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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20. 2021

취미는 로맨스, 일은 다큐

취미로 하는 일

  한때 잔혹 동화가 유행했다. 백설 공주에게 입을 맞춘 왕자는 사실 시체 애호가였는데 백설공주가 깨어나자 그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위장 결혼을 했고, 무도회장에서 신데렐라를 보고 한눈에 반한 왕자는 원래 금사빠에 한번 꽂힌 것에 집착증 환자였다고 한다. 현실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하지만, 나는 전체적인 맥락보다는 특정한 장면이나 상황에 대한 환상을 가져왔다. 어른이 되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환상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있다면’이었다.


  취미로 일을 하고 돈을 벌 기회가 생기면서 직업을 바꾸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취미가 직업이 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취미 시장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경력을 시작했다.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돈을 내면서 배우는 것과 다른 사람의 수업료를 받고 가르치는 일은 달랐다. 내가 취미를 통해 즐거움과 삶의 의미를 느꼈던 것처럼 수강생들에게 그만큼의 가치를 제공해야 했다. 단순히 내가 잘하는 것을 넘어서 쉽게 설명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동시에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담을 들려주기 위해서 꾸준히 취미를 이어나가야 했다.


  수업을 맡는 것은 가르치는 것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과 공간을 책임지는 일이었다. 수업 시간 동안 사람들을 리드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흥미를 유발하고, 좋은 감정을 전달해야 했다. 장소부터 조명, 음악, 작은 것들까지 신경 쓰고 관리해야 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강사를 하면 마음껏 취미를 즐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하기 싫은 일까지 기꺼이 껴안는 것에 가까웠다. 강사의 역할은 커리큘럼 개발, 가격 책정부터 수업 홍보를 위해 포토샵을 배우고 전단을 돌리고 비용을 관리하는 일까지 포함했다. 1인 기업이었다. R&D, 생산, 마케팅, 회계 전부 셀프였다. 닥치면 해야 했다. 전체 영역에서 취미는 일부에 불과했다. 이 일 저 일에 부딪히다 보면 내가 과연 이 일을 좋아하는지 회의감이 생길 때도 있었다. 


  취미가 일상이 된다는 것은 언뜻 들으면 낭만적인 말이었지만, 이면에는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취미와 일과 삶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작정하고 쉬지 않으면 일상은 일의 연장이었다. 회사에는 출근과 퇴근이라는 분명한 경계가 있지만, 취미가 삶인 세상에서 깨어있는 시간은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가활동 시장은 불확실성이 높았다. 여름휴가, 연말 같은 계절적인 요인부터 경제나 사회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시작했다. 파트타임이 아니라 풀타임을 생각한다면 생각해야 할 부분이었다. 


  별 고민 없이 시작했지만,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마냥 즐겁거나 쉬운 일은 세상에 없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고 누구든 저마다의 고충이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단점이 멀리서 보면 장점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상황을 상쇄할 만한 기쁨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즐거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데서 오는 뿌듯함은 기대 이상의 보람이다. 아마도 취미가 직업이 되면,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 궂은일을 얼마나 껴안을 수 있는지 계속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나서도 좋아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일 것이다. 삶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어디를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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