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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Sep 05. 2023

6인용 식탁

2023.09.05. 마민지,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집에 커다란 식탁이 있었다. 처음 아파트 생활하던 곳에서 형편이 좀 나아져 더 넓은 집으로 옮기면서 들인 6인용 식탁. 무슨 나무로 만들었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육중한 상판과 두꺼운 다리는 그 위에 무엇을 두어도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든든해 보였다. 뒤틀림이나 부러짐 없이, 오랜 시간동안 온갖 무게를 견뎌냈다. 거실에서 조금씩 밀려나와 마루에 좌초한 후에도 무거운 책들이 걱정 없이 쉬는 쉼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장성한 자식은 매일 한강을 건너며 통근하는 일에 진절머리를 냈다. 사실 통근보다 집으로 돌아오면 끊임없이 부딪히는 부모와의 갈등이 더 고통스러웠지만, 무엇이든 핑계는 필요했으므로. 아버지에게 노동자로서 허락된 시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이 함께 끌어안고 나갈 책장의 빈 자리를 계산하면서도, 갚아야 할 이자와 관리비 그리고 연금 사이의 저울추를 기울이고 있었다.


치솟은 부동산 가격은 아들에겐 악재였지만 아버지에겐 호재였다. "올랐을 때 나가야 해." 어머니는 서울로 진입할 기회를 잃어버렸던 때를 곱씹는 듯했다. 월세와 전세를 전전했어도 서울에 버텼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때되면 했다. 자식에겐 살기 좋은 신도시였지만, 모든 것이 뜨내기들의 세계 같은 이 곳에 그 오랜 시간에도 여전히 정을 붙이긴 어려우신 모양이었다. 몇 번의 타이밍을 놓치고 주저앉는 집값 그래프처럼 낙담했던 경험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어머니에게 아들의 분가는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완강했다. "여기가 얼마나 기운이 좋은데." 나는 아버지가 풍수에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평생 숫자들과 씨름하며 살았던 사람이지만, 정작 이사를 논할 땐 기운에 기울었다. 너희들 공부시키고, 취직시키고, 동생 시집도 보내고 계속 '성공'했던 곳인데 여길 팔고 어딜 가라는 거냐?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가족의 집은 조금씩 넓어지기만 했지 좁아든 적은 없었다. 기운이 정말로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자식은 그것이 당신의 대운이 아니라, 그저 시대의 운이었다는 생각부터 한다. 착각하긴 쉽다. 아파트를 끝내 붙잡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유체를 끌어모아 더더욱 단단해졌다. IMF와 금융위기를 겪고서도 아파트 가격은 대체로 상승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존을 치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 신앙과 자존심의 영역이었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나의 자존감과 넓이가 정비례한다는 감각.


단순한 아집은 아니었다. 내 초본은 두 장이 넘는다. 특히 어릴적 1년 단위로 이사갔던 기록들이 빼곡하다. 지금처럼 세입자를 보호해주던 시대가 아니었고, 1년마다 오르는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 싸고 외진 곳을 전전해야 했다. 유별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편안한 것도 아니었다. 얼기설기 끈에 묶인 채 1톤 트럭에 실려 해마다 이사를 떠나야 할 사람들에게 가구에 돈을 들인다는 건 사치 이외의 것일 수 있었을까.


이사를 간 곳마다 들쭉날쑥한 집안 구조의 위력 앞에 가구들은 매번 바뀌거나 버려졌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사실 전셋집의 다른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 신도시 아파트 당첨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길고 짧은 침대에 몸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 당신 자신이 선택한 가구가 다시는 썰물처럼 집 밖으로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 단단한 식탁은 정박의 상징이었는지 모른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은 오래 내려두었던 닻을 제 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자 또 다시 해안가로 가구들을, 정박된 삶을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이사갈 곳과 부모님이 가기로 한 곳 모두 이 식탁을 수용할만한 거실은 없었다. 몇 달간 중고 사이트에 올려 두었지만 그만큼 무거운 식탁을 흔쾌히 들고 갈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요샌 다들 집을 줄여서 이런 거 둘 사람이 없어요." 채팅의 끝은 이런 식이었다.


오래 거부하던 날이 왔고 우리는 헤어졌다. 식탁엔 딱지가 붙은 채 대형 폐기물 수거 장소로 옮겨졌다. 아버지는 은퇴를 마무리지었고, 어머니는 햇빛 가득한 작은 집에 식물을 들였고, 나는 혼자 사는 삶을 끝냈다. 그토록 오래 버티고 있던 식탁이 온데간데 없어졌는데, 그 누구도 찾지 않았다. 마민지의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을 읽으면서야, 사라져버린 육인용 식탁을 생각했다.


그의 책은 한 가족의 상승과 추락을 통해 시대의 욕망을 그린다. 그에 비하면 평탄한 곡선을 그리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폭이 작든 크든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똑같이 시대의 욕망에 흔들렸다. 아버지의 마음 속에는 아직 6인용 식탁이 남아 있다. 끊임없이 투자하고 투기한다. 거기엔 불안이 있다. 스스로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가족을 먹여살렸고, 투자에 몰두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렇게 삶에 작든 크든 상처는 남았다.


어쩌면 언젠가 작가가 그리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삶을 인터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가족의 삶에 남아있는 상처를 하나씩 짚어보며 이건 대체 언제 생긴거람? 물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면서 대화를 끝낼 수 있기를 바란다. 잊고 있었던 바람들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다. 이 감정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빠 역시 이사를 가야 할 처지가 될 것 같다. 아빠가 살고 있는 국민임대주택은 2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 평수였기에 재계약이 한 번은 가능하지만 그다음엔 1인 가구가 지원할 수 있는 작은 평수로 옮기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정말로 엄마가 아끼던 6인용 식탁을 버려야 할 시간이 올 것 같다.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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