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부자, 부캐의 탄생

1. 20대에 찾아 온 사춘기, 그리고 취미의 시작

by 지금

취미를 갖기로 마음먹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루하루 살기 바빠서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학생 때는 학교 다니느라,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 하느라 바빴다. 졸업 후에는 취직이 우선이었고, 취직 후에는 한동안 자격증 시험에 매달렸다. 살면서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지금처럼 많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어떤 취미를 하는지 둘러봤다. 남자 동료들은 농구, 야구, 자전거, 등산과 같은 운동동호회를 했는데 딱히 끌리지 않았다. 특이한 활동으로 스쿠버다이빙이 있었지만,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굳이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죽공예, 꽃꽂이, 베이킹을 배우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손재주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취미가 아닌 내 취미를 찾고 싶었다. 스펙이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가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취미를 갖고 싶었다. 별다른 목적없이 취미활동 그 자체로 즐겁고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빈 종이를 펼쳐서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별 고민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빈 종이를 보니 막막했다. 첫 버전을 완성하는 데는 한 달이 걸렸다.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무엇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 하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유가 좀 생기면’ 하고 미뤘는데, 예전의 꿈들을 떠올려보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들여다본 것 같아서 나에게 미안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왔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씁쓸했다.


인터넷을 찾고, 다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좋아보이는 것을 옮겨적었다. 영화를 보면서 따라서 해보고 싶은 것도 적었다. 다 적으니 스무 개가 조금 넘었다. 갖고싶은 물건부터 유럽여행, 작품 전시회까지 다양했다. 적어놓은 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꿈 많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저렇게만 살 수 있다면 인생이 살만할 것 같았다.


그 때부터 일 년에 1, 2회 인생 버킷리스트를 꾸준히 썼다. 몇 년째 꾸준히 등장하는 꿈이 있는가 하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꿈도 있었다. 업데이트를 거듭할수록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과 잠시 멋있어 보여서 끌렸던 것이 보였다. 그동안 내가 쓴 리스트들을 살펴보면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드러났다.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것은 단단한 축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버킷리스트의 버전이 여섯 번째를 넘어가면서부터 꿈이 실제로 일어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생각나지 않는 꿈을 채우느라 힘들었지만, 계속 쓰다보니 버킷리스트의 항목이 순식간에 40개를 훌쩍 넘어서 기억하기도 어려웠다. 리스트에 적어놓고 잊고 있었던 꿈이지만, 꺼내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근접해 있거나 이미 성취한 경우가 많았다. 애쓰지 않아도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완성한 후에,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은 길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싶었다. ‘십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가장 끌리는 건 운동이었다. 퇴근 후에 남는 시간으로 뭔가를 하려면 체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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