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혀 '소셜'하지 못한 내가 '그냥 문득 필받아' 소소하게 쓴 '소설'이다. 핍진성과 개연성을 망가뜨리지 않고 온전히 이야기를 만들어 낼 비상한 글쟁이의 재주는 내게 없는지라,
아무래도 보고 겪은 일이 소재가 될 수 밖에 없다.그러나 나는 이 글을 일단은 '소설' 이라 부르겠다. 그래야, 가끔 내 브런치북을 보고 '지랄한다' 혀를 차는 엄마의 지청구를 피해, "이거 다 지어낸 얘기야. 허구라고 허구!!" 라고 박박 우기며 도망갈 구멍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도, 그렇다고 온전히 진실도 아니다. 다만, 쓰는 이와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그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그런 '소소한 이야기' 이니, 그저 하늘 아래 이런 두 여자가 있구나..그럴 수도 있겠네..정도로 읽히기를 바란다. 몇편까지 이어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할머니 입장에선, 큰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아가씨가 다소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할머니한테야 세상천지 둘도 없이 잘난 아들이었다. 아버지도 없이 딸 셋, 아들 둘, 형제만 많은 집에서 제대로 신경도 못 써주고, 변변한 과외 수업 한번 못 시켰는데도 제 앞가림 알아서 하고, 최고 명문대에 합격한 똑똑한 아들이었다. 다섯 형제자매 중에서도 제일 든든하고 '오져 죽게' 알토란같은 엄마의 긍지요 자랑이었다. 퍽퍽하기만한 삶의 고단함을, 그래도 자식 하난 잘 낳았지.. 잠시 잊게 해주는,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때로는 어렵게도 느껴지는, 그런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건 바다 한가운데 똑 떨어진 섬같은 할머니의 세계에서나 그런거고, 세상 일이 돌아가는 육지에선 다른 얘기였다.
아들과 같은 대학을 나온 부잣집 큰 딸. 게다가 엄마는 당시, 군복무 때문에 휴학했던 아빠보다 먼저 학부 과정을 끝내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가는 중이었으므로 심지어 가방끈도 아빠보다 길었다. 얼굴이나 박색이면 그걸로라도 트집을 잡아보겠는데. 생긴 건 그린듯이 선녀 같을 건 또 뭐람. 그에 비해 홀어머니에 셋이나 되는 누이들, 공부시킬 어린 동생까지 있는 가난한 집 장남. 여러모로 밸런스가 맞지 않는 조합이요 지나치게 과람한 며느리감이었다. 누구보다 엽렵하고, 돌아가는 세태에 빠삭한 할머니가 이 결혼의 무게추가 처음부터 기울어지다 못해 아예 한쪽이 내려앉았음을 왜 인지하지 못했겠는가.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엄마와의 인연을 끊자고 할 정도로 반대를 했으며, 외할아버지가 돌아서서 눈물을 보이셨단 얘기는 들었어도, 이 결혼에 있어서 할머니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물어본 적도 없지만, 당사자에게 묻기에도 너무 늦었다. 이제 할머니는 그 결혼에 대한 당신의 첫 반응은 고사하고, 그 결혼을 거의 50년째 유지해온 아들의 얼굴도 잊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너무 해준 게 없는 아들이라, 그 아이의 결혼에 대한 어떠한 의사 표현도 진즉에 기권해버린게 아니었을까. 내가 그 시절의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 입장 바꿔 지레 짐작해 볼 뿐이다. 에미가 돼서 세끼 밥 안 굶기는 것만으로 할 일 다했다 싶은 세월이었고, 그나마 사춘기 지나서는 그 밥마저 스스로 찾아 먹는 걸 지켜만 봤는데, 이제와서 무슨 면목으로 그 결혼에 이러쿵 저러쿵 하겠는가. 그저 걱정은 되니, 대답을 바라지도 않는 질문 하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을 건 같다.
“그 아가씨가 니가 좋다고 하더냐...”
상처한 남자의 후처로 들어와 아들 둘을 낳고, 해준 것도 없는 그 아들 둘이 다 알아서 공부를 잘해 명문대도 턱턱 붙고,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가 일 잘한다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낳은 정은 없지만 기른 정만큼은 담뿍 든, 전처의 딸 셋도 보란 듯이 잘 건사하여, 삼발이처럼 정확하게 똑같이 고르다 할 순 없어도, 자매간에 크게 의 상할 일 없이 어진 사위, 똑똑한 사위, 재주 좋은 사위에게 골고루 시집보내 ‘친정 엄마’ 소릴 들으며, 고물고물한 외손주들이 하나씩 늘어나는 재미도 보기 시작했다. 죽은 본처에게 하나 꿀릴 것 없도록 어느 하나 엇나간 자식 없이, 자식 농사 이만하면 튼실하게 잘 일구었다 칭찬받을 만도 한데, 그러나... 정작 그 칭찬을 누구보다 듣고 싶었을 그녀의 남편, 나의 할아버지는 아빠와 9살 터울의 삼촌이 5살 때 돌아가셨다니, 그 많은 아이들과 덜렁 남겨진 채로 내내 동동거렸을테고...어느 누구에게서도 ‘잘했다’,‘수고했다’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세월이었을 거다.
남이 낳은 고만고만한 딸 셋에, 배 아파 낳은 아들 둘까지, 남편 없이 홀로 키웠어야 할 그녀의 세월은 나 역시 나이를 먹고 엄마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뼈 마디마디 칼바람이 들이치는 듯 신산하기 짝이 없다. 그 새끼들을 지켜내기 위해 평생을 어디서나 ‘을’이었을 할머니에게 어쩌면 며느리의 등장은 그녀가 처음으로 ‘갑’이 될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암만 해 준거 없이 혼자 컸다지만, 어떻든 시난고난 먹이고 입혀 키워낸 잘난 아들인데, 그 아들 덕을 봐서라도 난생 처음 ‘시어머니’라는 ‘갑의 옷’을 입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러기엔 내 엄마는... 할머니의 ‘을‘이 되기엔 지나치게 ’오버 퀄리티‘ 였다. 나는 지금도 엄마에게 묻는다. 어떻게 ’엄마같은 조건‘에서 ’아빠같은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냐고.
’미친거지, 연민이었다‘고 엄마는 눈을 흘기지만, 나는 안다.
무슨 드라마 여주인 양, 부잣집에, 미인에, 최고 학벌에, 선비 같은 아버지의 사랑과 가르침 덕에 사리 분별 정확하고 따뜻한 심성까지 갖추었던 여자. 내 엄마라서 미화하는게 아니라 객관적인 팩트와 조건을 놓고 보면 진짜 그랬다. 너무 좋아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딸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재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신부감이었다. 판검사에 의사,박사 등등 조건 좋은 ’사짜‘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마당에 줄을 섰다는, 돌아가신 외할머니 말씀이 아니었더라도 나도 알겠다. 내가 그 시절 아들 가진 엄마였어도 그 줄 앞쪽에 어떻게든 서보려고 기를 쓰고 머리를 들이밀었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그 ’뜨르르한‘ 혼사 자리를 다 마다하고 엄마는 아빠를 선택했다. 작은 키에 20대 중반부터 이미 벗겨지기 시작한 숱 없이 휑한 정수리. 이건 아빠 무등을 타고 찍은 내 아기 때 사진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아빠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내가, 지푸라기처럼 잡고 있던 아빠의 머리카락은 이미 탈모라는 슬픈 예감의 확실한 증거였으니 말이다. 홀어머니에 누이가 셋, 공부시켜야 할 동생까지 있는, 볼품없고 가난한 남자인 아빠를 엄마는 대학 1학년 때 같은 학교에서 만났다고 한다. ’인간을 걱정하는 모임’ 이라는 의미의 ‘인간 걱정회’라는 동아리의 창립 멤버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오래도록 친구였다가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었다. 내가 그 당시 엄마 친구였다면, ‘인간 걱정하기 전에 너나 걱정해라’ 하고 엄마를 말렸을 거다. 그 동아리는 몇 회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4명이었다던가.. 하는 창립 멤버 중 한 분이, 강릉에서 유학 온 아빠의 동기동창이었는데, 어려서 발음이 어눌했던 나는 오래도록,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그 분을 ‘강냉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때, 엄마가 마당에 줄을 서있던 조건 좋은 ‘사짜들’ 중 한 분과 결혼을 했다면, 나는 물론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니 이 글이 쓰여질 일도 없었겠지만 암튼, 나는 지금처럼 엄마가 그렇게 완벽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아빠와 결혼을 결심한 것이야말로 엄마의 미모, 집안의 재산, 명석한 두뇌보다도 그녀를 진짜 ‘반짝거리는 여인’로 만든 핵심이었으니까. 그 예쁘고 똑똑한 여자는 심지어 ‘사랑이 뭔지, 사람이 뭔지’도 알았던 거다. 내가 예의 그, 엄마를 뜯어말렸던 친구였다면 이 대목에서 질투가 나고 열패감이 들어서 이렇게 궁시렁 거렸을 것도 같다.
“재수없는 기집에 같으니라고...”
물론 이걸 엄마가 보면, 혀를 쯧쯧 차며 “또또..지랄한다.“할 지도 모르겠다. 헛다리 짚지 마라. 어렸고,곱게만 자라 물정 몰랐고, 철딱서니가 없어 그랬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의 삶을 평생을 보아온 나만은 알고 있다. 엄마는 철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 모든 걸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그런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만큼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을 뿐, 버금가게 똑똑한 할머니도 알았을 거다. 완패다. 졌다. 싶었을 거다. 어떻게 해도 안되는 너무 잘나고 고귀한 며느리가 들어온 거다. 반대를 할 수도, 쌍수 들어 환영할 수도 없는 상황. 게다가 세 딸들의 포악에도 군소리 없이, 신혼 한달도 안되어 홀시어머니에 도련님까지 모셔가야 하는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하겠다 했으니.. 난생 처음 보란듯이 ‘갑’이 되어볼 단꿈에 젖어있던 할머니에겐 이보다 더 세상 맥 빠지고 김새는 일이 있었을까.
그렇게 시작한 45년간의 동거이니, 뭐 그리 매일이 흐뭇했을 것이며, 어진 시어머니와 효자,효부가 엮어내는 정감 어린 나날들이기만 했을까. 내가 본 것만도 구비구비인데 켜켜이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있을 것인가. 뭐... 이 이야기의 당사자들은 이젠 다 노쇠하여 자신들의 지난 세월을 시시콜콜 들여다볼 여력도 의지도 없고(아니, 의지는 남아있을도)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실테니.. 나 혼자 이렇게 소설을 써보는 거다..
그때... 이 분들은 그러시지들 않았을까....‘아님 말고’ 하면..좀 비겁하려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