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도는 몇 도인가

by 어슴푸레

출근하자마자 얼음물을 떠 놓고, 외부망에 접속해 메일을 열고, 전날 퇴근하면서 올린 검토 목록을 웹 폴더에서 내려받고, 철해 놓은 이면지를 책꽂이에서 빼고, 연필꽂이에서 펜을 꺼냈다. 딸깍, 전환기의 동그란 버튼을 눌러 내부망으로 들어가 메신저와 내부 메일에 접속해 쌓인 메일을 열람하니 20분이 훌쩍.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머그에 손을 가져갔는데 맙소사! 컵 받침은 물로 흥건하고 머그 표면은 물방울로 가득했다. 가끔 있기도 한 일인데 흡사 땀을 흘리고 있는 듯한 머그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사진이 찍고싶어 진다. 이렇게 또 글감이!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일해야지, 일. 으윽. 휴지 한 장을 톡 뽑아 컵과 컵 받침을 닦았다. 한 장으로 모자라 한 장을 또 뽑아 물기를 겨우 제거했다. 다시 전환 버튼을 누르고 외부망으로 넘어왔는데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머그의 물방울이 자꾸만 내게 말을 걸어온다.


"김이 서리다, 이슬이 맺히다, 결로, 이슬점 온도."


'공기중에 있던 기체 상태의 수증기가 차가운 물체의 표면에 닿거나 공기의 온도가 내려가면 생기는 물방울'과 관련된 표현들을 속으로 뱉어 보니 시적이다. '김이 끼다'보단 '김이 서리다'가 더 문학적이고, '이슬이 맺히다'는 어쩐지 눈물이 나야 할 것 같다. '결로' 하면, 둘째 낳고 평을 줄여 갔던 복도식 아파트의 까만 곰팡이가 생각나고, '이슬점 온도'에 이르자 '지금의 내 온도는 몇 도지?' 싶어 조금 심각해진다.


<겨울 왕국>의 엘사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차가워졌다. 9 to 6 미련하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 달라졌다. 내 열의가 누군가에게는 그만 부렸으면 하는 부담이기도 함을 알았고, 계속해서 나를 앞으로 내보내기에는 이제 한계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식었다.


내 차가운 기운은 사무실 온도를 떨어뜨리기도 하는가.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직장 생활의 제1 덕목은 무던함이기에 크게 티를 내지는 않는다. 다만 일하는 속도가 느려졌고, 검토 목록을 송부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브런치를 열고 길든 짧든 끄적이게 된다. 글쓰기가 점점 삶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


가끔 온몸으로 내뿜는 쌀쌀맞음 때문일까. 뭘 물어보러 왔다가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는 동료들을 보면 차디찬 내 온도에 애먼 사람만 후드득 떨어져 나가게 떠밀었구나 한다. 아차! 해도 늦었고 거리를 좁히기엔 내 마음이 이미 이곳에서 멀어져 있다. 하루만큼 매일매일 결별하고 있는 느낌. 요즘의 내가 딱 그렇다.


나는 몇 도에서 포화되었을까.

나는 몇 도에서 차갑게 식었을까.

나는 지금 몇 도일까.

내면의 이 물방울들을 말끔히 닦고 새 컵을 꺼내 책상 앞에 앉을 날은 과연 언제일까.


서리서리 맺힌 머그의 물방울이 내게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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