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미모의 여자 선생님.
다정다감한 성격과는 갭이 있는 수학 담당.
소년미(!)가 넘쳐흐르는 남자 중학교에서 담임을 맡음.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캐릭터가
나의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그 해 3월의 첫 날을 기억한다.
짧게 자른 두발에 몸에 맞지 않는 교복 탓이었을까.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던 첫날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교문에 들어서자
성난 표정을 한 생활지도 선생님과 마주치고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 교실로 들어섰다.
불쾌함, 어색함, 답답함.
내 안에는 세 가지 감정이 혼재되어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 몇몇이 까불대며 떠들던 중에
교실 앞 문이 드르륵 열렸다.
젊은 여자가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들어와 교탁에 섰다.
반가워. 여러분의 담임을 맡게 된 S선생님이라고 해.
일순간 정적. 웅성대던 목소리들이 가라앉았다.
그녀가 자신을 담임이라고 소개하던 순간
나의 잡념은 사라지고 단 하나의 감정만 남아있었다.
기대감.
저 선생님과 함께라면 학교생활이 나쁘지는 않겠구나.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살면서 이런 인연을 자주 만났더라면 참 좋았을걸...
그녀와 함께할 1년이 무척이나 기대됐다.
비단 이런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오직 나 뿐 일리가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녀를 좋아했다.
학급에는 선생님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특별한 달란트를 가진 친구들이 몇 있었다.
리더십이 있는 친구는 반장이 되었고
손글씨가 예쁜 친구는 서무가 되었고
재치 있고 까불 거리는 친구는 관심을 독차지했고
성격이 거칠고 사고뭉치인 친구 또한
그 나름의 존재감을 내뿜었다.
평범하고 특출 난 게 없는 나는
그녀에게 어필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수업시간에 집중한 덕에
수학 점수는 순위권이었지만 전교권은 아니었고
성격 또한 크게 모나지 않은 중학생 A였다.
포청천 드라마를 보느라 오전 수업에 이따금 졸고
압수당한 만화책을 돌려받으러 교무실에 가끔 출입하는
아주 평범한 담당 학생.
그녀와 내가 특별할 수 있었던 건
'모둠 일기' 덕분이었다.
학생들을 그룹별로 묶어 모둠을 만들고
구성원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노트에 일기를 쓰면.
선생님은 그걸 읽고 코멘트를 달아주는 제도.
다른 친구들이 서너 줄 정도로 대충 썼다면
나는 거기에 진심이었던지라 한 면을 가득 채웠다.
선생님께서는 길게 글을 쓰는 만큼 길게 답변을 주셨고
나는 그때 글로 주고받는 소통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잔뜩 쓰고 나면
선생님께서 맞장구를 쳐주시고
본인의 생각을 짤막하게 남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한 수고를 들였던 일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 번이라도 했던가...
감정에 집중해서 글로나마 서툴게 기록하기.
좋아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길 좋아하는 습관.
글을 쓰는 취미가 그때 생겼다.
그녀가 칭찬해준 덕분이다.
생각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걱정은 하면 할수록 늘고
곧잘 엉뚱한 곳으로 튄단다.
그럴 때는 글로 써서 명확하게 감정을 남겨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부담 없이 선생님을 찾아와라.
언젠가 이런 답변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감격해서 일기장을 사진으로 찍어놨던 기억이 있다.
스마트폰은 커녕 디지털카메라조차 없던 시절의 일이다.
모둠 일기 외에도 혁신적인 학습활동(!)을 몇 가지 했는데
선생님 당신의 휴일을 쪼개서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첨단과학을 체험할 수 있던 LG 사이언스홀.
왕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인왕산 트레킹.
방학을 이용한 1박 2일 학교 캠프.
선생님을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순수한 14살 소년들.
이 녀석들이 타락(!)하는 데에는
불과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후일담이지만..
학교 캠프는 방학 때 이부자리와 식사 재료를 챙겨 와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고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하고
교실에서 1박을 하는 행사였다.
젊은 선생님 몇 분이 자체 기획했던 비공식 행사였다.
불 꺼진 빈 교실에서 칠판지우개 가져오기.
안내자의 목소리에 따라 눈감고 운동장 한 바퀴 돌기.
저녁식사 요리대회.
닭싸움과 웃음 참기. 진실게임 등등...
내게 행복한 유년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다면
아마도 이때쯤 일 것이다. 14세의 여름방학.
가끔 꿈에서도 나올 때가 있는데
잠에서 깨고 나면 서운한 마음이 들 정도로 아쉽다.
그녀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에서 볼법한 건축물이 그려진
그림엽서에 편지를 써주었다.
사진 속 장소가 파리의 개선문이라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시간은 금세 흐르더라.
겨울방학이 시작하던 날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담임을 맡은 게 처음이라고 했다. 고맙다며.
아마도 너희를 잊지 못할 거라며.
나 역시 마찬가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흉흉한 사건이 빈번한 변두리 지역의 중학교였지만
그녀가 담당한 우리 반은 사고가 없었다.
흉흉했던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같은 것들이.
학급문집 작성을 마지막 이벤트로
나는 14세의 겨울을 마치고 15세가 되었다.
그리고 중2병을 앓게 되었다.
그녀가 내게 준 선한 영향력은 중2병에 차츰 밀려났고
나는 게임과 만화에 탐닉하는 흔한 15세가 되었다.
그녀 이후로 내게 긍정적 영향을 준 교사는 없었다.
체벌과 폭언이 심심찮았고
어려워진 학업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은 급속도로 식어갔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전 날까지
그녀에게 변변한 감사인사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알게 됐다.
중학교는 순한 맛이었음을.
고등학교는 신라면 수준이고
대학교는 불닭볶음면 수준이었다.
내 학창 시절 중 유일하게 행복했던
중학교 1학년 시절이 그리웠다.
나의 Salad days.
단 하루라도 그 시절의 시간들을 다시 살아봤으면...
그녀가 내게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귀감이 되는 참스승이었다는 것.
내가 그녀를 한 번쯤 꼭 만나보고 싶다는 것.
이걸 깨달았을 때 이미 그녀는 다른 학교로 떠난 상태였고
그 시절은 휴대폰도 이메일도 없었다.
시티폰(!)이나 삐삐가 있었지만
학생 개개인에게 오픈될 수는 없는 일이고...
아이러브스쿨도, 다모임도, 싸이월드도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교육청에 스승 찾기를 신청해봤지만
면직한 교직자는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면직????
선생님께서는 정년은커녕 연금 수급 요건이 되는
20년 근무조차 채우지 않고 퇴임하셨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일상을 확보하셨노라고 예상한다.
그녀의 외모, 그녀의 품성, 그녀의 강의력이라면
교편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빛나는 존재일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은
사람 그 자체가 보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다른 의도 또한 없지 않다.
평범하고 어쩌면 찌질하기도 했던 14세의 내가
이제는 훌쩍 자라서 떳떳한 어른이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성장했노라고...
인사드리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내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었다는 고백 또한.
선생님.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