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어린이들이 북한 어린이보다 당연히 행복하지요.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들어보시라. 엉뚱생뚱 사고(思考)뭉치 놀자선생이 놀이인문학적으로 얘기해 드리겠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GDP 규모 세계 10위권에 근접하고 있다. 아등바등 경제성장을 시키는 이유는 뭔가. 바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삶의 질’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은 주로 경제적 성장과 결부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연구들과 실제로 우리가 피부로 느끼기에 경제적 측면에서의 성장 수치는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다. GDP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경제적ㆍ물질적 지표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적 지표의 개발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다. 한국사회에 인문학 붐이 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인문학은 ‘벌거벗은 삶’(bare life)을 탈피하여 인간적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놀이성’의 회복은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대한 허기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이는 놀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놀이지수’가 삶의 질의 평가에 있어 대안적인 준거가 되어야 하고, 그에 근거하여 사회의 대안적 사회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세계에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가장 못 놀고 있다는 통계는 변하지 않고 있다. 그건 달리 말하면 세계에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설마 북한 아이들보다 불행하기야 할까 하면서 위안이라도 삼으려 한다면 큰 착각이다. 18년째 자살률이 세계 1위이고 청소년 자살률도 제일 높은데 더 이상 무슨 변명을 하고 싶은가. 북한에는 굶어 죽는 꽃제비 아이들도 있지 않은가고 묻는다면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겠다. 대한민국에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이고 맞아 죽는 아이들도 있는데 어찌할 것인가. 우리도 60~70년대 굶어 죽을 지경이었고 먹고살기 위해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타기도 하였다. 그때 그 행렬에 섰던 사람들이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최근 남북통합 놀이와 관련한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탈북자들을 만났는데 이 문제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최소 3개에서 많게는 7개 이상 학원을 뺑뺑이 돌면서 놀 틈이 없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을 그들이 걱정하고 있었다. 먹고살기 빠듯하지만 북한 어린이들이 훨씬 많이 놀고 남한 어린이들에 비하면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90년대에 북한에서 인민학교를 다닌 S라는 탈북자는 추억을 떠올려보라 하니 당시 동무들과 신나게 고무줄하고 공기놀이하던 것을 꺼냈다. 남한에서도 마찬가지로 80년대 초반까지 청소년 시절이었던 사람들은 놀이의 추억을 얘기한다. 이후로는 놀이 자체가 괴멸당하면서 더 이상 놀이의 추억은 없어졌다.
한편 필자가 연구해본 바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유치원이나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 우리보다 전통놀이(민속놀이)에 대한 연구와 보급이 상당히 일찍이 진행되었고 교육기관에서는 꾸준히 어린이 민속놀이를 보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미 1964년에 도유호 외 13명의 학자들이 『조선의 민속놀이』를 출판하였는데 300종에 가까운 놀이를 수집하여 그중 62종의 놀이를 분류하여 수록하였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어린이 민속놀이에 대한 노래(동요)를 발굴하거나 창작하여 놀이를 하면서 부를 수 있는 '놀이노래'가 모두 있다는 사실이다. 작년 유튜브 계정이 해지되어 지금은 볼 수 없는데 조선중앙TV에서는 정기적으로 어린이 민속놀이를 소개, 방영하고 있는 걸 보면 최소한 놀이에 대한 정책은 남한보다 북한이 낫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제안
놀이를 국가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
뜬금없고 생뚱한 제안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는데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장악하였던 나라가 대영제국이다. 영국은 ‘세계 최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세계 최초로 산업화를 시작하였고 세계 최초의 조기교육 그리고 세계 최초의 ‘외로움 담당’ 장관을 만들기도 하였다. 여기에 그들은 세계 최초로 <아동놀이의 국가적 정책화>를 입안한 나라다. 이렇게 아동놀이를 국가의 정책으로 삼은 이유는 심화되어 가는 놀이 실조와 놀이 기회의 불평등이 국가적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각 연방에서 놀이터 만들 터가 어디가 가장 좋겠는지를 찾고 행정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는 어린이들의 놀이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았는지를 평가하고 아이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를 보고한다. 그들은 로또복권의 수익금을 아이들 놀이 정책을 위해 사용하자는 결의도 하였다. 대한민국을 진정 행복한 나라로 만들 의지만 있다면 놀이를 국가 정책으로 못 삼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대학입시를 폐지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못 노는 근본적인 주범은 대학입시라는 괴물이다. 물론 성적순으로 좋은 대학도 가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낙오되는 게 상식이라는 반론도 있겠다. 그러나 수십 년째 지켜본 바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독일과 한국을 비교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김누리 교수는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은 파탄 났다고 진단하면서 교육부엔 교육정책은 없고 '입시정책'만 존재한다고 일갈한다. 그는 더 나아가 "한국사회는 거의 모든 지표를 봤을 때,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비탄하고 있다. 독일도 70년대 초반까지 극심한 경쟁체제의 대학입시가 있었는데 68혁명 이후 ‘경쟁’ 자체를 없앴는데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경쟁력이나 창의성도 더 높고 행복도가 비교적 높은 걸 보면 경쟁만이 능사는 아닌 거 같다.
당장 대학입시를 폐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였는데 정권을 넘어선 말 그대로 최소한 20~30년 앞이라도 내다볼 수 있는 계획을 세우자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도 하였던 김상곤 전 장관이 제안한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나 ‘21세기백년대계위원회’를 각계각층 인사를 중심으로 만들어 장기적이고 진지한 토론을 거쳐 아이들이 우선 행복하고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길 바래본다.
남북 놀이문화 교류를 최우선으로
남북이 헤어진 지 75년이 되었지만 전래되어 오는 놀이는 거의 변함이 없다. 필자가 남북의 어린이 민속놀이를 조사, 비교해 본 바에 의하면 거의 90% 이상 놀이와 명칭까지 똑같고 다른 게 있다면 일부 명칭과 놀이 방법뿐이다.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를 북한에서는 돌가위보라 하고 술래를 북한에서는 범이라고 하는데 무서워서 순라꾼과 호랑이에게 쫓긴다는 내용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이 화합하고 통일을 향해 가는데 놀이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친구를 통해 엄마끼리 친구가 되듯 통일도 그렇게 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개입되지 않은 어린이의 놀이로부터 차차 일반적인 놀이로 교류를 확대해 나간다면 남과 북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가까워질 것이다. 고무적이고 부러운 건 북한에서는 올 초 줄넘기와 숨바꼭질 놀이를 국가 무형문화재로 등록시켜 유네스코에 등재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잘 노는 민족으로 소문이 난지 수천 년이 넘었다. 그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고서에도 자세히 나와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잘 놀고 있다는 게 K-팝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증명되고 있다. 예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손열음, 고소현, 신지아 등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듯 북한도 예술에서는 2등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예를 하나 들자면 피아니스트인 최장홍(당시 13세)은 2017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회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쾌거를 날렸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우수한 놀이 유전자를 남북이 잘 살린다면 최후의 분단국에서 최고로 재미나고 행복한 한반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다.
진정 행복하고 싶거든 놀이를 앞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