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날도 쌀쌀해 믹스커피 한 봉을 탔다. 포털 창에 큰따옴표로 검색어를 넣고 해당 신어의 빈도를 검색하고 쓰임을 체크했다. 그제야 생각난 듯 종이컵에 손을 댔다. 앗! 마우스 패드에 커피 물이. 종이컵을 들고 밑을 확인했다. 바닥면의 밑 종이와 옆면의 원통형 종이가 맞붙은 하단으로 갈색 얼룩이 유독 심했다. 티슈를 뽑아 두 번 접어 마우스 패드에 대고 종이컵을 올렸다. 커피 물이 티슈에 금세 번졌다. 커피가 마르면서 티슈가 골판지처럼 우그러졌다.
커피를 타지 않았다면 컵이 멀쩡한 줄 알았을 거다. 밑이 터졌는지 아닌지 일부러 종이컵을 들어 확인한 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종이컵이 뭔가를 담는 본래의 기능을 하지 않고 포개져 있는 한, 사용자는 종이컵이 성한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써 봐야 안다. 자질구레하게 애를 먹어 봐야 안다. '아, 밑이 빠졌구나.' 인식을 하고, 어떻게 할지 방법을 생각해 낸다.
잠시 고민했다. 새 컵을 가져다 커피를 부을지. 일회용인데 뭘 그렇게까지. 이미 커피는 식을 대로 식었고 뭐 대순가 싶었다. 호로록. 티슈로 컵의 밑을 감싸쥔 채 커피를 마셨다. 휴지통에 휙-. 가볍게 '통' 소리를 내며 종이컵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종이컵의 접합 부분은 언제부터 말썽이었을까. 제조사에서 하자 있는 물건을 출시했을 리는 없고.
지루한 장마에 매일매일 축축해져 종이컵에 미세한 변형이라도 일어났을까. 애초에 물을 머금기엔 너무 얇은 종이였을까.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 얇은 종이와 무거운 공기가 매일매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