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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Sep 18. 2021

그 날 밤, 그녀의 방송

Z에게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지루하다 못해 비루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강도 높은 하루가 반복된다고 해서

내가 근육처럼 강하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방전을 앞둔 건전지처럼 소모적인 나날들 일 뿐.


바쁘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삶은 정확히 이분된다.

회사에서의 시간, 회사에서가 아닌 시간으로.



가끔 직장인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 정도?


직장인이 되기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딱히 계기가 없암막커튼 처진 밀실처럼

돌아볼 겨를 없이 깜깜하기만 하다.


계기.


지치는 일상이 연속되는 와중에도

애쓰지 않아도 파노라마처럼 기억이 되살아나며

과거를 회상하게 되는 계기.


계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작정하고 기억을 되짚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옛날 노래"를 우연히 듣다가

노래에 스며들어있는 개인적인 역사

불가항적으로 머릿속에 자동 재생된다.


슬픈 발라드에 즐거웠던 기억이 숨겨져 있고

신나는 댄스에 가슴 아픈 흑역사가 담겨있다.


하루하루가 코스닥 차트처럼

변화무쌍하던 스무 살의 나날들.


그 시간들 속에서

관계의 연속성이 끊겼음에도

간혹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어느 날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것일까

젊었던 시간들에 대한 아련함일까.



'소리바다'라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비스가 있었다.


업체에서 제공하는 추천 플레이리스트나

최신TOP100 따위를 재생하는 요즘,

자신의 mp3 file을 상대와 공유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MZ세대들은 잘 모르겠지?


소리바다 이용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mp3 파일을 고음질로 추출해서

공유하고 갑론을박하는 헤비유저들과

소소하게 mp3를 줍줍 하고

간혹 방송도 들으며 채팅하는 유저들.


나는 후자였다.


별풍선과 과금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송출하는

현재의 개인방송처럼

그때의 소리바다에도 희한한 방송이 많았다.

'엽기송'이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반면 특이한 콘텐츠도, 특출 난 내용도 없이

특정 시간만 되면 윈앰프를 켜고

덤덤히 방송을 하는 일반인들도 많았다.


'코어팬'이 더 많은 건 이쪽이었다.


나는 후자였다.


그 '코어팬' 이 나다. 하하^^



꽤 오랫동안 저녁마다 방송을 하던 그 사람.


pepelopez.


그녀가 나를 기억할련지..

20년 전의 일이니까 잊혀졌을 수도 있겠다.


당장 어제 읽었던 커뮤니티의 인기글이나

방금 주고받았던 카톡조차 가물가물 하면서도,

그 시절 그때의 감정은 잊지 않고 있다.


소리바다에 접속해서 채팅 시스템을 열었을 때

그녀의 방송국을 발견했을 때의 설렘 같은 것들.


그녀는 그 당시 이른 나이에 취업해

회사에 다니던 연상의 여인, 누나였다.

주류회사에 다닌다며

친숙한 데낄라 상품명을 본인의 아이디로 정했단다.


탁성의 목소리가

이따금 직장인의 고단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신청곡을 띄워놓고 다른 걸 하다가

그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내 노래를 틀어주고

대화방의 내용들을 간결하게 언급할 때면

피식 웃기도 했다.


그녀는 특별한 말솜씨는 없었지만

자신의 손님들 중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두루 살피는 부지런함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녹록지 않았지만

스피커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노동요 삼아

고단한 밤을 견뎌낼 수 있었다.


수퍼챗이나 별풍선 같은 시스템이

그때의 소리바다에도 구현되어 있었다면

작게나마 감사함을 전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늦은 밤 까지 방송을 하다가

때로 음악만 잔뜩 걸어놓고

그녀와 테트리스 게임을 하거나

개드립이 난무하는 채팅 삼매경에 빠진 적도 있다.


그녀와의 인연은

내가 군입대를 하면서 자연스레 끝이 났다.

사지방이나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날

당시 많이 사용하던 MSN메신저 덕분에

그녀와 연락을 할 수 있었고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직을 했다고 했고,

방송은 진즉 그만두었다고...

나는 대학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언젠가 한번 울산에 가면 연락드리겠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전화통화였다.



언제고 떠올려도 100%의 행복감을

안겨주는 기억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그 후로 10년이 조금 지났을 것이다.

난데없는 복고 바람이 불었다.

오디션 붐이 일어나고

그 당시 생경한 음악인데 참 좋다고

과거의 명곡이 발굴되거나 리메이크되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럴 때마다

스무 살의 내가

랜선으로나마 오랜 기간 함께 했던

그녀가 떠올랐다.


위병소에서 밤하늘 보며 근무하던 날도

도서관에서 수험서 펼쳐놓고 공부하던 날도

찬 바람이 불던 거리를 홀로 걷던 날도


mp3가 들려주던 음악들은

오래도록 그녀를 기억하게 해 주었다.

멜론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내가 다운받아둔 mp3를 자주 듣다 보니

자연스레 그 시절의 음악이 애청되었던 덕분이다.


https://youtu.be/k3YfgXP-z8U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이한철의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라는

뮤직비디오를 추천해주었다.


내가 추천하고 그녀가 참 좋아했던 노래.


요즘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동영상에 넣을 bgm으로 많이 사용하나 보다.


에게는 여름날의 선선한 밤을 떠올리게 해주는

신나는 래가.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은

때로 힘이 된다.


끊어진 인연에 대한 감사함은

앞으로 만나게 될 인연들을 대함에 있어

커다란 자산이 되었다.


단지 같은 시간대에

랜선 너머로나마 연결되었다는 이유로

소소한 감정을 꽤나 오래도록 교류해봤다는  자산.


덕분에 처음 만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고 관심을 기울이는

스킬을 하나 장착한 채로 사회에 나갈 수 있었다.

그녀 덕분이다.


내게도 좋았던 기억이 있었구나.

앞으로도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이 순간이 좋았노라고 훗날 추억할 수 있기를.


그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나날이 희미해져감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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