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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Sep 25. 2020

먹지도 않은 걸 먹었다고 해서 미안해

이해심을 배우는 중입니다만...

                                                                                                                                                    

“이쁘나, 니가 지금 딴짓을 하니까 쌤이 수업을 할 수가 없네. 쌤은 너를 위해서 수업을 하는데 니가 안 들으면 당연히 수업을 못 하지. 도저히 할 수가 없어. 넌 지금 여기 스물아홉 명이 앉아 있으니까, 니가 이십구분의 일인 줄 아나봐. 아니야, 그렇지 않아, 쌤은 널 1/29로 생각하지 않아. 난 너 들으라고 수업하는 거야. 나한테는 니가 1/29이 아니라 그냥 1이야 1.”

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얘야, 쌤이 지금 너 때문에 수업을 할 수가 없네. 도저히 집중이 안 돼서 말이야. 내가 니 과외 선생님이니? 내가 너만 가르쳐? 지금 니 행동은 친구들의 수업권과 내 교육권을 방해하는 행동이야. 이건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야.”라고 말할 땐 네, 스스로도 좀 찔렸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너를 위해 수업을 하지만 너만을 위해 수업을 하는 건 아니다, 이건 모든 공교육 교사의 숙명이잖아요. 이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이 정도도 못해요?


고백할게요. 물론 더한 말도 했어요. 차라리 졸거나 자는 거면 이해하겠는데(거짓말임. 사실은 이것도 보아 넘기기 힘들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엎드려 있는 학생을 보니 순간 화가 나서,

“진짜, 너무 하네. 이건 아니지. 너 진짜 예의를 쌈싸먹었구나.”라고 말했어요.


으잉! 쌈싸먹다? 어감이 강해서 말해놓고 깜짝 놀랐어요. 싸가지 없다라고 말한 적 없는데 그렇게 말한 느낌. 이미 쏟아낸 거니 주워담을 수 없고요. 주워담을 분위기도 아니고요. 그럴 기분도 아니었어요. 제 나름대로 그 아이를 오래오래 참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화가 날 만도 했거든요.(라고 스스로를 좀 변호해 보겠습니다.)


제가 급정색에 일가견이 있거든요. 교실은 이미 순식간에 냉랭해졌고, 그 아이는 먹지도 않은 걸 먹었다고 혼이 났고, 너그럽지 못한 제 마음도 밉고, 방정맞은 몹쓸 입도 밉고. 그 와중에 쌈싸먹다가 어디서 온 말인지 쓸데없이 궁금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왔어요. 그러고 보니 다음날 동아리 수업이 있더군요. 그 아이가 제 동아리 소속인데 말이에요. 흐으 내리 세 시간을 만나야 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기회죠. 사과해야죠. 다음날 동아리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그 아이를 복도로 불렀어요. 어제는 쌤이 미안했다. 순간 너무 화가 났었다. 친구들 앞에서 혼나려니 정말 당황스러웠겠다. 미안하다. 쌤도 앞으로 조심할 테니 너도 태도를 좀 바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이놈의 잔소리는 또 왜 따라붙는 걸까요.) 그런데 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이가 웃네요. 어제의 곤란함과 저에 대한 서운함 등이 떠올랐을 텐데 그런 건 전혀 없다는 듯이 그저 웃기만 해요. 그 모습이 마음 아팠어요. 자기 감정을 알아채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아이처럼 보였거든요. 2년전 사고로 아빠를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낸 아이라고 들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맞닥뜨린 아빠 없는 삶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아픔도 슬픔도 절망도 저 미소 뒤에 감추고 그 시간들을 버텨왔겠지. 스스로를 지키고 위로하는 방법이었겠지. 안 그래도 늘 마음에 걸리던 아이였는데 제가 그 아이의 버거움에 무게를 더해준 게 아닌가 싶어서 착잡했어요.


혼내지 말걸. 그러려니 할걸. 좋게 말할걸. 어차피 혼낸다고 달라지지도 않는걸. 그냥 아이 마음이나 살펴줄걸. 가만 생각해 보니 학생한테 화를 낸 후, 화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늘 후회와 패배감이 뒤따랐을 뿐. 여윽시 제가 문제네요. 맞아요 제가 문제예요. 저야말로 예의도 없고 개념도 없고. 아, 맞다. 개념을 밥말아먹다! 이 느낌으로 말한다는 게 그만 예의를 쌈싸먹다가 된 거예요. 개념을 밥에 말아서 먹어 없앤 것처럼, 예의를 쌈으로 싸서 홀랑 먹어버렸다는 거죠. 아니, 급 어원 풀이를 해본 것뿐이고요. 네, 앞으론 이런 말 안 쓸게요. 자신 없지만 약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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