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
"그때 그곳에 있었고 그 상황을 체험한 것이 틀림없는 사람이 그 일을 기억할 때 어떤 특정한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면, 과연 그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나는 그 일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되지 못한 이유를 검토한 뒤, 그렇다면 그가 그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헤아려 보고자 했다." (283, 인용자 문단 조정)
박사라의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김경원 옮김, 원더박스, 2023)를 읽었다. 재일교포 3세이자 사회학 박사인 그가 자신의 '별난' 친척들의 이야기를 듣고 묶어 낸 책이다. 9명의 큰아버지와 고모들 그리고 (몇인지 정확치 않은) 고모부들 가운데 총 넷을 인터뷰했다. 교사이자 남조선로동당원으로 활동하다 4·3사건 직전 일본으로 밀항한 둘째 고모부와 일본으로 밀항하다 오무라 수용소에 붙잡혔던 때를 '재미있었다'고 기억하는 둘째 고모, 4·3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일본으로 건너와 '전형적인' 자이니치의 삶을 산 셋째 큰아버지, 다사다난한 가족사로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글자를 모르는 괴로움이 그 무엇보다도 컸다는 넷째 고모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은 박희방(박사라의 친할아버지)의 가족이 제주도를 떠나 오사카에 정착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1945년 해방 이후, 제주도는 일본에서 귀환한 이들로 넘쳐났다. 일본에서 일해서 보내주던 돈도 끊겼고, 돌아온 사람들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미군정의 식량 정책은 성공적이지 못해 생필품과 식량도 크게 부족했다. 1946년엔 외국에서 귀환한 이들과 함께 콜레라가 창궐했다. 민심이 요동쳤다. 미군정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강경하게 나섰다. 내륙과 달리 인민위원회가 해산되지 않은 제주도는 불안한 '빨갱이 섬'이었으므로.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여섯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다음날 경찰은 치안 유지를 이유로 기념 행사를 주최한 실행위원회의 간부와 관련 학생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남조선노동당 제주지부는 그에 맞서 섬 전체의 총파업을 결정했다. 미군정은 강경파 조병옥을 제주로 내려보냈다. 그는 서북청년단과 함께 남로당원 검거 작전에 나섰다. 강경한 탄압에 남로당도 무장 반격전을 개시하기로 결정한다.
남한 단독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 남짓 앞둔 1948년 4월 3일, 제주도 각지의 경찰서와 우익 인사의 집에 불길이 일었다. 남로당의 무장 봉기로 제주도의 절반 가까운 지역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연기되었다. 1948년 11월 17일, 미군정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섬 전체에 걸친 초토화 작전을 실시했다. 군경토벌대가 중산간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폭도로 간주해 학살하고, 불을 질렀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민간인 14,000여 명이 사망했다.
그가 인터뷰한 이들의 삶은 모두 이 비극적인 사건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기억은 서로 퍽 다르다. 사건을 경험한 인생의 시점이 저마다 다르고,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서로 달랐다.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에게 4·3사건은 자기 삶의 경로를 완전히 뒤바꾸는 충격적인 경험이었지만, 어떤 이는 자기 삶의 서사에 통합되지 않는 경험으로 남았다. 박사라는 인생의 어느 특정한 시점에 그들이 경험해야 했던 거대한 사건이 각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서술되는지를 재구성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 자신이 자기 부모와 조부모가 일본으로 떠나오게 된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서, 다양한 서사의 결을 통해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는 다양한 경험들에 괄호를 치고 사실성을 검증하기를 포기하는 대신에, 강경하게 시선으로 포획되지 않는 사건을 전제한다. 다양한 문헌 자료들을 통해 사건의 실재를 뒷받침함으로써, 상대주의의 함정을 벗어난다. 그러한 강경함이 구술로부터의 일정한 거리를 만들어낸다. 가령 큰아버지가 일본으로 밀항한 이후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스스로는 차별당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말할 때, 박사라는 이런 주장을 덧붙인다.
"인터뷰 과정 중 듣는 이에게 차별이라고 느껴지는 상황에 대해 구술자가 '차별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발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판단에 어려움을 느끼는 조사자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때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차별은 '차별'로서 느껴지기 이전에 일상생활의 전제로 이미 깔려 있었다. 그것은 평소 생활 속에서 이질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유별난 일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 자체였다."(188, 문단 조정)
이 책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큰아버지와 고모의 생활사를 채록한 결과물이지, 4·3사건에 대한 피해자 증언을 수집하거나, 자이니치에게 가해진 차별의 증언을 기록하고자 했던 게 아니다. 경험 너머의 사실(제주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이나 자이니치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은 당연한 것으로 전제된다. 기시 마사히코 스타일로 말하자면 '인용부'를 비교적 과감하게 벗긴다. 대중서로서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일어난 사실에 대한 총체적 이해다.
구술자들이 조카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들엔 일정한 불투명함이 있다. 사실관계의 혼동, 동기에 대한 과장, 축소된 언급, 애매한 표현, 가려지는 심리들이 이야기들에 파편처럼 박혀 있다. 그것이 다양한 서사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불투명한 구술들로부터 대체 어떤 역사를 이해하라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취재를 하다보면, 사건을 정면으로 관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경험이 쌓인다. 그런데 박사라의 이 문장은, 그간의 생각이 조금은 편협한 건 아닌지 되묻게 만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들어야 우리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4·3사건의 체험담'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바꾸어 말하면 고모가 '4·3 사건'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체험을 '4·3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107)
애초에 내가 듣고 싶었던 내용이 무엇일까? 거기엔 어떤 의도가 담겨 있었던 걸까? 구술의 청취자로서 나는 어떤 발언을 전제하고 있었던 걸까? 그것이 전부일까? 끔찍한 사건을 끔찍하지 않았다고 증언할 때, 그 사람의 증언을 기각하거나 사건을 부정하는 대신에, 그 사람이 끔찍하지 않게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들은 없었을까? 내가 세워놓은 가설 이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사건이 사람을 관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령 일본의 '아우슈비츠'라 불릴만큼 열악한 환경이었고 온갖 비인간적인 억압과 학대 행위가 자행된 오무라 수용소에 붙잡혔던 경험을 "말이 형무소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114)라고 말하는 둘째 고모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박사라는 누군가에게 혹독한 환경이었던 동시에 고모에겐 비교적 재미있고 좋은 곳이었을 수도 있다고, 둘 다 사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무라 수용소의 실태와 '재미있었다'는 증언은 동시에 놓일 수 있다. 그가 4·3을, 오무라 수용소의 실태를 모르지 않았을 것임에도 그것에 대해 비관적으로 구술하지 않도록 만든 다른 경험은 없었나?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비껴나가게 만드는 이유를 물을 수 있다면, 알 수 있다면 우리 역시 사건에 대해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기시 마사히코의 『망고와 수류탄』에 실린 「인용부 벗기기」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그 글엔 차별을 받는 당사자가 자신의 상황을 부인하는 것처럼 말할 때 느끼는 사회학자의 곤란함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해결책으로 "인용부를 폭력적으로 벗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것 자체를 금지하는 것보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우리들 자신의 논리와 해석에 변형을 더하여 대화 상대의 합리성과 신념의 올바름을 유지하는 것도 틀림없이 가능하다."(『망고와 수류탄』, 101)고 대답한다. 어쩌면 명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박사라가 이 책에서 시도하는 바도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을 역사의식 없는 무지로 이해하는 대신, 모순이 누적된 '여성'의 자리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이것이 박사라의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역사를 동일한 방식으로 기억하지 않으며, 저마다 다른 공백들을 가지고 있다. 그 공백을 최소화시키는 건 어쩌면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를 여러 겹 겹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기억은 일면적이기 때문에 일관된 맥락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기억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실의 어떤 일을 기술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일면적으로 기술하기 때문에 정보에 '빈틈'이 생긴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엄청난 양의 정보에 늘 압도당하며 살아가는 속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어떤 뜻인지 알겠다'는 식으로 이해하기 위해 정보를 취사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그때 그곳에' 있던 것을 모조리 완벽하게 기억하지도 이야기하지도 못한다."(282, 인용자 문단 수정)
우리는 애초에 일관된 서사로 말하기 위해 많은 정보들을 탈락시킨다. 공백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공백으로 점철된 개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듣는 데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박사라가 자기 자신의 역사적 뿌리에 대한 기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가족들의 생활사를 조사했던 것처럼, 독자로서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의 역사 인식에 놓여 있는 공백도 다양한 기억을 가진 개인들의 구술을 채록하고 듣는 것을 통해 조금은 메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구술, 더 많은 기록이 여전히 필요하다.
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래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 두고 싶었다는 박사라의 마음이,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말을 기억하는 시사 교양 PD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물론 교양 장르의 핵심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점차 부서 안에서도 늘어나고 있지만 말이다. 이 장르를 지탱하는 힘이 그런 마음이란 사실을 그만 잊길 바랄 뿐이다.
책을 모두 읽었으니, 이제 가족에게 달려가야겠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당신에게 1945년은, 1950년은, 1972년은, 1979년은, 1987년은, 2002년은 어떤 해였을까. 당신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사두고 채 제대로 읽지 못한 역사학자인 손자가 할아버지의 구술 기록을 바탕으로 개인의 삶과 한국 현대사를 동시에 그려내려고 시도한 이동해의 『단 한사람의 한국 현대사』도 마저 읽어야 할 것 같다.
"역사 속에는 내가 모르는 숱한 공백들이 있을 것이다. 패전 후 오늘날까지로 시간을 한정하면, 식민지에서 귀환한 일본인이나 장애인, 피차별 부락 출신자가 살아온 전후의 세계나 지금의 세계는 내게 공백이다.[그 세계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역시 자신들의 세계와 또 하나의(다수자의) 세계라는 두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나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 즉 애당초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세계다. 당연하게 그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살아왔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기억 속에서 과거의 다양한 경험은 서로 녹아들어 하나가 되었고, 그들은 그 경험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 사람들은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을 선택해 왔을까?"(286)
글을 쓰면서 함께 거들떠 본 책.
기시 마사히코, 정세경 옮김, 『망고와 수류탄』, 두번째테제, 2023.
이동해,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 한 개인의 역사에서 모두의 역사로』, 푸른역사,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