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퇴를 하고 딸애와 시내 나들이를 가는 중이었다. 양방향으로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출구 방향을 찾느라 혼이 쏙 빠졌다.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앞에 가는 사람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두 눈은 쉬지 않고 사주 경계를 철저히 했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받히지 않기 위해 걸음은 계속해서 빨라졌다. 으, 이 극도의 피로감. 기나긴 백색의 지하철 환승 통로를 정신없이 통과하고 있자니,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어디론가 쉴 새 없이 운반되는 택배 물품이 된 기분이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 눈빛, 방금 흔들렸는데?"
"응. 괜찮아."
딸애가 포착한 내 눈빛은 무엇이었을까.
통상 마음의 작용으로 눈빛에 동요가 일 때 눈빛이 흔들렸다고 한다. "이거. 이거 눈빛 흔들리는 거 봐. 바른대로 말 안 해?", "그의 고백에 흔들리는 눈빛을 숨길 수 없었어."처럼 쓴다. 그래서 그때의 눈빛 표정은 난처함, 두려움, 긴장됨, 혼란스러움, 당황스러움, 당혹스러움일 때가 대부분이다. 철렁하고 가슴이 내려앉으면 다음 수순으로 눈빛이 흔들린다.
다른 출구로 나가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어느 순간 '파박' 하고 스파크처럼 튀기라도 했을까. 그걸 용케 감지한 딸은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한 걸까.
직장 생활 6년 차가 되면서 지하철 타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지하철 안은 아침이나 저녁이나 숨이 턱 막혔다. 앉아서 가는 일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왕복 4시간 반이 넘는 출퇴근 시간에 매일매일 초주검이 되었다. 새 직장을 알아봤어야 했다. 나는 미련하게 버틸 뿐이었다. 나의 20대는 '수원-신길-방화'로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방화-신길-수원'으로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더 이상 받쳐 주지 않을 때 결혼을 했다. 그러는 사이, 지하철에서 정신을 몇 번 잃었다. 의사는 기립성 저혈압이라고도 했고, 미주 신경성 실신이라고도 했다. 끼니를 거르지 말고, 늦게까지 깨어 있지 말고, 음주를 삼가고, 목이 조이는 옷을 입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지킬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출근을 하려면 새벽에 나와야 했고, 시간 관계상 할 수 있는 식사란 점심 한 끼뿐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교열 아르바이트와 BK 21 프로젝트로 두 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회사 동료와 술 마시는 횟수가 늘어만 갔고, 목이 약한 나는 터틀넥을 주로 입어 목을 보호했다.
정신을 잃기 직전, 몸의 전조 증상을 생생히 기억한다. 사방이 빙글빙글 돌고, 토할 듯 속이 울렁거리고, 하얗게 질려 손부터 축축해진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고, 눈앞이 캄캄해져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갑갑하다가 어느 순간 졸도한다. 몇 번 그런 후로 지하철 타기가 더 무서웠다.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쓰러지기 전부터 미세한 공황 증세가 있었던 것 같다. 겨우 자리가 생겨,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반대편 승객과 눈이 마주칠 때면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난감해 가슴이 옥죄였다.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면 가끔 손버릇이 나쁜 변태 승객이 허벅지를 만져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앉아 있는 날이면 시선을 내 신발에 두거나, 지하철을 타고 있는 승객들의 신발로 옮겨 가기도 했다. 서 있는 날이 많았고 늘 화서역쯤에서야 자리가 났다. 한 정거장을 앉아서 가느니 쭉 서서 가는 게 덜 귀찮았다. 몸은 점점 축나고 마음은 지쳐 갔다.
어느 날부터 나는 노약자석 객차 연결 통로에 기대서서 무겁지 않은 내용의 산문집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 눈을 박고 정신을 팔고 있으면 아무리 서 있어도 힘들지 않았다. 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그렇게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체내 배터리가 10%도 채 충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타는 아침 시간대의 지하철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쓰러질까 봐, 정신을 잃을까 봐 불안한 마음이었다.
수원-신길-방화로 출발하고 도착하는 일상을 6년 넘게 보내는 동안, 내 눈빛은 숱하게 흔들렸다. 당혹스럽고,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고, 긴장되고, 두렵고, 난처해서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는 날이 수도 없었다.
젊었으나 생기가 없었고, 어렸으나 패기가 없었다.
강철 멘털이 아닌 이상, 사람은 쉽게 흔들린다. 마음이 흔들리고, 눈빛이 흔들리고, 세계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진폭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 빠지직 균열이 생긴다. 마음이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면 몸에 그것을 내재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