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선생의 놀이의 역설(Nory Paradox) ⓹
아직 10월 하순인데 마치 초겨울처럼 갑자기 추워졌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필자에게는 대학입시가 생각난다. 날씨가 좋다가도 항상 대학입시 날만 되면 느닷없이 추워진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입시와 관련된 얘기 하나 해보려고 한다.
1991년엔가 일본 아오모리현에 지붕이 날아가고 전봇대가 꺾어지는 전대미문의 태풍으로 애써 가꾼 사과밭이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농민들은 멘붕이 되어 말을 잊은 체 낙과를 보며 낙심으로 한숨만 쉴 뿐이었다. 무려 90% 이상의 사과가 태풍에 떨어졌으면 남는 건 뻔할 뻔자 빚더미이니까. 그런데 평소 낙천적이고 놀기 좋아하는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괜찮아!"를 되뇌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절망감에 빠져 드디어 실성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땅바닥에 나뒹구는 사과 대신에 아직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은 몇 개 안 되는 사과를 보면서 다른 궁리를 하고 있었다. 저기에 분명 답이 있을 거야.
그는 뉴스를 통해 대학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들었다. ‘대학입시'와 '사과'를 생각해 보았다. 대학입시와 사과를 조합시켜 보면 무슨 수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다. '대학입시+사과' 잇따른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라. 평소라면 전혀 맥락이 닿지 않을 사과와 시험을 결합시키면 분명 뭔가 나올 거 같았다. “앗! 그래.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사과.” '떨어지지 않은 사과' 합격사과라는 새로운 상품은 이렇게 엉뚱한 발상에서 탄생하였다. "이 사과는 일본 최대의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입니다. 이 사과를 먹으면 떨어지지 않고 이 사과처럼 붙을 겁니다. 꼭 합격합니다."
사과는 순식간에 10배 넘는 가격으로 전국으로 팔려나갔으며 농가소득은 오히려 예년보다 훨씬 웃돌았다고 한다. 지금도 아오모리 합격사과를 알아주지 다른데 건 짝퉁으로 인식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미 사과의 맛이나 빛깔을 사는 게 아니라 새롭게 창조된 스토리인 가치와 이미지를 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합격사과’라는 글씨를 붙여 입시철에 판매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뉴멕시코주에서 사과농사를 짓던 한 농부는 '우박사과'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농장의 사과는 고산지대라서 당도가 높고 맛이 좋아 이미 전국 각지의 구매자들과 판매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우박으로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곰보처럼 상처가 난 사과는 상품가치를 잃어버렸고 주변의 대다수 농가들은 판매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농부들과 달랐다. 절망하는 대신에 떨어진 사과를 먹어보고는 결심을 하였다. 당도나 향은 손색이 없었기에 판매자들에게 사과를 배송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포장이 완료된 상자에 한 장의 편지를 동봉하였다. "이번에 보내드리는 사과에 우박 맞은 상처가 있습니다. 이것은 고산지대에서 자란 특산품이라는 증거입니다."
이런 창의적인 역발상은 신중함보다는 과감함과 긍정적인 도전정신에서 비롯된다. 창의성은 틀에 얽매이지 않은 동심(童心=動心)에서 나온다. '익숙한 것을 낯선 맥락에 놓는 것', 즉 기존 사고의 낯선 조합이 창의성인데 창의성은 많이 놀아보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 사과가 90% 이상이 떨어졌는데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건 바로 프로모션 포커스(Promotion Focus, 접근 행동방식)라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보통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프리벤션 포커스(Prevention Focus)인 회피행동방식으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충해서 안도감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역발상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도전정신' 달리 말하면 '놀이정신'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우박사과가 ‘보조개 사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걸 본 적 있다.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 숨어있는 문제를 보고
낙관론자는 모든 문제에 감추어진 기회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