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매해 어느 것 하나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온전한 경어 쓰기는 어째 좀 부끄럽고, 막상 수업을 하다 보면 비효율적일 때가 있다는 핑계로.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은 타고나길 글렀다는 이유로. 세 번째도 말해 뭐해요 암요암요 제 탓이지요.
며칠 전,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맞춤법 수업 시간. 먼저 학생들에게 퀴즈를 풀어보게 했는데 지난 학기 주제 선택 수업에서 이미 같은 문제를 풀어보았던 아이의 점수가 너무 낮기에 비밀 채팅을 보냈다. “P야, 너 지난 학기에 주제 수업 듣지 않았니. 점수가 왜 이리 귀여워?????”하고. 비난하거나 나무랄 마음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내 딴에는 아는 척, 환기, 농담 등의 의도로 말을 건넸던 것인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틀릴 수도 있죠.”
채팅을 보내면서 아이의 반응을 짐작해 보지는 않았지만, ‘어려웠어요’, ‘기억이 안 났어요’ 등의 평범한 대답이나 ‘앗, 죄송합니다’ 정도의 발랄한 대답을 기대했었는지 모르겠다. 의외의 대답에 가볍게 대꾸를 했다.
“처음 보는 듯 틀렸으니까 묻는 거죠.”
그러자 아이의 날카로운 대답.
“저도 사람인데”
‘아, 이건 너무하잖아. 내가 뭐라고 했다고 이렇게 반응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점수가 왜 이 모양이니? 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완곡하게 표현한 것 같은데. 나한테 왜 이렇게 달려드는 거야. 됐어. 알았어. 너랑 나랑 기준도 생각도 다르겠지. 그래 처음 보는 것처럼 틀릴 수 있겠지. 알았다고.’ 괜한 말을 했구나 싶었다. 나도 날 선 대답을 했다.
“응 너 편한 대로 해”
다른 아이들이 문제 풀이를 끝내가던 참이라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이제 선생님 설명 시작할게.”라고 말하고 수업을 하려는데 또 다시 온 채팅.
“저도 사람이고 다 큰 성인도 아닌 아직 배우고 있는 학생인데 문제를 틀렸다고 그렇게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씀하시니 저는 좀 기분이 나쁘네요. 다른 애들한테도 이렇게 말하나요?”
나도 이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했다. 지금 누가 누굴 비꼬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다른 애들한테도 이렇게 말하느냐니 이건 뭐 인신공격이잖아.
“나도 기분이 안 좋네. 쌤은 귀엽다는 말밖에 안 했는데. 네 메시지가 훨씬 과해.”
내 말에 아이는 “저는 귀엽다는 말이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어요.”라는 메시지를 한 번 더 보내왔다.
이 상황을 모르는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가만가만 심호흡을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했다. 그 아이 보란 듯이. ‘네가 날 흔들어도 난 아무렇지 않아. 멀쩡하게 수업할 거야. 그만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P의 담임 선생님께 “정말 과하네요. 얼마나 날카로운지 꼬챙이 같아요. 아, 기분 상했어요.”라고 말하며 상황을 전했다. 담임 선생님도 깜짝 놀라며 P가 왜 그랬지 하신다.
“그러니까요, 그런 애인지 몰랐어요. 밝고 유머 감각도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저를 왜 물어요. 진짜 깜짝 놀랐네요. 아, 맘 상해”
그날 저녁 P와 나눈 채팅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마지막 문장이 눈에 띄었다.
“저는 귀엽다는 말이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어요.”
아니, 당연히 칭찬이 아니지. 여기서 ‘귀엽다’는 말은 ‘이미 공부한 건데 점수가 너무 낮네, 이번엔 제대로 배워보자.’라는 뜻이잖아. 지금 칭찬할 게 뭐가 있는데?
이 아이는 교사가 입을 열면 으레 칭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아이와 나는 시작점부터 이미 어긋났던 걸까.
다음 시간, 복습을 위해 같은 문제를 다시 풀게 했다. 잠시 후에 들리는 S의 경쾌한 목소리,
“선생님 저 어제보다 1점 올랐어요.”
나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어머, 귀여워! 1점이라도 올랐으면 잘한 거지. 괜찮아요.”
귀엽다라는 말은 내가 평소에도 잘 쓰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순간엔 분명히 P를 의식하며 한 말이었다. 귀엽다는 말은 이렇게나 별거 아니라고, 화낼 만한 말이 절대 아니라고. P의 점수는 어제와 같은 40점대였다. '뭐야, 나한테 화낼 시간에 공부나 좀 하지.'
아, 꽤선생의 뒤끝이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여전히 ‘귀엽다’라는 말이 꽤나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단어보다 더 부드러우면서 그 아이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 만한 단어를 찾아보며 혼자서 또 마음이 상했다. ‘점수가 참 겸손하구나?’ 흥, 이 말에도 분명히 기분 나빠했을걸. ‘점수가 낮구나?’ 아니아니, “그게 뭐 어때서요. 저도 사람인데.”라고 했겠지. 뭐라고 말했어도 그 아인 나한테 덤벼들었겠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정답을 찾아버렸다. “P야, 1학기 때 배웠던 건데 기억이 안 났니? 어려웠나 보구나. 괜찮아, 오늘 다시 공부하자.”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연이어 생각했다. 만약 내가 무심코 한 말에 직장 동료가 마음 상해하며 “저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죠. 틀릴 수 있죠. 비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네요.”라고 말하면 난 뭐라고 답했을까. “난 그런 뜻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오버해요. 듣고 싶은 대로 들으세요. 편한 대로 해요. 그리고 당신 반응이 더 과해요. 저도 기분 상하네요.”라고 할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어머 죄송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마음 상했다면 사과할게요.”라고 했겠지.
역시나. 학생을 존중하겠다는 다짐은 늘 이렇듯 가볍게 깨지고 만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는 어른이고 너는 아이야,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라는 선 긋기를 해두고, 그에 걸맞다고 여겨지는, 아무도 동의한 적 없는 암묵적인 반응들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 상황에 놓이면 황급히 그 아이를 저평가해 버린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지고, 내 행동이 문제없는 것이 되니까.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다. 의논이나 정보 공유라는 핑계로 다른 선생님들께 아이와 있었던 문제 상황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 내 행동과 감정을 이해해 달라고, 내가 문제가 아니라는 동의를 얻고 싶은 거다.
학생을 존중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동료 교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별로 없고, 일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데 학생만큼은 쉽게 판단하게 된다. 존중하자고 다짐해 놓고도 금세 잊어버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꼰대가 되는 건가 보다.
사실 이 글을 쓰느라 아이와 나눈 대화를 다시 들여다 보면서 또 슬그머니 화가 올라왔다. 깨닫기도 했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나를 존중하지 않는 그 아이의 행동엔 또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아이 말대로 나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나는 어른이고 교사니까 을이어야 한다. 똑같이 감정적으로 행동해도 학생은 미성숙한 존재이니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나는 어른답지 못한 거고 선생 자격이 없는 것이 된다('응 너 편한 대로 해'라고 한 말은 사실 좀 부끄러웠다.) 아이가 잘못을 한 그 순간, 나는 아이와 달리 바르게 행동하고 아이에게 배움을 주어야 하는 거다. 매번 잊게 되고, 매순간이 힘들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을이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