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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Aug 15. 2021

나는 막내 오리

브런치 X 저작권위원회 응모작 (원작: 미운 아기 오리)

어느 산골 마을로 향하는 길목 어귀에 위치한 농장에는 여러 동물들이 모여 함께 살고 있습니다. 병아리는 어미닭을 쫓아 들판 위의 잡곡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헛간 지붕 위의 고양이는 햇볕을 쬐며 고개를 꾸벅이고, 말들은 꼬리를 살랑이며 파리들의 춤사위에 장단을 맞춰줍니다. 이제 막 가을바람이 부는 농장은 공기마저도 나른하고 평화롭습니다. 모두가 여유를 부리는 데 여념이 없는 농장의 한복판에서, 동물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막내 오리만이 호숫가에서 홀로 바삐 움직입니다.     


첨벙, 첨벙-!

“얘, 막내 오리야- 지금 뭐 하는 거니?”

마침 호숫가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이던 독수리가 물었습니다.

“응, 나는 날갯짓을 연습 중이야. 나도 너희 새들처럼 하늘을 날고 싶거든.”

독수리는 의아해하며 재차 물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전해 듣기로 너희 조상들은 원래 날 수 있지 않았니?”

“맞아,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이 농장에 정착한 이후로 날개가 점점 퇴화되다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는 아예 못 날게 되었단다.”

막내 오리는 여전히 힘차게 날개를 움직이며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내 꿈은 농장 바깥의 세상을 내다보는 거야. 내가 발 딛고 있는 들판과 호수 너머의 세계가 어떠한지 내 눈으로 직접 관찰하고 싶어.”

“그렇구나. 네가 꼭 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응원의 말을 건네고 독수리는 마저 제 갈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막내 오리와 함께 살고 있는 농장 동물들의 반응은 독수리의 것과 사뭇 다릅니다.

“막내 오리야, 설마 아직도 네가 날 수 있다고 믿는 거니?”

지나가던 돼지가 막내 오리에게 비아냥대며 말했습니다.

“그냥 오리도 아니고, 집오리 녀석이? 꿈 깨, 이 녀석아. 넌 절대 하늘을 날 수 없을 테니까.”

조롱과 멸시를 보내는 주변 동물들의 기대와는 달리, 막내 오리는 눈 깜짝하지 않고 어깨와 날개를 움직입니다. 그런 막내 오리를 유독 언짢아하는 무리가 있었는데 바로 이웃에 사는 백조 형제였습니다. 백조 형제는 틈만 나면 호숫가를 어슬렁대며 막내 오리를 괴롭혔습니다.

“얘 또 헛짓거리 하고 있네. 네가 하는 건 도전이 아니라, 매일 같이 너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해. 알겠니?”

첫째 백조와 둘째 백조가 막내 오리의 어깻죽지를 부리로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네가 날아 봤자지. 설령 네가 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농장에서 날 수 있는 동물은 우리 백조뿐이야. 이게 어딜 넘봐?”

셋째 백조가 팔짱을 낀 채 쏘아붙였습니다. 막내 오리가 반응이 없자 백조 형제는 침을 퉤 뱉으며 지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가족들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막내 오리를 사랑하는 오리 가족의 반응도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엄마 오리는 막내 오리가 아침마다 날갯짓을 연습하러 나가는 길목에 서서 막내 오리를 말렸습니다.

“얘야, 네가 하고 있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란다. 어쩌면 농장 전체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동일지도 모르지. 엄마 걱정시키는 위험한 일은 이제 그만 하고 형들, 누나들처럼 집에 머무르도록 하렴.”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막내 오리를 타이르거나 회유했습니다.

“동생아, 너는 오리로서의 의무를 내버려 두고 공상에 빠져 있구나. 목청 가다듬기, 털 윤기 나게 정리하기, 물 위에서 빠르게 헤엄치기 등등 당장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이상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지 말거라.”

“막내야, 혹시 명예를 얻고 싶은 거야? 남들이 잘 못 하는 분야에서 일등 하고 싶은, 뭐 그런 거? 차라리 나는 거 말구 동생이 진짜로 잘하는 걸 더 잘해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 우리 막내가 목청 하나는 최고인 거, 농장에 모르는 동물들이 없잖아! 날갯짓 대신에 목청 틔우는 걸 연습해서, 가장 빼어난 울음소리를 가진 오리가 되어 보자고.”

농장의 이웃 동물들은 막내 오리가 허황된 꿈을 꾼다며 앞에서나 뒤에서나 혀를 차기 바빴고 가족들은 틈만 나면 집안의 막둥이를 만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 오리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마저 내 꿈을 포기한다면 그건 정말 슬플 일일 거야, 막내 오리는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막내 오리는 아침밥을 다 먹기 무섭게 호숫가로 달려가 날개를 열심히 퍼덕입니다. 엄마와 형제와 이웃들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느 날, 평소처럼 호숫가에서 어슬렁대던 백조 형제가 막내 오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얘 막내 오리야, 백 날 천 날 그렇게 물가에서 날갯짓을 하면 뭐해. 네가 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우리가 널 도와줄게.”

막내 오리는 여느 때와는 다른 백조 형제의 모습에 평소처럼 무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뜻밖의 호의가 미심쩍다는 듯이 물었어요.

“갑자기 나를 도와준다구? 이유가 뭔데?”

“왜긴, 여기는 우리 다 같이 머무르는 공간인데 네가 날갯짓을 하는 바람에 물방울이 사방팔방으로 다 튀잖아. 우리 농장 구성원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널 도와줄게.”

첫째 백조의 말마따나 막내 오리의 비행 연습으로 호숫가가 늘 소란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어요. 막내 오리는 반박할 수 있는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너희가 어떻게 날 도와줄 건데?”

“우리가 좋은 정보를 알아왔어. 여기 낮은 땅의 물가가 아니라, 저기 보이는 농장 옆의 산에 올라가면 나무와 바람의 기운을 받아서 날 수가 있대.”

둘째 백조가 비밀스러운 마냥 막내 오리의 귓가에 속삭이며 말했어요.

“하지만 저 산은 바위와 가시덩굴이 많아서 위험한 곳이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는걸. 털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다리까지 다칠 수 있댔어.”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안전한 지름길이 어딘지 알고 있어. 우리가 그곳까지 데려가 줄게. 그리고 저녁에 너 연습 끝나면 같이 농장으로 돌아오자.”

셋째 백조가 자신들만 믿으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습니다.

막내 오리는 잠시 고민했습니다. 농장 근처의 산은 위험한 만큼 신비한 기운이 흐르기로 소문이 나 있는 것을 막내 오리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백조 형제의 제안은 막내 오리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습니다. 평소 막내 오리에게 미운 짓을 많이 한 백조 형제이기에, 마음 같아서는 도도하게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싶지만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열 번, 아니 딱 일주일만 신묘한 산에 가면 정말로 날갯짓에 성공하지 않을까? 막내 오리는 원하던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농장의 풍경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행을 구경하는 농장 동물들의 모습도 떠올려보았습니다. 

막내 오리는 이내 백조들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다음 날, 백조 형제와 막내 오리는 등산길에 올랐습니다. 

소문대로 산길은 땅이 울퉁불퉁하고 경사도 가팔랐습니다. 막내 오리는 다리 근육이 아려오고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막내 오리는 날갯짓을 연습하느라 그간 상체 운동만 열심히 한 것이 새삼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체가 이렇게 부실해서야 원, 막내 오리는 혼잣말을 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나마 백조 형제가 앞장서며 길을 터주는 덕에 막내 오리는 비교적 정돈된 길을 따라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희는 굳이 산을 오르지 않아도 날아서 산꼭대기에 갈 수 있지 않니? 그냥 너희가 나를 태우고 산 정상에 가는 건 어때?”

산 중턱에 있는 작은 개울물에서 목을 축이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에 막내 오리가 백조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뭘 몰라서 그래. 그렇게 하면 산 정상에 빨리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산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할 수 없어. 너 피톤치드라고 들어는 봤니? 나무가 내뿜는 좋은 기운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직접 산에 올라야 한단다.”

막내 오리는 피톤치드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백조 형제의 설명은 왠지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나무들로 둘러싸인 산길은 급한 경사로 인해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농장과는 다른 공기나 습도가 기분 좋게 느껴지던 참이었습니다. 체력에 부쳐 헥헥대기는 해도 막내 오리는 난생처음 해 보는 등산에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막 출발했을 무렵에는 백조 형제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닐지, 산이 너무 위험하지는 않을지 의심과 걱정이 가득했지만 정신없이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잡념도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더군다나 중간중간 막내 오리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돌아 확인하고, 높은 바위를 올라야 할 때면 제 날개를 선뜻 내미는 백조 형제의 모습에 막내 오리는 자신이 그들을 경계했다는 게 조금 미안해질 지경이었습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백조들이 개과천선을 한 걸까? 이렇게까지 잘 챙겨줄 줄은 몰랐는걸.’

막내 오리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백조 형제와 막내 오리는 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첫째 백조는 뒤따라오는 막내 오리를 손짓하며 불렀습니다.

“드디어 다 왔다. 막내 오리야, 여기 앉아서 경치 좀 봐봐.”

막내 오리는 산 정상에 놓인 바위 중에서 평평한 곳을 골라 털썩 앉았습니다. 그리고 난생처음 본 산 아래 경치를 막내 오리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세계를, 하늘을 날게 되면 매일같이 볼 수 있겠지.’

그렇게 넓어 보이던 농장의 호수와 들판도 높은 산 위에서는 조그마한 퍼즐 조각처럼 보였습니다. 동물들은 아기 새가 쪼아 먹는 벌레처럼 티끌 만했습니다. 농장 밖에는 높은 울타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헛간보다 훨씬 더 커다란 지붕이 달린 집이 케이크에 꽂힌 초처럼 가지런하면서도 뒤죽박죽 세워져 있었습니다. 집과 집 사이사이에 난 길 위로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자 하늘이 호수보다 더 가까이 열려 있고 구름은 연꽃처럼 피어있었습니다.

막내 오리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때, 멋지지 않니? 연습을 하더라도 이렇게 동기 부여가 확실히 되는 곳에서 해야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데.”

첫째 백조가 의기양양해하며 말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저기 바로 근처에서 좀 쉬고 있을 테니까, 넌 여기에서 마저 연습을 하렴.”

둘째 백조는 하품을 하며 산꼭대기에서 몇 발자국 아래에 있는 널따란 바위를 가리켰습니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낮잠을 자기 좋게 생긴 바위였습니다. 

“아유, 다리 아파. 농장까지 또 어느 세월에 내려간담?” 

셋째 백조가 제 무릎을 콩콩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막내 오리야, 하여튼 간에 연습 끝나면 우리 불러. 어두워지기 전에는 내려가야 하니까, 농장에서 간식 먹는 시간 전까지 연습하면 될 거야. 알겠지?”

막내 오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알겠어. 고마워, 백조들아.”

막내 오리는 날개를 움직이기 위한 준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백조들은 막내 오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막내 오리가 보이지 않는 바위 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어느새 해가 차츰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막내 오리의 날개는 구름처럼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농장보다 서늘한 산꼭대기임에도 불구하고 막내 오리의 털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막내 오리의 배꼽시계가 곧 내려가야 하는 때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막내 오리는 팔다리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훨씬 느낌이 좋았습니다. 완전히 날지는 못했지만 여태껏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에 머물렀던 중에 가장 오랫동안 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르긴 해도 식구들 가운데 가장 성미가 급한 둘째 누나가 밥 먹는 데 걸리는 시간 정도는 될 거라고 막내 오리는 짐작했습니다. 집에 가면 누나가 밥 먹을 때 옆에서 연습해봐야지. 깃털 날린다고 다들 싫어하려나? 그럼 하루만 누나더러 밖에서 밥 먹어줄 수 있냐고 물어봐야겠다. 막내 오리는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는 도중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다짐했습니다. 빨리 백조들과 함께 가족들이 있는 농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점차 꿈과 현실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즐거운 소식과, 소문에 둘러싸인 신비한 산에 와 본 무용담을 들려주면 가족들도 분명 기뻐해 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막내 오리는 백조 형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산꼭대기 바로 밑 바위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백조들아, 오래 기다렸지? 우리 이제 집에 가자.”

막내 오리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낮잠을 자고 있을 줄만 알았던 백조 형제들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먼지만 나뒹굴었습니다.

“푸하하하하-”

영문을 모르고 서 있는 막내 오리의 등 뒤로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젖히자 백조 형제가 저 멀리서 막내 오리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우린 같이 산에 올라온다고만 했지, 같이 내려가겠다고는 한 적 없다- 이 멍청한 오리 녀석아.”

“곧 해가 지고 어두워질 거란다, 불쌍한 오리야. 밤에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산짐승들 피해서 어디 한 번 무사히 내려와 보시지.”

“우린 농장에서 간식이랑 저녁까지 먹고 있을게-”

그제야 막내 오리는 어제부터 백조 형제가 제게 보여준 낯선 친절과 배려의 본래 의도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백조 형제는 처음부터 막내 오리를 골탕 먹일 생각으로 산에 데리고 온 거였어요. 막내 오리는 자신을 홀로 남겨둔 채 유유히 날갯짓을 하며 농장으로 돌아가는 백조 형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름은 점점 짙어지는 보랏빛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의지했던 백조 형제에 대한 배신감, 보다 경계하고 의심했어야 할 존재를 함부로 믿어버린 제 자신에게 느끼는 야속함, 그리고 어둡고 험한 산길을 홀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막내 오리가 한꺼번에 맞닥뜨리고 있던 그때, 농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간식을 먹고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농장의 동물들은 중앙에 위치한 호수 근처에 모여 다 같이 운동을 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동물들의 건강 증진과 이웃 간의 교류를 통한 친목 도모를 위해 지금은 돌아가신 호랑이 농장 대표가 추진했던 일종의 행사였는데, 그것이 오랜 시간 관습화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농장의 최고 어르신 타조 할아버지부터 태어난 지 달포쯤 지난 아기 염소까지 다 같이 호수 둘레를 걷거나 둘셋 짝을 지어 체조를 하는 농장의 풍경은 어김없이 평화로운 듯합니다. 나이 어린 동물들은 호수에 몸을 담그거나 흙을 만지작거리며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느라 바빴습니다. 호숫가에 사는 개구리 아저씨는 물이 더러워진다며 꼬마 동물들에게 짐짓 으름장을 두었지만, 이내 한 발짝 물러난 곳에서 빙그레 미소 지으며 물방울이 튀는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두더지 아주머니는 아이들과의 흙장난에 동참하여 무언가를 만드는 듯 열심히 조물대고 있습니다.      


한편, 오리 가족은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막내를 본 동물이 있는지 주위에 묻고 다니기 바쁩니다. 아무도 막내 오리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아 엄마 오리의 낯빛은 갈수록 어두워집니다. 다른 동물들이 금방 돌아올 거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 보지만 엄마 오리의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늘은 맑은데 엄마 오리의 얼굴 위에는 곧 물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엄마 오리가 집으로 돌아와 몸을 털썩 던지며 한숨을 내쉬던 찰나, 농장 근처에서 불현듯 컹 - 하고 무언가 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놀란 동물들이 웅성웅성했습니다. 잠시 후 같은 소리가 아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밖에서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사냥개예요! 긴급 상황입니다. 모두 입구에서 떨어진 곳으로 대피하세요.”

농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고 어미들은 놀라서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울음을 터뜨린 자식들을 품 안으로 잡아당겼습니다. 개구리들은 물속 깊은 곳으로, 두더지는 땅 구멍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갈 곳 잃은 동물들은 무작정 농장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농장의 들판은 입구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넓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동물들이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공간은 달리 없었어요. 결국에는 막다른 곳에 다다른 동물들은 모두 두려움에 벌벌 떨었습니다. 지금 들려오는 소리의 위험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어쩌죠? 지난번 때처럼 사냥개가 곧 농장으로 올 거예요.”

“그땐 호랑이 영감님이 계셔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지금까지 농장에는 세 차례의 총성과도 같은 커다란 울림소리가 들려온 적이 있는데, 십수 년 전 맨 처음 울려 퍼진 소리를 직접 들었던 몇몇 동물들은 아직까지도 그때를 떠올릴 때면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수사자 만한 덩치에 코끼리 상아 같은 송곳니를 가진 사나운 사냥개가 농장에 쳐들어왔던 바로 그날, 많은 동물들이 몸에 깊은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빼앗기는 참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 자식이 죽어나가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부모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슴 깊이 맺힌 원한을 풀지 못해 오랜 시간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와 같은 한 차례의 위기를 겪은 농장은 오랜 논의 끝에 옆 옆 마을에서 호랑이 영감님을 모셔왔고, 몇 년 후 사냥개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농장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 영감님이 세상을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어디선가 소문을 듣기라도 했는지 사냥개가 세 번째로 농장에 온 것이었습니다. 나이 많은 동물들은 이미 겪었던 지옥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될까 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물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 속에서 덩달아 놀라 겁에 질린 채 우왕좌왕했습니다.     


“꽥 -- 꽥꽥 -- 꽥 -- 꽥꽥 --”

그때였습니다.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던 사냥개의 짖는 소리 위로 어떤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근원지를 알 수 없는 그 소리는, 여름날 숲 속에서 쉼 없이 울어대는 매미와 같은 존재감을 뿜으며 농장에 있는 모든 동물들의 청각을 사로잡았습니다. 집에서 슬픔에 빠져 있던 오리 가족은 물론이고, 울타리에 바짝 기대 몸을 숨기고 있던 돼지 가족, 농장의 최고 어르신 타조 할아버지, 땅 속 깊숙이 숨어 있던 두더지까지 모두 공기를 압도하는 우렁찬 울음소리에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농장 동물들뿐만 아니라 사냥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간헐적으로 동물들을 위협하는 소리를 내던 사냥개는 고막을 찢는 듯한 소음을 피해 농장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이거 막내, 우리 막내가 우는 소리 아니에요?”

사냥개가 농장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자마자 모두가 환호하며 기뻐하는 와중, 집 안에 있던 엄마 오리가 동물들이 무리 지어 있는 울타리 쪽으로 뛰어 오면서 외쳤습니다. 가만히 듣고 보니 정말로 농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어린 막내 오리의 목소리였습니다. 

“어디, 저기 산 위에서 들리는 것 같은디... 맞네, 암만 들어봐도 우리 농장 막둥이 목소리 맞네.” 

농장의 최고 어르신 타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럼 사냥개가 우리 막내 오리 목청소리에 줄행랑을 쳤다는 건가? 진짜 우리 막내, 목청 하나는 최고구나.” 

첫째 오리가 뿌듯해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막내 오리가 산에 있는 것 같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죠?”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보아하니 산에 간 모양인데. 거길 혼자 어떻게 올라갔나 모르겠네, 위험하기로 소문난 곳인데.”

농장의 동물들은 사냥개를 물리쳐 준 막내 오리를 위험한 산에서 어떻게 데려와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오리 가족이 곧장 산을 오르려 하였으나 곧 해가 완전히 기울어질 때가 다가왔으므로 주변 동물들이 만류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하고 있을 무렵, 지나가던 독수리가 동물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호수에서 잠시 물 좀 먹고 가겠습니다.” 

독수리가 농장 동물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호숫가에 앉았습니다. 하루 종일 날아다니느라 목이 말랐던 독수리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혹시 농장에 무슨 일 있나요?” 

독수리가 심상치 않은 동물들의 표정을 보고 물었습니다. 동물들은 막내 오리 덕분에 사냥개로부터 목숨을 건진 일이며, 막내 오리가 어두워진 산에 혼자 있어서 위험하다는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산길이 워낙 험해 막내 오리가 혼자 걸어 내려오기도 어려울 텐데 하며 첫째 오리는 걱정되는 마음에 목소리가 떨려왔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가족 분들께서 상심이 크시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막내 오리를 데려오겠습니다.”

독수리의 말에 동물들은 기뻐했습니다. 오리 가족은 독수리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라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잠시 후, 막내 오리는 독수리의 등에 업힌 채 농장에 돌아왔습니다. 들판 한가운데 서서 마중 나와 있던 농장 동물들이 모두 반갑게 막내 오리와 독수리를 맞이했습니다.

“막내 오리야! 무사히 돌아왔구나.”

형제들이 막내 오리를 둘러싸고 다 같이 껴안았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농장의 동물들 모두가 막내 오리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막내 오리야, 네게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은데,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구나. 산에는 어쩌다가 올라가게 된 것이며 산 위에서 그렇게 큰 소리를 낸 건 어찌 된 일이니?”

양 아주머니가 막내 오리에게 물었습니다. 오리 가족도 모두 궁금하다는 듯이 막내 오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막내 오리는 대답하기에 앞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모두가 막내 오리를 둘러싼 채 바라보고 있는 와중, 멀찍이 떨어져 수풀 뒤로 몸을 숨기는 백조 형제가 보였습니다.

“소리를 지른 건 혼자 산에 남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답답한 마음에 그런 거구요. 산에 어쩌다 가게 됐는지는 백조 형제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막내 오리의 말을 들은 모두가 의아해하며 백조 형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백조 형제는 그제야 막내 오리 앞에 나타나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습니다.

“막내 오리야, 정말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

막내 오리를 데려오면서 전후 사정을 전부 알게 된 독수리가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며칠 후 -

가을이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농장은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개들은 잔디 위를 뒹굴며 저희들끼리 장난질을 합니다. 양들은 간지러운 햇살에 미소 지으며 삼삼오오 산책을 합니다. 개구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연못 위를 폴짝댑니다. 높고 맑은 하늘에는 독수리가 구름 사이를 지나가며 농장의 동물들과 눈인사를 합니다. 

“막내 오리야, 오늘도 같이 나는 거 맞지?”

독수리가 아침밥을 먹는 막내 오리에게 큰 소리로 묻습니다.

“응, 곧 출발할게! 조금만 기다려.”

곧 백조 형제가 막내 오리의 집 앞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한 독수리는 씩 웃으며 마을 쪽으로 높이 날아갑니다. 

“막내 오리야, 준비 다 했니?”

첫째 백조가 오리 가족이 사는 집에 대고 묻습니다.

“응. 오늘도 잘 부탁해, 백조야.”

이윽고 첫째 백조는 막내 오리를 등에 태운 뒤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나머지 두 백조는 그 뒤를 따라갑니다. 마을 어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독수리는 날개를 퍼덕이며 손인사를 건넵니다.

“오늘도 함께 신나게 나는 거야, 막내 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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