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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운 Apr 21. 2021

농통역사는 무슨 일을 할까


지난 번에 수어통역사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lifree/8



그렇다면 농통역사는 어떤 직업이며, 무슨 일을 할까요?

용어조차 생소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공식적인 명칭은 '청각장애인통역사'이지만, 현장에서는 '농聾통역사'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


수어통역사는 농인과 청인의 사이에서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한국수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을 합니다. 농통역사는 농인과 수어통역사의 사이에서 한 번 더 수어로 중계통역을 담당합니다.




수어통역사가 있는데, 농통역사의 중계통역이 왜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농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한국수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년기의 교육방식과 살아온 환경, 농사회에의 소속 여부 등에 따라 개개인이 구사하는 한국수어의 유창성과 한국어의 문해력 등은 개인차가 심하게 발생합니다.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면서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한국수어는 잘 구사하지만 한국어는 읽고 쓸 수 없는 사람, 한국어도 모르는데 한국수어도 서투른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현재는 특수 교육이나 통합 교육 등을 통해 농인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보장되어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특수학교의 접근성, 개별 가정의 교육 여건, 교육 가치관의 차이 등으로 인해 농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편차가 심했습니다.

농학교 등의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또래의 농인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한국수어를 익히고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양쪽 모두에 익숙해질 수 있지만, 특수교육 환경이 부재한 학교를 다니거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면 한국어를 배울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현장에서는 이러한 농인들을 지칭하여 '무학無學 농인', '문맹 농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무학 농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무학 농인이 주로 중장년층 이상의 연령대에 편중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처럼 교육을 받지 못한 농인이 그 후에라도 농사회에 편입하여 농인들과 어울렸다면 한국수어를 구사할 수 있지만, 농인들과의 교류 없이 고립되어 살아왔다면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됩니다.

한국수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무학 농인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한국수어(농식 수어)가 아니라 수지한국어(청식 수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어통역사의 숙련도와 실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무학 농인에게 수어 통역을 하는 경우 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는 수어통역사가 농식수어를 구사하는 데에 미숙하거나, 농인의 수어가 너무 빠르거나 사투리를 쓰는 등의 문제로 수어통역사가 농인의 수어를 보기 어려운 경우, 또는 청인의 문화와 충돌하는 농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혹은 무학 농인이 수어맹手語盲, 즉 한국수어 자체를 모르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농통역사가 중계통역을 통해 무학 농인과 소통하게 됩니다. 농통역사 제도의 도입 취지는 무학 농인의 의사소통권 보장을 위한 것이었지만, 실상 무학 농인 뿐만 아니라 농인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 일까지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농통역사의 역할은 크게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유형의 중계통역으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청인의 한국어 발화 -> 수어통역사가 한국수어로 통역 -> 농통역사가 제스처나 홈사인으로 통역 -> 무학농인

1-1) 청인의 한국어 발화 -> 수어통역사가 수지한국어로 통역-> 농통역사가 한국수어로 통역 -> 농인

2) 무학농인의 제스처·홈사인 발화 -> 농통역사가 한국수어로 통역 -> 수어통역사가 한국어로 통역 ->청인

2-1) 농인의 한국수어 발화 ->농통역사가 의미와 맥락을 파악한 후 문장을 재구성하여 한국수어로 통역 -> 수어통역사가 한국어로 통역 -> 청인




이와 같은 중계통역을 위해서는 농통역사에게 뛰어난 한국수어 실력과 더불어 비수지기호와 제스처 등을 통해서도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등록 민간자격으로써 '청각장애인통역사 자격인정시험'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고숙련의 농통역사는 무학 농인 또는 수어맹인 농인이 많은 지방에서는 꼭 필요한 인적자원입니다. 서울이나 대도시 등에서는 농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어 무학 농인의 경우에도 대부분 수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지만 지방의 소도시나 농어촌으로 갈수록 무학 농인들이 고립되기 쉬워 수어맹인 케이스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무학 농인의 통역이 아니더라도, 특히 경찰, 법원 등 농인의 권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분야에서의 통역일 경우 정확한 의사전달을 통해 농인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수어통역사 외에 농통역사가 배석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또한 수어통역센터 내에 숙련도가 낮은 수어통역사가 있을 경우 농통역사와 수어통역사가 짝을 이루어 통역 현장에 나가 수어통역사를 훈련시키는 등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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