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 높고 푸른 하늘, 사납게 내리쬐던 여름 햇살이 친절한 따스함으로 바뀌는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기분 좋게 머릿결 사이로 부는 가을바람에 흔들거리는 느티나무를 보고 있으면 무더위에 지쳐있던 몸과 마음에 상쾌한 공기가 가득 차는 것만 같다. 창문 너머로 느껴지는 서늘한 가을밤은 꿀잠을 청하기에 딱 좋은 온도다. 여름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듯 귀뚜라미는 이별 노래를 부른다. 내년에 또 만나자고 인사를 한 뒤 귀뚜라미 오케스트라를 벗 삼아 스르르 잠에 든다. 오랜만에 맞이한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햇살이 나를 반긴다. 쌔근쌔근 아침잠을 즐기고 있는 남편과 로이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어 눈을 뜨니 나도 모르게 순간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행복하다.’
가을은 내가 일 년 중 가장 기다리고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올해는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아마 뱃속에 있는 아기 때문이지 않을까. 결혼 후 일 년이 지나자 엄마는 애기 한 명은 가져야 부부 관계가 더 돈독해진다고 종종 얘기를 하시곤 했다. 은근히 아기에 대한 압박이 있을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솔직히 아기를 가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우리의 반려견인 로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딩크 라이프에 굉장히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으니까. 이 라이프 스타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리 잘 키워보겠다고 노력을 한들 자식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을, 때로는 예기치 못한 고통과 슬픔이 인생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가족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았기 때문에 아기를 이 세상에 데리고 올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올해 초,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 때문에 생식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난소 예비능 (ovarian reserve) 테스트를 해보았다. 건강하다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건만, 결과는 한참 예상 밖이었다. 내 나이 또래보다 항뮬러관 호르몬 (Anti Mullerian Hormone: 난소 기능을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이 현저히 낮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이 생식 능력의 절대적 판단 기준은 아니지만 만약 아기를 원한다면 당장 올해부터 시도를 해야 한다는 의사 의견이 같이 따라왔다.
자발적으로 아기를 갖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아기를 못 가질 수도 있다는 소리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 머리 뒤통수 한대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어째서? 괜한 테스트를 했다는 원망감과 함께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로 인해 혼란 속에서 2021년을 맞았다. 이 소식을 들은 남편은 나보다 더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도 마음이 심란해서 위로를 원하는데 이것이 내 탓인듯한 뉘앙스로 수치가 왜 그렇게 낮냐며 오히려 되묻는 것이었다. 내 얼굴 표정을 보고 실수를 한 걸 알았는지 곧바로 사과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한 대 때릴 뻔했다.
둘 다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신년 계획을 재정비했다. 발등에 불똥 튀긴 듯 그때부터 시도를 해 보았지만 애기가 단번에 생기는 것은 또 아니었다. 한 달에 한번 생리가 돌아올 때마다 불안과 걱정이 늘어만 갔다. 우리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초조함, 내 몸에 정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아기가 생기지 않으면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생리혈을 볼 때마다 엄습해 왔다.
몸을 깨끗하게 하고자 건강한 식습관으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5개월이 지나도 별 차도가 없었다. 왜 우리는 안 되는 걸까. 포기하는 심정으로 ‘에잇. 이왕 이렇게 된 거 딩크 라이프나 더 즐겨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을 때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테기에 희미하게 생긴 두줄. 이.. 임신? 줄이 너무 옅어서 임신이 맞는지 한동안 애꿎은 임테기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게 방방 뛸 것 같았는데 어찌 된 것인지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임신을 원했으면서도 막상 임신이라고 하니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나의 자유는? 우리의 신혼은? 코로나 때문에 신혼 때 하고 싶었던 여행도 제대로 못했는데 딩크 라이프를 이렇게 끝내야 한다니. 마음 한 구석에 먼지 같은 절망감이 들었다. 기쁜 마음보다 이런 마음이 드는 내가 간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대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임신 소식과 함께 터지는 환호나 기쁨의 눈물은 없었다.
처음에는 몸이 조금 더 피곤하다는 것 빼고는 별다른 입덧이나 임신 증상도 없었기에 임신 사실을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정말 임신한 게 맞을까? 임신 초기에 유산 확률이 높다는 말에 또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온전히 기쁘게 이 소식을 누릴 여유도 없이 마음속에는 의심과 걱정만 빠르게 가득 쌓여만 갔다. 갈팡질팡 하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첫 초음파를 하러 갔다. 어두운 방에서 테크니션의 무뚝뚝한 표정을 보니 정말 임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
“아기가 보이나요?”
그제야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며 덤덤히 말했다. 아기가 자리를 잘 잡았다고, 움직이는 것도 보인다며 나에게 스크린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검은 스크린 속 아기는 별 같은 조그마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내 안에 생명체가 있구나!’ 비로소 임신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고 이내 감정이 벅차 올라 눈물이 났다. 젤리처럼 조그마한 것이 꼬물꼬물 움직이며 나에게 인사를 하는데 생명의 경이로움에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기는 이렇게 빛날 수 있구나.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그 존재 자체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어두운 초음파실을 환하게 밝혀주는 듯했다. 문득 나도 한 때 우리 부모님께 이런 존재였겠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 존재의 소중함을 태아를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달까.
초음파실에서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아기 사진을 보내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남편 또한 아기의 모습에 놀라고 감격했는지 오 마이 갓을 연달아 외쳤다. 양가 부모님은 말도 할 것 없이 우리보다 더 신기해하시며 기뻐하셨다. 뱃속에 있는 태아로 인해 나와 남편은 부모라는 새로운 챕터에 발길을 들여놓았고 양가 부모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한 생명의 탄생으로 인해 모든 사람의 관계가 바뀌고 우리의 세계는 확장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더불어 낯설기만 했던 이 땅에서 비로소 양 가족의 뿌리가 내려지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3세로 살아가게 될 이 아이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어떤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까. 우리의 우주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기대하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했다.
그날 벅찬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공원 산책을 했는데 매일 같이 보는 숲 속 길이 어쩜 그렇게 다르게 보이던지. 연한 하늘색으로 물들인 하늘을 배경으로 길게 자란 초록 풀숲에 진한 보라색 야생꽃과 샛노란 민들레의 풍경이 인상파 화가의 한 작품 같았다.
삶은 누추하기도 하지만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단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
(<노란 집> 시작하는 말 중에서_박완서)라는 작가의 말이 이토록 진실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단 싶었던 순간. 우리에게 찾아온 태아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이 감정. 찬찬히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으니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태어날 아기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삶이 호락호락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이런 빛나는 찰나의 순간들이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알려 주고 싶었다.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된다는 것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