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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Nov 27. 2024

속담에 속지 말자

공든 탑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학교에서 국어시험을 봤다길래 몇점 받았냐 물으니 두개 틀렸다는 장초딩.

'그깟 초등 국어를 두개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꾸욱 누르고 눈은 부릅뜬 채, 입만 웃으며 문제가 뭐였는지 물었다.


"문제가 뭐였냐면....'나는 (                       ) 친구들이 하는 것을 잘 따라합니다.' 괄호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서 속담을 완성하는 문제였는데, 정답이 '귀가 얇아서' 라잖아."

"너는 뭐라고 썼는데?"

"발이 넓어서."


어떻게든 맞다고 우겨보고 싶은 다급한 에미 욕심에 머리를 굴려본다. 


"뭐.. 말 되지 않냐? 발이 넓으면 친구가 많다는 거고, 친구가 많으니 친구들이 하는 걸 잘 따라할 수도 있지 않나? 안 그래?" 


말하면서도 이건 좀 아니지 싶다. 이 문제의 핵심은 사교성이 넓다는 게 아니라 '줏대없이 남을 따라한다'는 의미를 가진 속담을 쓰는 것이었을테니. 심지어 이 문제는 보기까지 주어졌단다. 틀린 거 맞네. 깨끗이 인정.


"그럼 또 다음 틀린 문제는 뭐였어?"

"그건 보기 없이 주관식으로 쓰는 문제였는데,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의미를 가진 속담을 쓰는 거였거든."

"그래서 너는 뭐라고 썼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근데 답이 아니래?"

"정답은 '공든 탑이 무너지랴.'였어."

"아니. 이거야 말로 맞는거 같은데? '고생 끝에 낙도 없이, 공든 탑이 무너질 리가 있어?"

"아, 몰라! 담임쌤이 수업시간에 가르쳐준거라고, 정답은 무조건 하나밖에 없다고 하셨어."


하긴, 수학처럼 답이 똑 떨어지게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니, 그 많은 아이들 공정하게 채점하려면 변별력을 주기 위해서라도 수업 시간에 잘 들었는지를 확인해야 하실거고, 그러자니 수업시간에 가르쳐준 답으로 한정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못내 아쉬워서 혼잣말처럼 중얼중얼 

"고생 끝에 낙도 없이 공든 탑이 무너지랴."

"공들여서 노력한 탑이 비바람에도 안무너지면 그만한 낙이 어디있으랴."

시덥지 않은 문장 만들기를 하다가 문득, 좀 이상한 거다.

"고생고생 공들인 끝에 완성한 탑이 무너지랴.. 무너질 리가 없지...는 아니지.....무너지기도 하잖아... 그것도 아주 지대로 와르르르르...." 


살다보면, 고생 끝에 '개고생'이 오고, 공든 탑이 무너지다 못해 아주 산산조각이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탑만 무너지면 다행이게, 탑이 무너진 반경 몇키로 근방이 아주 초토화되어 다음 번엔 그 땅에 탑은 커녕 풀 한포기 심을 수 없을 만큼 황폐화되기도 한다. 당장 나만 해도, 20년 공들인 탑이 와장창 무너진 폐허에 넋을 놓고 앉아 차라리 저 무너진 탑에  깔려 죽었기를 얼마나 수도 없이 바랬던지. 그러니... '고생 끝에 낙이 오고,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라고 가르칠 일이 아니라. 공든 탑이 무너졌을때 그 이후 어찌 해야할지, 이젠 진짜 고생 끝난 줄 알았는데 또 시련이 닥칠 때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지를 가르쳐야 하는게 아닐까.


장초딩아, 엄마가 살아보니, 공을 많이 들인 탑이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하더구나. 아니, 무너질 탑이라도 세워지면 다행이고. 어떨 때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탑이 세워지지조차 않을 때도 많아. 중요한 건, 한두번 실패했다고 주저앉아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무너진 탑을 다시 세우고, 공을 들이는 노력을 계속 해야한다는 거야. 꼭 멋진 탑이 완성되지 않아도 좋아. 날마다 묵묵하고 부단하게 탑 쌓는 공을 들이는 노력을  이어가는 것. 그게 중요한 거지. 그러다보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너만의 탑이 어느새 우뚝 서있는 걸 발견하게 될 거야. 아마 그건, 매일 아침 등교길에 보는 롯데 타워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높고 눈부시게 찬란할 걸? 너만의 탑을 쌓아가는 여정을 언제나 응원할게.


잘 자라고 있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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