세상에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들은 대부분 과감하게 다른 사람과 말을 터보면서 시작됩니다. 그 첫걸음은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만의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사연으로 가득한 홀로 여행은 낯선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누나랑 같이 들어가자”
“바다 보러 갈 거예요”
그 한마디에 수많은 인연과 사연과 의미들이 나에게로 걸어왔다.
난 운이 좋은 사람도, 모험심이 많은 사람도, 유별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먼저 말을 건네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이유 하나로 40년째 멋진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