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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하 Oct 24. 2024

누가 하고 싶었던 걸까?

부모님은 분명 우리를 사랑하심이 틀림없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풍족한 사랑을 표현해 주실 여유가 없었다.


그때의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주였고,

그중에서도 '식'이 1순위였다.

외벌이 집안의 가정주부인 엄마에게는 우리를 굶기지 않는 게 가장 큰 미션이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로 보자면,

우리 집은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생활비를 조금 떼어 과자를 사주시는 것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족이 아닌 '돈'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게 아닌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늘 '나를 돈 보다 더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하고 바랐다.


초등학교 과학의 날 행사 때는

항상 행글라이더 만들기, 그림 그리기, 글짓기 부문이 있었는데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행글라이더를 만들어서 멋있게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돈이 없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건 돈이니까,

좋아하는 돈을 아껴서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었지만,

늘 돈이 필요 없는 그림 그리기나 글짓기를 했다.

그래도 하나만 하면 지겨우니까 번갈아 가며 했다.


물론, 엄마께 말하면 아마도 돈을 주셨을 테지만,

괜히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늘 혼자서 '안 되겠지, 말해봤자지, 괜히 걱정만 하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에 담아두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무기력한 생각들은 차곡차곡 쌓여, 커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를 키운 것 같다.


퇴사는 어른이 된 내가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많은 것을 해보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정착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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