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몸으로 하는 취미
시간이 흘러도 스냅샷처럼 머릿속에 그려지는 광경이 있다. 조금 전의 일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미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살사바를 처음 들어서던 그 순간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전에는 살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살사가 뭔지 조차 몰랐다. TV에 나오는 스포츠댄스를 보면 비슷한 춤이겠거니 생각했다. 어느 날 살사를 배우던 친구의 제안으로 살사바 구경을 갔다.
강남역 대로변이지만 한 번도 주의를 두지 않고 지나쳤던 건물의 지하에 살사바가 있었다. 보물찾기하듯 관심을 가지고 찾지 않으면, 눈앞에 두고도 찾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건물의 옆의 깊고 좁은 계단 통로를 따라 내려가서 지하 출입구를 여는 순간,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어두컴컴한 불빛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1920년대 미국의 영화 속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 공간에 서 있으니 시간여행을 온 듯했다. 사람 얼굴이나 겨우 분간할 수 있을법한 어두운 불빛 아래 귀가 먹먹해지도록 큰 음악 소리는 바깥세상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차단했다.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생소한 타악기를 배경으로 한 빠른 템포의 남미음악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음악 소리에 맞춰서 플로어를 자유자재로 가로지르며 정신없이 춤을 춘다. 남녀가 한 쌍이 되어 손을 잡았다가 들었다가 놓았다가 빙빙 돌았다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변화무쌍하게 몸을 움직인다.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이 공간에 그들만 있는 것처럼 전혀 주위를 개의치 않고 서로에게 집중한다. 춤추는 여자의 소매는 움직일 때마다 펄럭거려서 여자의 춤사위를 더욱 크고 아름답고 빛나게 만들고, 남자는 여자의 움직임을 여유롭게 지켜보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안정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움직임으로 한 동작을 마무리하고 다음 동작을 시작한다. 그러면 여자는 그 리드에 맞춰서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움직임으로 다시금 시선을 빼앗아간다. 어둠 속에서 이따금 은은하게 비추는 불빛은 댄서들의 표정과 동작을 한껏 매혹적으로 만든다.
다시 멀리서 둘러보면 고요한 줄 알았던 어둠은 춤추는 사람들로 빼곡 차 있었고, 그들의 열정으로 살사바의 공기는 덥고 뜨거웠다. 스테이지의 벽면에는 이따금 맥주를 홀짝이며 구경하는 무리가 있었는데, 춤을 추던 사람들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벽면으로 나와서 쉬기도 하고 술을 한 모금 마시기도 했다.
살사바의 광경 하나하나가 비현실적이었다. 세밀하게 연출해 놓은 영화 세트장 같았다. 빠르고 격정적인 움직임 속에서도 그들을 가장 빛나게 만들었던 것은 그들의 표정이었다. 열정적인 눈빛과 이따금 주고받는 뜨거운 아이컨택,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환한 미소는 너무 밝고 생동감 넘쳐서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표정은 몸짓만큼이나 음악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는데, 온몸으로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표정, 동작 하나하나가 역동적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듯, 온전히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는 삶과 고민, 근심과 걱정의 무게가 없는 것 같았다.
발레처럼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배우고 싶은 마음을 고이고이 간직해오다 시작한 취미가 있는가 하면, 아무런 계획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한 것도 있다. 그때 살사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나와 살사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