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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르셔 꽤 Sep 30. 2020

고객님은 다 싫다고 하셨다

이해가 안 되지만 이해가 된다.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위두랑에서 동영상 컨텐츠로 수업을 진행하던 시절, 그분들은 스스로 시간 관리하는 것도, 정해진 시간 안에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제출하는 것도, 동영상을 보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다 힘들다고 했다.


칫, 나는 그 영상 하나 만들려고 두세 시간밖에 못 자며 컴퓨터 앞에 붙박이로 앉아서 이틀씩 사흘씩 애를 썼는데. 스킵 스킵 스킵 해가며, 친구랑 답안 공유하며, 또는 아예 미열람, 미제출로 내버려 두고, ‘나는 자연인이다’ 일반인 편 집방 찍은 분이 누구시더라. 그래서 어떻게든 영상을 넘기지 않고 보게 하려고, 그 아름다운 시구들을 토막 내어 영상 여기저기에 집어넣고는 ‘수업을 다 듣고 시구를 완성해서 과제를 제출하세요’라고 하거나, 영상 중간중간에 음성으로 돌발 과제를 제시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게 누구시더라. 저도 진짜 그렇게까지 비루하고 지질한 방법으로 과제를 내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뿐인가요. “고객님, 현재 오늘 수업 3과목 모두 미열람 중이시네요. 어서 열람과 과제 제출 부탁드립니다.”하며 텔레마케터 체험을 하게 만든 게 누구시더라. ‘어라, 이거 분명히 조금 전에 봤는데’. 하다못해 수식어나 어미라도 바꾸지, 친구한테 받은 활동지를 고대로 베껴내는 복사 기능을 선보여서 눈도 침침하고 목도 아픈 내가 이미 검사한 과제를 몽땅 다시 클릭하며 탐정 체험을 하게 만든 게 누구시더라. 그리고 말이야, 네 학습지인데 왜 친구의 이름이 적혀 있는지 그것도 정말 궁금했다 나는. ‘역병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친구가 너무나 그립고 애달파서 이름 칸에 너도 모르게 그만 친구의 이름을 적었던 것이겠지? 정말 눈물 나는 찐우정이다.’ 이러다 내가 보살이 되는 건 아닐까, 성직자 체험까지 하게 만든 게 누구시더라.     




너희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방법을 찾아야지. 고객님, 스스로 시간 관리하기 힘들다 하셨죠? 영상만 보고 이해하기 힘들다 하셨죠? 좋아요, 매일 학교에 올 수 없다면 학교를 집으로 옮겨 드릴게요. 이제 서로 얼굴 보며,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자유롭게 묻고 답하며 생동감 넘치는 시간을 보내기로 해요.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서 만나요!


눼에? 하루종일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눈이 피곤하시다고요? 하루종일 앉아 있으려니 허리가 아프시다고요? 어머, 혹시 목과 어깨 근육에 이상이 생기면 귀가 안 들리기도 하나요? 제가 방금 잘못 들은 건가요? 아니이! 여러분은 원래. 태곳적부터. 밤낮없이. 늘. 핸드폰이나 컴퓨터와 한 몸이 되어 지내셨잖아요? 소울메이트와 웬 느닷없는 거리 두기예요? 게임하고 SNS 할 때는 안 힘들었는데 하찮은 공부 따위를 하려니 갑자기 전에 없던 피로감이 느껴지시는 거예요? 그리고 고객님 정말 중요한 걸 잊으신 것 같은데 원래 공부할 때 앉아서 하는 거예요. 잊지 말아요, 지금 학기중이에요.


그런데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제 수업이 그렇게 재미 있나요. 카메라 너머에 있는 우리 고객님, 그렇게 자주자주 웃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무 때나 미소짓는 게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요. 키보드 위의 두 손이 바쁜 것도, 속독이라도 하시는지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것도, 제가 보여드리는 화면에 없는 번쩍번쩍한 섬광이 고객님 얼굴에 반사되는 것도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요. 제가 질문을 하니 안 들렸다며 다시 얘기해 달라고 하거나, 함께 소설을 읽다가 다음 차례를 읽어보라고 하니 어디인지  몰라서 허둥지둥 책을 뒤적이는 고객님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세계 1위의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면 뭐해요? 고작 1km 반경 안에 있는 우리가 이토록 의사소통이 어렵다니요. 고객님의 반응을 볼 때면 제가 아르헨티나에 있는 특파원을 부르기라도 했었나 잠시 착각을 하게 돼요.




눼에? 저 진짜 귀에 문제가 생겼나 봐요. 분명히 동영상 수업 힘들다, 쌍방향 수업 힘들다, 차리리 학교 가는 게 낫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물론 국어교사의 귀에는 ‘차라리’라는 부사가 좀 거슬리기는 했어요. ‘이것저것 다 싫은데 그 중 고르자면 그나마 등교가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꽤슨생’ 이런 뜻이잖아요. 아무튼 ‘에잇, 등교를 하고 말지 도대체 이게 뭐야’라고 했었으면서! 드.디.어. 등교를 하게 되었는데. 눼에? 뭐라고요? 학교 오니 힘들다고요??


‘캄다운 꽤슨생, 릴렉스 릴렉스... 심호흡 심호흡...’     

잠깐만요, 이런 질문 죄송합니다만, 저기요 혹시 학생 하기가 싫은 거 아니에요?


아 맞다, 나도 교사하기 싫지.



드디어 찾았다, 우리의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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