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냄비근성 때문에 안 돼!” 이 표현은 금방 끓고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의 특성에 빗대어 한국인의 끈기 없고 지조 없고 일관성 없는 성향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부정적인 말이다. 빨리빨리 서두르는 기질과 돌아서면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 때문에 냄비=한국인이라는 등식까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우리 선조들이 전통적으로 써오던 무쇠로 만든 가마솥과 달리 냄비는 99.7% 알루미늄 성분으로 ‘가볍고 열전도성이 매우 좋’기 때문에 빨리 끓고 빨리 식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냄비에 라면을 끓이면 30분 안에 먹고 설거지까지 해치울 수 있다.
필자는 한국인의 냄비근성을 고치고 싶지 않다. 거꾸로 냄비근성의 특징과 긍정성을 최대로 살려 내고자 한다. 120년 역사의 심리학이 실패한 건 부정적인 데만 관심을 뒀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해서 나온 게 이른바 긍정심리학이다. “무언가를 개선하려면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창업 8년 만에 20대 최고 부자가 된 페이스북의 창업자 주커버그는 스스로 해커임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컴퓨터 지식을 활용한 ‘창조적 파괴’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반전을 활용한 창조적 파괴가 가져다준 혁신이다.
냄비근성은 하나의 목표가 정해지면 맹렬하게 집단적으로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감성과 직관이 발달되어야 가능하다. 감성과 직관이 발달되어 있다는 것은 예능감이 좋고 예술성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온 나라 사람들이 밤을 새워 즐기기도 하고 반대로 잠을 못 이루며 함께 슬퍼하기도 한다. 2002년 월드컵과 2014년 세월호 사건을 통해 확인하였다. 빨리 달아오른다는 건 감수성이 풍부한 긍정적인 감정이다. 당신이 만약 오디션을 볼 때 냄비근성을 잘 살린다면 심사위원들은 그걸 높이 평가해 줄 것이다. ‘집단적’이란 말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말로 역시나 ‘공감성’이 좋다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에서 청년시절 때 감수성이 가장 풍부하고 예민하다. 즉, 한국인의 기질은 ‘역동적인’ 청년의 기질이라는 것이다. 해내외에서 한류를 높이 평가하는 측면은 바로 이 ‘역동성’과 풍부한 '감수성'이다. 한국인이 냄비근성을 없애거나 잃는다는 건 청년에서 늙은이나 꼰대가 된다는 얘기이다. 또한 한국의 놀이정신에서 나온 역동성인 힘과 열정을 식게 만드는 일이다.
역사를 거슬러 생각해보면 냄비근성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즉, 근성이나 기질로 표현되는 정체성은 타고났다는 말에 다름 아니며 고치려 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유전성’이 강하다는 말이다. 남들이 안 좋다 하니까 억지로 고치려다 괜한 스트레스만 쌓지 말고 되레 긍정적인 측면을 한껏 살려 스스로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만드는 게 주체적인 삶이고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그럼 이런 근성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문화 연구자들은 위에서 말한 역동적인 힘과 열정을 우리 문화의 원형질로 파악한다. 학자들은 그 원형질인 정체성을 무교(샤머니즘)에서 찾는다. 무교의 샤머니즘은 하늘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던 가무(歌舞) 행위를 말한다. 우리 민족이 가무에 능한 건 여기에서 근원 한다. 한국문화의 원형질을 무교(샤머니즘)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일찍이 조지훈으로부터 최준식, 석성산, 우실하 등으로 그 특징을 요약, 정리하면 ‘열정’, ‘젊음’, ‘활력’, ‘아시아의 라틴계’, ‘다양성’, ‘개성’ 등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다름 아닌 북방 수렵문화의 특성 중 하나이다.
아주 먼 옛적 이동을 자주해야 했던 우리의 선조들인 유목민에게는 빨리 끓어오르는 냄비만큼 좋은 게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요즘의 냄비 역할을 하였던 기원전 1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동복’이라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던 걸 보면 알 수 있다 가야와 신라에서 출토된 동복은 스키타이 유물과 동일하므로 이들은 뿌리가 같은 북방 유목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하루에 수백 리씩 말달려 가야 하는데 언제 가마솥 걸어놓고 진득하니 장작불 때 가며 몇 날 며칠간 사골을 곰 삭이고 있겠는가. 우리가 오늘날처럼 정착된 농경문화를 누려온 건 유목문화에 비하면 극히 짧은 기간에 해당된다. 북방 유목문화와 샤머니즘이 한국인에게 유전자로 각인된 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우리 한국인의 핏속에는 여전히 불같이 타오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 물을 끼얹으면 금방 식어버리는 기질이 있다. 나설 때는 과감히 나서고 잊어야 할 때는 깨끗하게 털어버린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쿨하게 털어버리는 냄비근성, 얼마나 멋있는가. 잦은 실패로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과감히 새로운 도전에 주저 없이 나서야 하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더할 나위 없이 맞는 근성이 바로 냄비근성이다.
이제 내 삶에서도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기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때다.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나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찾아서 그걸 한껏 살리는 게 경쟁력 측면에서나 인생의 행복 측면에서 훨씬 가성비 높고 가치 있는 삶이지 않겠나 싶다. 타고난 냄비를 뚝배기로 만들려다가 평생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다. 잘 안 되는 거나 못하는 건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다 한다고 내가 굳이 그걸 따라갈 필요가 없다. 노자 선생은 이미 규정된 것에 끌려가거나 멋있다고 합의된 유행하는 옷을 입으려 하지 말고 바로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옷을 아름답게 여기고 다른 곳에 있는 풍속을 따르려 하지 말고 바로 지금 네가 살고 있는 풍속을 좋은 것으로 여기라고 설파하였다. 서양의 호라티우스가 말한 '카르페디엠'이나 니체의 철학인 '아모르파티'와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의 ‘냄비근성’을 거꾸로 뒤집으면 생각이 바뀐다. ‘생각을 뒤집으면 세상이 뒤집어진다.’ 광고천재 이제석은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