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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Aug 17. 2023

아빠도 사실 무서워!

내가 좋아하는 사진


둘째 선율이를 임신했을 즘에 출산이 다가오면서 첫째 아이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갔다. 이번 생일이 선재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생일이구나, 선재랑 단 둘이 여기에 오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아이와 단 둘만의 시간을 더 가지려고 애썼던 것 같다. 둘째가 있기 전이라 출산 후 모습이 어떨지 장담할 순 없었지만 이미 아이 넷을 가진 울 언니가 첫째만 있을 때와 둘째가 태어난 이후의 환경이 바뀌는 건 익히 봐왔기에 나도 모르게 뭔가 짠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중간에 찾아서 주렁주렁이나 동물원도 가고 단 둘이 아쿠아리움도 갔다. 단 둘이 쿠키를 만들기도 하고 과학실험을 하면서, 우리 집에 친구들도 초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특별히 잘해주려고 애썼던 것 같다. 당분간 이렇게 둘이서만 외출할 일이 없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기에 선재가 자주 가고 좋아하는 장소를 한 번씩 눈도장, 발도장 찍어주고 싶었다.


Note. 아이의 만족감은 높기도 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것보다 무리해서 한 탓에 엄마의 피로도는 올라가서 한 번씩 '나는 너한테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는 짜증이 올라올 때도 있었고,
막상 둘째가 태어나고 보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동화책 읽어주기, 병원놀이 같은 걸 누워있는 아가를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거란 걸 알았다. 혹시 임신 중이라 첫째 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있다면 안쓰러운 마음보다는 '함께'할 수 있는 30분이라도 소중하게 보내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아이에게 남는 건 어디 어디를 많이 가고 체험을 한 기억보다 가족이 '함께'있다는 정서와 자기 전에 나눈 서운한 이야기, 서로에 대한 칭찬, 작은 포옹, 격려 이런 것들이 더 크다는 걸 깨달았다. 잠들기 전에 진실의 입처럼 오늘 속상하고 슬펐던 일을 말해주는데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더 많이 공감해 주고 꼭 안아줬더니 아이는 이 시간에 마음속 이야기를 많이 꺼내 났다. 재잘재잘, 밤은 깊어가고. ㅋㅋㅋ






가을이 다가오는 쌀쌀한 날씨에 서울랜드를 찾았다. 야간 개장을 하고 있어서 끝까지 놀아주자란 마음으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뮤직박스도 타고(기쿠지로의 여름 OST가 나온다) 라바도 타고(엄청, 그냥 미친 듯이 도는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놀이기구다) 선재만 혼자 탈 수 있는 사파리나 기차 같은 것도 태워줬다. 아이는 해와 달인 지, 해님 달님인지 위아래로 조금씩 왔다 갔다 이동하는 놀이 기구와 범퍼카, 라바를 특히 좋아했다. 평일 저녁 시간엔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좋았다. 전에 살았던 곳에서 대공원과 서울랜드가 가까워서(30~40분 거리) 자주 가곤 했는데. 무거운 만삭의 배를 이끌고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놀이기구를 타고 자꾸 걸어서인지 나는 몸이 조금 피로했다. 급류 타기는 아빠와 단 둘이 타라고 했더니 아이는 그것도 좋다며 깡충깡충 아빠 곁으로 뛰어갔다.



              급류 타기 : FLUME RIDE



일명 후름 라이드! 통나무를 반 잘라 만든 것 같은 배를 타고 좁은 골짜기 같은 도랑을 지나간다.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지만 곳곳에서 튀기는 물방울이 사실감 있고 재밌다. 오르고 또 오르고 계속 삐그덕 철커덕 오르다 보면 정상 꼭대기에 와닿는다. 이제 내려갈 차례, (여기가 유일하게 제일 빠른 내리막 코스이다) 마음 준비 단단히 하시고! 그 순간 포착도 놓치지 않는다. (누가? 서울랜드에서. ㅋㅋㅋ 이렇게 사진으로 남기고 또 종이액자지만 희소성 가치가 높고 높은 가격에 팔 수도 있으니까.→내가 샀음!)

전에 셋이 탔을 때도 신랑이 우리 쪽으로 물이 튈까 봐 자기 백팩으로 물보라를 막아준 걸 엄청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순간 포착된 사진을 보니! 보니, 선재보다 더 쫄아있잖아! 이를 잔뜩 꽉 깨물고 손과 온몸에 힘이 빡 들어갔다!! 이 사진을 보자마자, 얼마나 깔깔깔 배꼽 잡고 웃었는지 모른다. 뭐야, 애만큼 긴장하고 떨렸네, 많이 무서웠구나, 하고 둘이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그 모습이 좋아서 기념으로 샀는데 5년이 지난 후, 지금, 얼마 전 다시 우연히 이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아, 맞아, 우리 신랑은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었지. 무서웠는데 그럼에도 저렇게 아이를 먼저 꽈악 끌어안아줬구나. 아빠란 존재가 남자라서, 가장이라서 무섭지 않은 건 아니다. 아빠도 사람인데 당연히 무섭고 어쩌면 가장이기에 어깨가 더 무겁고 이리저리 치이면서 심장은 더 쿵 하고 내려앉고 때론 버거울 때가 왜 없겠는가.


다시 찬찬히 그 얼굴들을 들여다보니 선재의 눈엔 추락의 공포와 스릴이 있지만 신랑의 눈엔 아이를 지켜주겠다는 불안도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나의 신랑나의 선재.


서로가 기댈 곳 없어도 이렇게 꽉! 놓치지 말고 안전바 하나만 있어도 안전바를 붙드는 대신 아빠를 꽈악 안고 있는 작은 아이, 내 새끼들. 엄마 아빠가 공포의 순간에도 유일한 버팀목인 아이들을 어떻게 놓치고 방심할 수 있을까. (종종 방심하기도 한다. 엄마도, 아빠도 사람인지라ㅎㅎㅎ장엄하게 말하려 해도 이것이 진실인 것을) 엄마도, 작은 꼬물이손 선율이도, 함께 후름 라이드를 탄, 한 배를 탄 가족이다. 함께 해줄게.


나이가 든다고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용감해지는 건 아니다. 나는 아이 둘을 낳으면서 전신마취를 처음 해보고 그다음엔 반신 마취를 했는데 마취의 경험이 있다고 해서 또 할 때 용기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어떤 기분, 느낌인지 순서를 알고 그때 상황을 짐작만 할 뿐 매번 새롭고 매번 낯설고 무서운 경험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그때마다 참고 지혜롭게 꿀떡 화를 삼키고 분노를 좀 누그러뜨리고 매번 잘 대처하는 건 아니지만 화를 내서라도, 다급하게 붙잡아서라도 아이 안전을 위해 지켜줘야 하는 순간들은 내 생각보다 많았고 앞으로도 이런 여정은 계속될 것 같다.




아빠라고 해서, 엄마라고 해서,
안 무서운 건 아니야.
오히려 더 겁이 날 때도 많아.




그냥 어른이고 우리의 책임이기에, 더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도 하지만 세상엔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무기력해지고 절망감에 빠지는 무서운 순간도 있다. 그땐 그냥 손 잡아주고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붙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용기'라는 걸 느낀다. 아이를 키워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위기와 어려움의 순간에 더 손 잡아주고 싶고 똘똘 뭉치게 하는 가족의 힘은 사실 '이유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철이 없어서 이제 이 나이답게 좀 더 참아보고 이렇게 살아봐야지 하고 다짐도 하고 결심도 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슬프게도, 하지만 뭐, 아무려면 어때.


아이의 성장만큼 눈에 띄지도 않고 드라마틱하진 않을지언정 엄마도 아빠도  분명 서서히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기구를 함께 탄 그 순간부터, 여름에 위잉~ 모기에 물린 아이 피부에 속이 상해 온 신경을 곤두 세워 결국 모기를 잡고야 마는 집념의 아빠가 되는 순간까지 나보다 '아이'를 앞에 두고 걷지만 사실은 지켜주고 늘 안아주고 바라보고 있다.


물이 안 튈 수는 없겠지. 급류를 타다 보면. 물을 한 방울도 안 맞을 순 없지만

이렇게 꽉 끌어안은 채로 아이와 같이 물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


부모가 된다는건 이런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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