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몸으로 하는 취미
운이라는 게 있다. 마음먹은 대로 될 것 같지만 노력해도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다른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도 있다. 그럴 때 운이 좋다고 한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원하지만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손쉽게 얻은 것은 손에 쥐고도 진정한 가치를 모를 때가 있다. 나에겐 살사가 그랬다.
테크트리는 와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살사에도 단계가 있다. 초급을 수료하고, 준중급을 수료하고, 공연을 시작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고, 공연팀에 들어가고, 대회를 나가고, 수상을 하고, 강사를 한다.
살사를 배우기 위해 살사 동호회에 가입했다. 동호회에서 연차가 쌓인 선배들과 어울린 덕에 첫 수료식 이후 곧바로 공연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내가 몸을 잘 쓰거나 춤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러운 테크트리의 수순을 건너뛰는 것은 부담이었다. 함께 공연하는 팀원들에 비해 나의 실력은 모자랐고,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그런데도 재밌었다. 평소에 음악을 좋아했는데,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세계였다. 나는 무한히 자유로웠다. 나를 막는 것은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재미있는 만큼 잘하고 싶었다. 퇴근하자마자 연습실로 달려가서 자정이 될 때까지 춤췄다. 더 잘하고 싶어서, 팀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아서 연습에 연습을 더했다.
시간이 나면 춤췄고, 춤을 추지 않는 순간에는 춤을 생각했다. 길을 걷노라면 거리에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과 차량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핸드폰으로 틈만 나면 살사 음악을 듣거나 해외 댄서들의 춤영상을 봤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렇게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는 몸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넘쳐났다. 가만히 있으면 엉덩이는 간지러웠고 귓가에는 음악이 맴돌았다. 이른바 ‘살사병’에 걸렸다.
공연팀에 합류한 지 6개월 차에 대회에 나갔다. 공연 경험 3회 만에 대회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해보자 싶었다. 나는 살사가 좋았다. 죽지 않을 만큼 연습했다.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체력으로 연습을 소화했다. 피곤한 줄도 몰랐다.
하지만 단기간에 몸을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 욕심만큼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팀원들의 키와 전체 그림을 고려하다 보니 살사 경력이 제일 짧은 내가 졸지에 센터에 서게 되었다. 원래도 잘하고 싶었지만, 잘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연습할수록 부족한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부담감과 자신감은 반비례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객석에 여유 있게 미소를 보내고 음악을 가지고 노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다. 무대에 오르면, 나는 무대를 씹어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대회가 시작되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 사방에서 쏘아대는 조명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봐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든 것이 어색했다. 음악이 나오고 공연을 하는 중에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3개월을 넘게 준비한 3분은 긴장 속에서 아쉬움만 남긴 채 흘렀다.
공연 후 무대 위에서 수상자를 호명하던 순간,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팀이 1등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상을 받은 게 얼마 만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살사로 상을 받다니, 그것도 첫 대회에서, 그것도 1등이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내 실력이 아니었다. 상황적 배경, 안무의 작품성, 함께한 팀원들의 실력이 어우러져서 만들어 낸 운이었다.
예상외의 커다란 행운은 큰 여파를 남겼다. 그전까지 편하게 즐기던 춤이었는데, 대회 이후로 사람들을 의식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면 수군거리고 비웃을 것 같았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하고 쳐다보는 듯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 부족한 실력에 대한 부끄러움, 완벽주의는 나를 위축시켰다. 살사대회 1등이라는 타이틀은 당시의 나로선 감당하기 버거운 족쇄였다. 나는 운이 좋았지만, 운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나는 현실을 즐기는 대신 불안에 사로잡혔다. 첫 번째 꿈은 목표와 희망을 주었지만, 두 번째 꿈은 현실에서 나를 끌어내렸다. 자신감이 부족하던 내게 꿈이 실현된 현실은 위협처럼 느껴졌다. 나를 보호하려던 마음은 의도와 달리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대회 이후 나는 슬럼프에 빠졌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대회 이전처럼 살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진지할 것까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즐기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든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질 영광인데,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인생의 달콤한 순간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나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늦었지만 당시의 나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열심히 했어. 잘했어. 인사가 늦어 미안해.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