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메트리 수준의 초능력까지는 아니지만,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보면 어느 정도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돌아오곤 한다. 조만간 집을 줄여서 이사를 가게 되어 쟁여놓았던 것들을 대대적으로 처분하고 있다. 이 처분의 과정에서 추억이라고 해야 할지 기억의 조각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기억의 진흙바닥 속에서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는 것이다.
버리는 것 중에 아주 오랜 기간 써온 책상과 서랍 일체가 있어서,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정말 잡동사니 밖에 없었다. 물론 기억이 나는 물건도 있고 기억을 나게 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서랍에 처박아두고 들여다본 적도 거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떠오르는 기억도 대단할 것도 없다.
책상에 꽂혀 있던 많은 책들도 증명된 것은 대부분 나는 그것들을 잊고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다. 때가 지나버린 것들이나 앞으로도 들여다볼 일이 없을 책들 중 알라딘 중고서점에 보낼 수 있는 것들은 넘기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노끈으로 묶어서 저녁에 내놓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없어져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들을 다시 떠올리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마도 그런 물건들이 차지하는 공간에 비해 가지고 있는 작은 가치는 내게 어떤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이 없어지면 떠올리기 어려워져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영영 잊어버리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버리는 것의 심리적 저항이 크지는 않다.
언제가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내 세상의 끝이 왔을 때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많은 상황을 생각해 보면 나는 그것을 매번 몸서리칠 정도로 끔찍하게 여긴다. 가족이든 친지든 관계가 없는 타인이든, 나 자신이 아닌 이상 내 잡동사니들을 처리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물론 타인에게는 내 물건들로 떠오르는 것이 많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워낙에 부끄러움이 많아서 사적인 물건들도 결코 공개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큰 기회에 최대한 많이 물건 정리를 하고, 지나가버린 것들은 자연스럽게 잊어버리려고 한다.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어라고 할지...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느낌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돌아가고 싶은 황금시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과거를 그리워하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남은 기간 동안 쭉쭉 더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