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선생의 놀이의 역설(Nory Paradox) ⓵
세상에는 틀린 것처럼 생각되어도 실제로는 옳고, 옳은 것처럼 생각되어도 실제로는 틀린 경우가 있다. ‘참(옳은 것)이라고 말하거나 거짓(틀린 것)이라고 말하거나 모두 이치에 맞지 않아서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모순된 문장이나 관계’를 패러독스(paradox.역설)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일찌감치 모순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인류는 많은 역설을 만들어냈는데 필자는 놀이의 역설(Nory Paradox)을 말하고자 한다. “노는 만큼 행복해진다.” “노는 만큼 영리해진다.” “노는 만큼 풍요로워진다.”
한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회자되었는데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비관하고 자살까지 하면서 나온 말이다.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말은 분명 맞는 말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학교 성적이 인생을 좌우하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행복을 쉽게 찾는 가장 빠른 길은 자신이 잘하는 걸 찾아서 놀 듯이 즐기면 된다. 그런데 말은 쉬운 거 같은데 실재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놀 듯 즐길 수 있는 것은 능력이고 능력 중 지능이 큰 역할을 한다.
필자가 놀이를 연구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건 대체적으로 잘 노는 사람이 지능이 높고 행복도도 높다는 걸 알았다. 동물을 봐도 마찬가지다. 머리 나쁜 걸 비하하는 표현으로 ‘새대가리’ 같다느니 ‘닭대가리’ 같다고 하는데 조류는 실지로 머리가 나쁘다. 조류는 도망가다가 다급하면 지 머리만 풀숲이나 땅속에 감추는데 웬만한 포유동물보다 덩치가 큰 타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특징은 몸에 비해 뇌 용량이 지극히 작다. 그런데 의외의 조류가 하나 있는데 바로 까마귀다. 까마귀는 부리가 닿지 않은 반밖에 안 찬 물병 속의 물을 먹을 수 있는 영리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 이솝우화에도 등장한다. 까마귀에 대한 많은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학습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다.
까마귀는 호두를 깨 먹을 수 있다. 동물들은 대부분 본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잘 노는 동물은 다르다. 까마귀는 호두를 정확하게 깨 먹기 위해 호두를 차가 다니는 도로에 떨어뜨린다. 자동차는 산업화 이후에 등장한 문물이니 본능을 뛰어넘어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학습능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까마귀는 안전하게 호두를 깨 먹기 위해 도로 횡단보도에 떨어뜨린다. 적색 불로 바뀌어 자동차들이 정지하면 까마귀는 깨진 호두를 부리로 쪼아 먹이를 안전하게 섭취한다.
이런 행동이 나오기까지 까마귀는 주변 환경을 탐색하여 가장 정확하고 안전하게 호두를 깨 먹을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정, 보완을 통해 단단한 호두알 속에 들어있는 풍부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호두는 두뇌발달에도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감히 포유동물도 따라갈 수 없는 지능을 까마귀는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을까.
동물은 대부분 거의 완성된 뇌를 갖고 태어나는데 인간은 포유동물 중 가장 미성숙한 두뇌 상태로 세상 밖에 나온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산도가 좁아졌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그래서 인간은 수년간 보육자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이가 태어나서 불과 몇 개월이 지나면 옹알이가 시작되고 곧이어 엄마가 해주는 까꿍놀이를 거쳐 스스로 할 수 있는 손뼉놀이가 이어진다. 유아들은 숨바꼭질 놀이를 하지만 꿩이나 닭처럼 자기 머리만 숨기고는 엄마가 못 찾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미성숙한 뇌는 이런 놀이를 통해 급속도로 성숙하게 된다. 옹알이는 언어구사 능력을 갖추기 위한 놀이이고 까꿍놀이는 대상영속성을 획득하여 엄마가 화장실에 가더라도 까무러치지 않고 엄마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 있게 만들어준다. 손뼉놀이는 눈과 손의 협응 능력을 갖춰 신체 활용 능력을 확장시키고 숨바꼭질은 내 눈(관점) 이외에 다른 사람이 보는 눈(관점)도 있다는 타인 조망능력, 즉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갖게 만들어준다. 미성숙한 아이의 뇌를 발달시킬 수 있는 방법이 이런 놀이 이외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인류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놀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문명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루덴스(유희=놀이인간)’라 명명하였다. 호모루덴스는 호모사피엔스보다 훨씬 의미 깊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단지 슬기로운 인간이라는 표현인데 반해 호모루덴스는 놀이를 통해 생존능력을 키우고 지능을 발달시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재미(행복)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노는 만큼 지능이 발달되고 노는 만큼 재미가 배가된다. 즐거운 놀이를 하면 뇌에서는 도파민, 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등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런 행복 호르몬은 뇌를 쾌적하게 하여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준다. 앞서 얘기한 까마귀가 공놀이를 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까마귀가 눈이 쌓인 지붕에서 썰매 타기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발견한 까마귀는 연거푸 작은 고무 튜브 같은 것을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 아이들이 썰매를 타듯이 즐기는 것이었다. 한두 번이라면 우연으로 넘기겠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된다면 분명 즐기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놀이를 할 때 까마귀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는 아직 밝혀진 건 없다. 까마귀가 지능이 높아서 잘 노는 건지 잘 놀아서 지능이 높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놀이와 지능 간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놀이는 지능 순인지 지능은 놀이 순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먹이활동과 전혀 상관없는 썰매 타기를 까마귀가 반복하는 게
사람들을 관찰한 모방 행동인지 정말 즐거워서 노는 건지
까마귀 뇌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