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태어나기도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너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직 어렸을때, 우리나라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는 건 들어봤지? 그래, 맞아. 지금의 우리나라를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한 바로 그 전쟁말이다.
곳곳에서 총탄을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 먹을 것이 없어 보리쌀에 물을 많이 넣고 미음처럼 끓여서 먹던 가족들.. 너희들 미음이 뭔지 아니? 죽보다도 묽어서 거의 물처럼 마셔야하는 정도의 끼니였어.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은 기차 지붕 위에 목숨을 걸고 올라타서 가기도 하고 소달구지에 실려가기도 하고... 그런 달구지나마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아기를 안고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지고, 아이 손을 놓칠새라 아프게 움켜쥐고 갔단다. 그러다가 포탄이라도 떨어지면 혼비백산하여 이리뛰고 저리뛰고 허둥대다가 그만 영영 생이별을 하고.... 그렇게 부모와 헤어진 아이는 전쟁고아가 되었지. 추위에 얼어죽기도 하고, 배고파 굶어죽기도 하고,몰리는 인파에 작은 아이들은 깔려죽거나 소달구지에 치어죽기도 하고....그야말로 참혹한 생지옥이었단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문을 연 학교가 있었고, 끝까지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수업을 받는 학생들도 있었지. 마침내 수업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학교도 남으로 피난을 떠나야만 하게 되었을 때, 당장 먹을것, 입을 것도 가져가기 힘든 피난길에 책걸상 따위를 가져갈리는 만무했을거고, 당연히 책도 가져갈 수가 없었겠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선생님이 잊지 않고 챙긴 단 한가지가 있었다는구나. 그게 과연 뭐였을까?
장초딩은 7살 후반 겨울부터 초등 6학년 졸업반인 지금까지 같은 수학 학원에 죽 다니고 있다.
그 흔한 선행도 진도빼기도, 심지어 숙제도!! 없이, 7세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이 따로 또같이 무학년 수업을 하는 이 곳은 수학학원이라기 보다는, 생각하는 힘과 엉큐(아이큐보다 중요한 엉덩이 힘을 뜻하는 두매쓰만의 용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길러주는 전인교육의 장이라고 할까. 나는 오래전 부터 이곳을 '현대판 서당'이라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 중이다. 학원 이름도 '두매쓰 domath"이고 수학 학원으로 등록이 되어있긴 하지만 이곳 수업의 백미는 실은 수학 수업이 아닌 인문학 수업이다. 수학 학원에서 왠 인문학, 그것도 초등학생에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직 초등교사이기도 하셨던 40년 경력의 장연희 소장님 (이 곳을 '학원'이라기 보다는 수학 교육 연구소로 만들고 싶어하시는 선생님의 뜻대로, 아이들도 엄마들도 원장님이 아니라 소장님으로 부르고 있다)이 직접 수업하시는 인문학 수업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시조도 외우고, 유대인 교육법에 대한 책도 읽고, 고전도 읽고, 전래동화도 읽고, 시도 쓰고... 다양한 것을 익히고 배운다. 수학을 싫어하는 장초딩을 비롯, 여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기도 하다.
바로 이 인문학 시간에 소장님이 위와 같은 질문을 하셨고, 한번도 듣도 보도 못한 6.25 전쟁의 참혹함에 말없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듣고 있던 아이들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저마다 생각한 답을 말했다.
"총? 아닐까요?"
"쌀? 밥은 먹어야하니까요. 아니면.. 감자?"
"돈이요! 돈이 있으면 뭐든 살 수 있으니까요"
"이불?"
"야! 이불을 어떻게 들고가 바보야!!"
그런데 한 녀석이 그러더란다.
"....정신."
순간 아이들이 조용해지고, 고개를 끄덕이며 소장님이 이어가는...
"그렇지. 그래서 학교에 걸린 현판을 떼어갔단다. 전쟁이 계속되어도 공부는 하긴 해야겠는데, 뭘 가져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가져가야 할수도 없었을 때, 다만,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 그 정신만은 잊지 않기 위해서였지."
'정신'이라고 말한 그 녀석이 바로 장초딩이었다며, 두매쓰 최고참 답더라는 얘기를 전해주시는데 7년 세월 헛되지 않았다 싶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저녁에 만난 장초딩에게,
"너 그랬다며? 엄마도 생각못했던 답이었는데 우리 아들 쫌 멋지드라?"
어깨를 으쓱하더니 후비적 코를 후비며 하는 말.
"엄마, 근데 솔직히 그 현판은 가져가서 땔감으로 썼을껄? 그거 나무로 만든 거잖아."
.....
.....
.....
"그...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네... 공부도 공부지만 전쟁통에 얼어죽을 순 없었을테니"
세견이 멀쩡한 것 같다가도, 또 금새 칠랄레 팔랄레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12년 전 뱃속에 있을 때 내가 호떡을 자주 먹었던가? 하루에도 몇번씩 현란한 반전 뒤집기에 멀미가 날 지경인 에미..
그래, 중요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공부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았다는 거야. 소장님께서 너희들에게 가르쳐주시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을테고...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하고자 하는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듯 다시 뭐든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만 싶던 엄마에게도 용기를 주는 수업이었구나. 소장님, 그리고 네 덕분이야 고마워.
소장님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던 일곱살 꼬맹이가 어느새 두매쓰 최고참 형아가 되었네. 가끔은 투정부리면서도 7년을 하루같이 꾸준히 다녀서 기특하고 감사해. 두매쓰에서의 너의 지난 시간들이 충실히 영글어서 이로운 열매를 맺을 거라고 엄마는 믿어.
잘 자라주고 있어서 고맙다. 사랑해 아들.
P.S 아이의 스승님이자 저의 육아, 교육, 글쓰기까지.. 인생 멘토가 되어주시는 장연희 소장님. 모두가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르르 달려가는 이 정신없는 시대에, 진짜 사고력이,수학이,교육이 그리고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시는 소장님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잡고 올 수 있었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요. 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