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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Feb 02. 2021

방망이를 그리워하는 교사라니

언어폭력의 유형엔 뭐가 있을까? 가장 흔한 게 욕설과 비난이겠지? 너희가 제일 싫어하는 패드립도 해당될 테고. 흔히 말하는 팩폭도 사실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 말 그대로 폭력이야. 차별, 비하, 조롱, 비교 등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모든 표현은 다 언어폭력이라고 할 수 있어. 내용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말 자르기, 끼어들기, 반말, 읽씹, 무시, 큰 소리로 화내는 것 등의 예의 없는 행동도 넓은 의미로 의사소통 상황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거라고 볼 수 있고. 이렇게 열거해 놓고 보니 ‘우와 나도 모르게 언어폭력을 하는 경우가 많겠구나’ 걱정이 되지 않니?      


쌤은 최근에 깨달은 게 있어. 외모를 칭찬하는 말도 엄격히 말하면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칭찬인데 뭐가 나빠?’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칭찬이라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 "와, 우리 진우는 키가 진짜 크구나. 멋있다.”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작은 키는 부정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어. 그 말을 옆에서 들은 키가 작은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자괴감을 느끼겠지. “피부가 하얘서 좋겠다.”, “날씬해서 예쁘다.”, “머리숱이 많아서 좋겠다.”, “코가 오똑해서 좋겠다.” 등등. 외모는 저마다 다르고, 대개는 타고나는 건데 그걸 두고 칭찬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외모에 대한 칭찬은 결국 편견을 강화시키잖아. 그러니 외모 비하로 상대를 공격하기도 하고, 자존감이 낮아져서 힘들어 하기도 하고. 이걸 깨달은 이후론 상대의 외모를 칭찬할 때 조심하게 돼. 대신에 되도록 노력의 결과에 대해 칭찬하려고 해. “우와, 다이어트 한다더니 정말 살이 많이 빠졌네, 대단하다.”라든가, “머리스타일 바뀌었네, 잘 어울린다.”라든가. “못 보던 사이 피부가 정말 좋아졌네. 비결이 뭐야?”라든가.      


그런데 사실 난 미모에 약한 사람이라(응, 쌤은 예쁘고 조신한 남자 좋아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의 외모를 칭찬하고 있을 때가 많아. 인식도 못하는 사이에 폭력을 저지르게 되는 거지. 이게 제일 문제야. 문제인 걸 모르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니까.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결정장애라 선택을 못 하겠어요. 어느 게 더 예쁜가요?”라고 묻는 글을 봤거든. ‘결정 장애’라는 말이 참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었어. 공차기를 좋아하는 학생이 “저는 공성애자예요.”라고 했을 때도, 풍선껌을 못 분다는 학생이 “저는 껌맹이에요.”라고 했을 때도 그저 재치 있고 귀엽다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날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결정 장애라는 말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글을 보게 됐어. “그냥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하면 될 걸 굳이 장애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있나요? 장애인들이 그런 표현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요?”라는 질문에 순간 낯이 뜨꺼워졌어. 아, 나에게는 언어유희에 그치는 말들이지만, 그것으로 불편이나 차별을 겪고 있는 사람은 결코 웃어넘길 수 없겠구나. 시각장애와 결정장애는 다르지. 전자는 삶이고, 후자는 비유니까. 어떤 이의 불편과 고통이 누군가의 편의나 유머를 위한 보조관념으로 가볍게 사용되는 건 옳지 않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는 한, 그래서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엄청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면, ‘공성애자’라는 표현을 유머로 사용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그래서 언어적 감수성을 길러야 해. 그렇지 않으면 흔한 일상적 대화에서도 잘못을 저지르게 되니까. 나는 그냥 한 말인데 상대의 마음이 상한다고 생각해봐. 심장이 쫄깃해지지 않니?          



이쯤에서 쌤이 진짜 진짜 부끄러운 고백을 할게. 이건 실화인데 말이야. 10년도 더 전에, 그러니까 쌤이 고등학교에 있었을 때, 그때는 교사가 학생을 몽둥이로 때렸어. 정말이야, 야자 같은 거 빠지고 도망가면 그랬어. 너무 충격적이지? 쌤이 너희 엉덩이를 때린다고 생각해봐. 상상도 안 되지? 그런데 그땐 그런 일이 흔했어. 학생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지. 그러니 폭력을 교육으로 착각했고. 난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한 일인데도 믿기지가 않아.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 진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래서 앞에서 말한 감수성이 중요하다는 거야. 문제의식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면서도 몰라. 체벌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해. 너무 안타깝지?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고, 내가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해. 만약 다른 사람이 그런 일을 했을 때는 용기를 내서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언어폭력에 관한 수업을 하는 중이었다. 여느 때보다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았다. 누구도 언어폭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일 테니. 언어폭력의 예를 언급할 때는 다들 진지한 표정이더니, 체벌을 했던 나의 흑역사를 고백하는 대목에선 호기심, 놀라움, 경악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헐, 말도 안 돼.’ ‘설마, 진짜 몽둥이로 때렸다고요?’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내가 했던 행동이긴 하지만 나조차도 놀랍고 믿기지 않으니 아이들의 표정이 이해가 된다. 물론 지금의 나는 학생에게 모욕적인 말을 한다거나, 학생의 몸에 손을 댄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 맞나 싶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때를 떠올릴 때면 안타까움과 참담함에 가슴이 저릿하다. 매번 벌을 받는 느낌이다. 사과할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잘못에 대한.      


그 당시 최고의 체벌은 반삭이었다. 고등학생에게 머릿빨은 최애 아이템이었을 텐데 그걸 내가 빼앗았다니... 미안해 Y.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야자 빠지는 게 그게 뭐라고, 무단 외출이나 무단 조퇴가 뭐 대수라고, 흡연이 뭐 얼마나 큰일이라고 그렇게 엄격했나 싶다. 나보다 한 뼘이나 더 자란 덩치 큰 아이들은 또 어쩜 그렇게 순종적으로 그 순간을 견뎌주었는지 그것도 놀랍고 마음 아프다. 오래지 않은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은 교사가 매를 드는 것도, 학생이 맞는 것도 묵인이 되던 때였다. 한 번은 우리 반 아이가 잘못을 해서 아버지께서 학교에 오시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을 무릎 꿇게 하시더니, 아이의 뺨을 연거푸 때리셨다. 폭력이 만연한 시절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나라고 학생을 체벌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옳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경험도 능력도 아량도 부족했던 나는 매일매일 학생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 말이다. 고된 힘겨루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씻지도 않고 한참을 거울 앞에 서 있곤 했다. 낯선 패잔병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나일 테지만 너무 낯설고 기괴한 모습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겼었나, 이게 나야?’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한참을 들여다봤었다. 일그러진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울고 싶은 날이 많았고, 더러 눈물을 훔치기도 했는데, 한 번은 펑펑 울고 말았다. 그것도 동학년 선생님들 앞에서. 임용 다음 해, 교사 2년 차의 회식 자리에서였다. 신규 선생님 한 분이 선배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아이들을 혼내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아요? 많이 애쓰지도 않고 그냥 두는데, 왜 그 반은 그렇게 잘 굴러가요?” 질문 끝에는 물음표 대신 눈물이 방울방울 따라붙었다. 그 옆에서 나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함께 울었다. 밝고 열성적이며, 수업도 생활지도도 척척 잘 해내는 멋진 신규였지만 그녀 역시 체벌을 하는 것이 괴롭고 부담스러웠던 것이다.(술 먹고 우는 게 최악의 주사라는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선배님들,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눈물 폭탄을 투척한 다음 날에도, 그 다음해에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회식의 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에 복귀하는 것 아니던가. 나는 이 점에서 꽤 유능한 직장인이었다. 귀신같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날의 눈물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학생이 불쌍해서 울었다면 더 이상 매를 들 수 없었겠지만, 아마도 나는 나를 위해서 울었던가 보다. 잔을 비우며 괴로움도 죄책감도 슬며시 덜어내 버렸나 보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참회의 장면이 없다.      



참회는 없었지만 변화는 찾아왔다. 이태 후부터는 다시는 매를 들지 않게 되었다. 학생 인권 조례가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법안이 발의되고 제정, 시행되기까지 잡음과 갈등이 많았지만, 나는 환영하는 마음이 컸다. 학교 붕괴나 교권 하락을 경계하는 목소리보다 ‘학생의 존엄과 가치, 자유와 평등’을 담아내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과 타협하며 체벌을 합리화하지 않아도 되고,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강제하지 않아도 되고, 복장과 두발을 단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의미 없는 힘겨루기에 진을 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출산과 육아로 4년간 휴직을 하고, 중학교로 복직을 했을 때 학교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복장과 두발이 전면 자유화된 것은 아니었으나, 규정이 상당히 느슨해졌다.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매시간 교사가 해당 반의 수업 태도를 평가하는, 일명 ‘좋은 수업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행했었지만 이것도 곧 폐지되었다. 상(벌)점제마저 시행하지 못하면 도대체 어떻게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학교는 굴러갔다. 사실 큰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다. 여전히 교사는 학생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훈육을 하고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학교폭력, 절도, 흡연, 금품 갈취 등의 심각한 문제 행동은 선도위원회를 통해 지도했다. 담임으로서 참여하는 선도위원회는 무척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학생의 잘못을 확인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과정이 학생과 부모에게는 상처로 남을 만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모두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학생이나 학부모는 더러 눈물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부터 새로운 중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규정은 더욱 느슨해졌고, 작은 규정 하나를 바꾸는 데에도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느라 해가 바뀌었다. 극히 일부의 심각한 문제 행동에 대해서는 학생생활교육위원회를 열어 지도하지만, 절대 다수의 갈등은 회복적서클이나 상담(특수한 경우 외부 전문기관을 이용한다)을 통해 해결한다. 교사의 폭언이나 강압은 전혀 없다. 1년에 두세 번 내 목소리가 커지는 것 정도가 강압이라면 강압이다. 다른 분들은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존경스러울 만큼 한결같이 친절하고 너그럽다.

지각을 하면 5분 이내의 교실 청소를 한다든가, 과제를 하지 않으면 남아서 하고 간다든가, 문제 행동을 했을 때 시를 외우거나 좋은 글을 따라 쓰게 하는 것 등이 훈육 방법이다. 그리고 수업을 방해하거나 잠을 자면, 잠깐 일어나서 교실 뒤쪽에 서 있다가 참여할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자리로 돌아와 앉으라고 하는 것 정도. 내가 보기에 학생 입장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재는 아마도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것이다. 전화의 내용은 자녀의 모습을 전하면서, 함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학생의 입장과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 가능한 한 완곡하게 말씀드리고 웃으면서 통화를 한다. 협력을 부탁드리는 것이지 가정에서의 훈육을 당부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자리임이 분명한 학생생활교육위원회 역시 '학생과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이해하며, 도울 방법을 찾는 자리'로 바뀌었다. 이전의 선도 위원회가 학생과 학부모를 추궁하고 비난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토닥이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느낌이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금연을 하고, 다른 학교 일진 선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의기투합하여 방법을 궁리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구)선도위원회라니. 학생과 학부모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 잠깐 뭉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길지 않은 교직 생활인데도 학교의 변화가 눈에 보인다. 나의 학창 시절, 체벌은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신규 교사였을 때 체벌은 괴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 변화가 눈물 나게 감사하다. 법과 제도가, 교육 목표와 방법에 대한 고민이, 가치 추구와 합의가, 깨달음과 노력이 이것들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이보다 미성숙하고, 교사치고는 꽤 부족한 인성을 지닌지라 자주 실수하고 종종 잘못하고 더러 욱하지만 아이들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내하고 양보하고 눈감아주기 위해 애쓴다. 훌륭한 교사가 될 마음은 없지만 나쁜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부족한 게 많아서 매일 좌절하면서도(겸손 아님), 학생을 대하는 내 태도가 해마다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적으나마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따갑다. 이해한다. 지금 부모가 된 사람들은 불합리와 폭력이 만연한 학창 시절을 보낸 분들이다. 학교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앞 세대의 과오를 지금의 학교와 교사가 감당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회복할 수도 없고 사과할 수도 없는 나의 잘못들을 반성하며, 그때의 아이들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오늘의 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다. 그러나 무얼 한들 그때의 잘못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반성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지난날을 끊임없이 돌아보게도 하고, 앞을 내다보게도 하며 나를 성장하게 할 테니.      

그 당시 매 좀 맞았을 친애하는 S군. 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너그럽고,  나는 나이가 들수록 부끄러움이 커진다.






맹세코 매를 들었던 그 시절이 그립지 않습니다. 부끄럽고 아플 뿐입니다.      

누군가 학창 시절을 글에 담아내면, 저는 긴장이 됩니다. 교사의 비인간적인 모습이나 부적절한 언행이 그려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져서, 제가 욕을 먹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럴 땐 후딱 읽어 넘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보아넘길 수 없는 댓글을 발견했습니다.



'방망이로 패도 아무 말 하지 않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교사라니'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화가 났다가 눈물이 나더군요.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을지 짐작하기에 이해는 합니다만,  그 댓글이 가슴에 턱하고 걸려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럴 리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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