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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듀(다이나믹 듀오)의 맛깔스러운 랩이 아니다. 어젯밤에 든 생각이다.
컨디션이 조금씩 나아지고 감기 기운에 멍했던 정신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일본어 수업을 마치고 글 한 편을 쓰고 얼른 자야지, 하는 찰나.
찰나였다.
비상계엄
이라는 영화 제목 같은 기사와 사진이 와르르 *카톡에 와있는 걸 발견했다.
뭐야? 이런 재미없는 합성을, 가짜 뉴스도 정도껏...? 잉? 아니, 뭐야?!!!
아니,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고?
잠이 확 깨는 순간이었다.
9시 반부터 조금씩 나오던 하품이 들어갔다.
하... 욕이 절로 나올 것 같은 상황. 화가 나고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2024년에 비상계엄, 종북척결과 같은 소리를 듣고 있자니, 누가 봐도 (스스로) 깨끗하게 개선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아니라
혼자는 못 죽겠다, 같이 당해봐라! (아니, 우리가 왜?)
나를 이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한 주동자를 척결하자! (곤란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그냥 다 모르겠고, 아 됐고, 이렇게 한 방에 해결해 보자! (이 사건으로 한 방에 확실해졌다)
어린아이라도 문맥에 숨은 뜻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말이었다. 내 귀에는 저렇게 들렸다. 단단히 삐진 건지 뭔지 화가 몹시 난 상태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만'살겠다는 거구나, 이젠 확실해졌다.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는 사람임을, 스스로가 잘 정리해 준 셈이다.
나처럼 남은 시간을 견디고 참고, 다음 정권을 위해 감정을 눌렀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먼저 감정 정리를 잘하게 해 주다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다니, 이상한 상사가 있으면 잘 뭉치는 직원들이 생기기 마련이라더니, 국민들끼리 더 잘 뭉치게 하는 지도자라니.
하...
차라리 이렇게 진솔하게 고백하지, 눈물을 질질 짜고 부끄럽고 자존심이 좀 상하더라도
여러분, 저 너무 답답하고 속이 뒤집힙니다. 왜 이렇게 다들 나를 압박하고 싫어하고, 내 말이면 쌍심지를 켜고 나만 공격합니까? 그냥 관두고 싶은 심경입니다. 인정하기 싫고 감추고 싶은 거 투성입니다. 어디로든 숨고 싶고 피하고 싶고 그냥 때려치우고 싶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면, (역시) 공감은 힘들었겠지만 그랬구나, 저런 감정이구나 했을 거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지는 않았을 거다. 진솔하게 사과하고 다시 고치고 일어날 기회도 결국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일인데 그래, 이런 사람이 처음부터 진솔하게 사과했을 리도 만무하다.
불안하고 나약한 개가 잔뜩 짖기만 하고 막상 물 기회만 으르렁 살펴보다가 제일 나약한 대상을 공격해서 왕 물어버린 것처럼 국민들을 대상으로 감정을 마구 쏟아낸 건 물론이고 나라 전체를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역사 교과서, 책이나 영화에서만 듣고 봤던 '비상계엄'이란 글자를 2024년이 지는 마지막 해에 이렇게 마주하게 될 줄이야.
미치광이에게 핸들을 쥐어준 격이라더니, 그러면 그간 대체 어떤 마음으로 정치를 한 거고 어떻게 국민을, 나라를 생각했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국민을 담보로 손에 쥐고 불길로 그냥 뛰어드는 승냥이 같았다. 오로지 자기만 위해서.
▷ 후배 J : 안 그래도 요즘 흉흉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나라를 진짜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나 봐요. ㅠㅠ 지금까지도 마음에 든 게 없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아니 상상조차 못 할 일로 감춰야 할 게 있는 건지 뭘 저리 감추려고 저런 쌩쑈를 하는 걸까요.
▶ Anita(함께 study 하는 선생님) : 아들과 막 통화했는데 취침 중 갑자기 진돗개2 실제상황이라고 완전 무장하라고 해서 처음 5분 정도 전쟁 난 줄 알고 다들 공포였다고 하네요. 새벽까지 잠 못 자고 내내 대기하기만 했다고. 하여간 많은 사람들 잠 못 자게 하고 마음은 당황하고 화났다가 슬펐던 하루였어요.
▷ 심선생님 : 단테 이야기를 읽던 중 들은 계엄소식. 황당하기도 하고 무참하기도 하고 K-culture를 칭찬하고 뭔가 다들 한 발 앞으로 서너 발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기뻐하던 것이 정치적 상황으로 한 번에 무너져버리는 느낌이네요.
▶ Jin(한밤중 도반, 나의 글벗) :
賊仁者 謂之賊
賊義者 謂之殘
殘賊之人 謂之一夫
인을 해치는 자를 적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 한다
적잔, 즉 인의를 해치는 자를 일컬어, ‘그놈’이라 한다.
그놈… 맹자는 시원시원합니다.
지지해 본 적은 없어도 이렇게까지 바닥일 줄이야. 너무 화가 납니다. 시대를 직접 겪으신 분들은 더 황망하시겠죠.
▷ 알레 작가님 : 작가님들, 비록 이게 나라인가 싶지만 우리는 사과나무 같은 글을 심어야죠,
▶ 영글음 작가님 : 내일 지구가 망하면 오늘 사과나무 심기 힘들겠어요.
*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 덕분에 이 와중에도 무슨 정신인지도 모를 그때의 심경이 온통 혼합된 글을 쓰기는 썼다. 아흑, 고마운 분들. 덕분에 그 방에 있다가 웃었다가 울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가도 내가 먼저 해야 할 것들을 다시 찾아가고 생각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이게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심경으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국회 앞으로 달려가서 군인들을 저지하고 막아낸 국민들도 있었다. 자기 집으로 멀쩡히 가는 길인데 전부 폐쇄됐다고 돌아가라는 말에 심각한 상황 속에 불안을 떠는 가장도 있었다. 문이 다 쪼개지기 전에 다행히 자리를 피해 국회 안으로 들어가 계엄 해제 안을 의결해야 한다는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자기 자리를 지켜서 최선을 다해 막아냈기에 너무도 커다란 쪽팔림(아;;; 뭐라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훨씬 더 수치스럽고 갑갑한 일인데) 어이없는 해프닝처럼 하루가 지나갈 수 있었다. 나라의 모든 손실을 생각하면 쪽팔리고 말 일은 절대 아니지만.
계엄 해제 안이 의결되고 기뻐하던 국민들, 거리로 나가서 시위하고 외치는 시민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기뻐하고 함성을 지르다가 인터뷰를 한 중년의 어르신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야 하고 마땅하게 가져야 할걸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되찾았다고 기뻐하니 기쁘면서도 허탈하고 이상한 마음이 든다고. 밤새 위장약과 두통약을 챙겨 먹어야 했던 사람들, 설레면서 미래를 계획했을 사람들, 여기저기서 분주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고 지나왔다. 이제 누가 적잔인 지는 분명 깨닫고 알았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도 그놈은 말이 없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읽으면서 마지막으로 느꼈던 내 감정은, 지옥이 지옥인 이유는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해도 다시 돌아갈 수가 없는 곳이라는 상황적 설정에서 오는 갑갑함과 슬픔, 공포였다. 누군가 보내준 링크로 오마이TV - 실시간 국회 상황 라이브를 보다가 5분도 안되서 음소거 상태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온통 아수라장, 지옥 같은 상황에서 다들 불안에 떨면서도 싸우고 있구나, 이미 뱉은 말과 행동을 주어담지 못하는 거라고 배우긴 했어도 이토록 뼈져리게 느낄 수가 있을까. 여긴 현실이니까 지옥도, 연옥도, 천국보다 더 좋은 건 우리에게 단 하나뿐이라고 느꼈다. 돌이킬 수 있다는거, 반복하고 후회하는 만큼 다시 다르게 변하고 나갈수도 있다는 거, 이게 유일한 살아있는 우리들의 기쁨이 아닐까 했는데... 자꾸 지옥같은 마음이 드는건 붕괴되고 무너지고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세상에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 이재명을 체포하기 위해 무장군인이 부숴버린 이재명 대표실의 문짝이란다.
10분만 늦었어도 문짝을 뚫고 들어가서 어쨌을지...
국민들의 삶도, 마음도 저렇게 부수고 밟고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