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것들은 일단 시각적으로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묵은 김치에 하얗게 낀 몽글몽글한 골마지도 그렇고, 본래 하얬으나 누렇게 변한 묵은 옷도 그렇다. 후각적으로는 당혹스럽다. 묵은쌀이나 묵은 콩, 호박고지나 시래기의 뜬내는 그래, 나야 나. 잊었어? 다짜고짜 코를 쥐어박기 일쑤다.
먼지를 폭 뒤집어쓴 채 묵어 있는 살림살이와 창틀에 쌓여 까맣게 묵은 먼지에는 주인이 놓아 버린 고단하고 피로한 삶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싱크대와 세면대에 검은 버섯처럼 피어 있는 묵은 때. 내다 버리지 않아 집 안 한구석에서 썩고 있는 묵은 쓰레기에는 밀폐된 공기의 비린 냄새가 속속들이 배어 있다. 그때그때 해치우지 못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 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드러누운 모습이다.
어쩐지 그런 집에는 일구지 않아 몇 해 놀린 묵은땅과 갚지 못해 그대로 남은 묵은빚이 눈처럼 굳어 있을 것만 같다. 터진 사방에, 춤추는 칼바람을 체념한 듯 맞고 있을 것만 같다. 그곳엔 묵은 설움이, 묵은 상처가, 묵은 감정이 체증처럼 걸려 있을 것만 같다. 한 켜의 시간이 그 집 아이의 일기장에, 그 집 식구의 앨범에 묵어 있을 것만 같다.
멈춘 시간을 다시 가게 하려면 귀찮아도 청소부터 해야 한다. 맨 먼저 창을 열어 바람이 통하게 한다. 묵은 쓰레기를 가져다 버린다. 거품을 낸 세제 물에 염소 표백제를 타서 싱크대와 세면대를 솔로 벅벅 문댄다. 묵은 때가 까만 비듬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샤워기를 틀어 쭈르르 흘려 보낸다. 물을 틀어 묵은 빨래를 오래도록 빤다. 티브이와 소파, 창틀의 먼지를 쓱쓱 닦아 낸다. 물티슈가 검은 얼룩을 빈틈없이 가둘 때까지. 세간의 남은 물기에 먼지가 앉지 않게 마른걸레질로 마무리한다.
그래도 집 안 어딘가에는 여전히 묵어 가는 것이 있다. 간수가 빠진 7년 묵은 소금, 깊은 맛이 나는 10년 묵은 장, 곰삭은 맛이 나게 알맞게 묵은 장아찌, 향이 좋게 묵은 술, 약효가 좋다는 3년 묵은 쑥. 이들은 모두 세월을 맞으며 새로운 맛과 이로움을 만들어 낸다.
이 세상 묵은 것들을 보며 생각한다.
멈추지 말자고.
시간을 친구 삼아 나도 그렇게 살아 내자고.
아무도 눕지 못할 묵은 방은 되지 말자고.
아무것도 나지 않는 묵은 논밭은 되지 말자고.
잘하든 못하든 있는 재주를 묵히지 말자고.
둔갑술 고수, 100년 묵은 여우는 못 되더라도
18년 묵은 사전쟁이,
여기 있는 동안
같이 살아가는 말들을 모른 척하지는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