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기엔 너무 잔인하고, 운명이라기엔 너무 허무한
삶은 늘 제 길을 벗어난다. 단단히 그려졌다고 믿은 궤도에서 조금씩 밀려나더니, 어느 새 머물렀던 자리에는 미세한 흔적만을 남기고 뜻밖의 방향으로 번져간다. 웃음이 머문 순간에도 침묵은 어김없이 곁에 있었고, 손에 쥐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은 어느새 조용히 빠져나가 있었다. 기울어진 그릇처럼, 비어 있다는 사실은 한참이 지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제야 모든 것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흔들림은 아주 미세한 균열을 남긴다. 감각으로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 마음의 가장자리 어딘가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그 틈새로 바람이 불어오고, 말없이 내면의 감각들을 흔들어 깨운다. 손끝이 떨리고, 숨이 가늘어진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다가온다. 낯설지 않은 얼굴로,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불안은 그렇게 찾아온다. 뿌리도 이유도 없이, 단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흔든다.
불안은 때때로, 견디기 위한 조건처럼 어떤 균형을 요구한다. 우리는 괴리감을 감당하려 애쓰며, 나름의 질서를 그려 넣는다. 계절은 반복되어야 하고, 해는 매일 같은 자리에 떠올라야 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고—그래야 세상이 여전히 예측 가능하다고—스스로에게 되뇐다. 그렇게라도 해야,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감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맑던 하늘에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고, 가까웠던 이는 말없이 멀어진다. 기대는 틀어지고, 기다림은 닿지 못한 채 허공에 맴돈다. 뜻했던 방향은 조용히 차이가 발생하고, 삶은 우리가 그렸던 궤도에서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벗어난다. 우리는 그 차이를 인정하는 법을, 아주 느리게, 어쩌면 아직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가볍게 나아가고, 어떤 이는 제자리에 머문다. 가까웠던 관계는 아무런 징조 없이 끊기고, 불가능해 보였던 만남은 끝내 이어지기도 한다. 같은 시간을 지나왔는데, 도착한 풍경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세계는 처음부터, 어떤 계산도 기대도 받아들이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끝내 채워지지 않는 공백 앞에서, 설명되지 않는 감정 속에서, 여전히 어딘가를 바라보고 때로는 천천히 뒤돌아본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은 그들의 내부 어딘가에 조용히 눌어붙는다. 완전한 도착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누군가 지나온 자리는 반드시 자국으로 남는다.
우연이라 부르기엔 너무 잔혹하고, 운명이라기엔 공허한 일들 앞에서, 어떤 사람은 해석을 시도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곧 버티는 방식이 된다. 그 의미는 단일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고, 불균형한 실들이 엉겨 있는 직물처럼 구성된다. 결을 따라가 보면, 그 어떤 것도 완결된 형태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짜인 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긋남은 단순한 실패도, 순간의 착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돌아서야 닿는 지점이 있고, 사라져야 비로소 보이는 진실이 있다. 때로는, 거기에 없다는 사실이 곧 거기에 있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삶은 흐른다. 뚜렷한 방향도, 분명한 종착도 없이 이어지지만, 멈추는 법은 없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그 안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아도 발을 내딛고, 지나온 발자국을 마음속 어딘가에 새기는 일. 모든 것은 아주 작은 기울기의 차이만큼 달라진다. 누구는 조용히 사라지고, 또 누구는 오래 망설이다 끝내 손을 내민다. 어떤 결단은 절벽을 향하고, 또 어떤 시도는 상상 너머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틀린 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늘 불완전한 순간과 부족한 빛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야 하는 존재이니까.
정확한 시계도,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도 없다. 어떤 날은 아침과 밤이 뒤섞이고, 어떤 밤은 새벽을 품은 채 흘러간다. 감각은 흐려지고, 판단은 늦어진다. 우리는 물러서지도, 쉽게 나아가지도 못한 채 문 앞에 선다. 그 문은 조용히, 묵직한 침묵으로 우리를 마주한다. 열었을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혹은 그저 텅 빈 바람만 지나갈지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여전히 곁에 머물지, 이미 멀어졌는지도 알 수 없고,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도 분명하지 않다. 안개 낀 새벽처럼 가까운 거리조차 멀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발을 뗀다. 멈춰 서 있는 일이, 어쩌면 더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어제와 오늘 사이, 낮과 밤의 경계 위를 걷는다. 그 순간, 아주 작고 느린 변화가 시작된다.
예측할 수 없어도, 확신할 수 없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그 불투명한 시간을 통과하는 일. 아직 다 말해지지 않은 순간 속에서, 삶은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회전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조금씩 상충한다. 마음속에 그려둔 길에서, 품었던 다짐에서, 조심스레 그어둔 선에서. 세상은 변수이며, 예외이고, 흔들림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고, 몰랐던 존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슬처럼 이어진 인과는 분명 존재하지만, 너무 멀고 가늘어 끝까지 닿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운명처럼 보이는 우연, 우연처럼 보이는 인연으로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 우리가 손쓸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모든 것은 쉽게 기울고 흔들린다. 예측은 조용히 비껴나가고, 준비는 언제나 한 줌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불완전한 결 안에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중심을 잡고, 다시 조용히 일어선다. 끝내 남는 것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남는 그 조용한 용기. 그것이 우리가 가진 거의 유일한 힘이다.
삶은 형태 없이 흐른다. 손으로 가두려 하면 흘러나가고, 이해하려 할수록 더 깊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정의하려 애쓸수록 그 윤곽은 희미해지고, 닿을 듯 멀어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흐름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스쳐간 얼굴들, 사라진 목소리, 지나간 감각들. 삶은 흘러가며 우리 안의 무언가를 조금씩 다르게 만들고, 다시 또 흘러간다.
완벽하지 않은 오늘이 언젠가 충분한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알 수 없는 것들은, 아직 닫히지 않은 문이기 때문이다. 그 모름은 닫힌 벽이 아니라 열려 있는 틈이며, 불확실함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선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이 삶도 계속될 수 있다는 조용한 예감이다.
세상은 얽히고 겹친 흐름의 무늬다. 하나의 파동이 다른 파동과 만나 새로운 호흡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연결들이 삶의 결을 흔든다. 직접 닿지 않았지만 어딘가 분명히 이어진 관계들. 우리는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갈래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흔들린다. 모든 것을 예감할 수 없기에. 그러나 그 흔들림은 삶을 무너뜨리는 금이 아니라, 변화가 시작되는 틈이다. 이미 결정된 세계는 정지된 풍경이다. 아직 닫히지 않은 이 흐름 속에서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희미한 빛과 흐려진 경계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걸음으로. 그러나 더 깊은 믿음으로 걸어 나간다.
어긋남은 실패나 결핍이 아니라, 아직 닿지 못한 감각일 수 있다. 모든 것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세계는 편안하지만 무디다. 삶은 늘 틈에서 시작되고, 균열에서 질문이 자란다. 질문은 불안을 동반하고, 그 불안은 살아 있다는 조용한 증거가 된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끝까지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다. 불완전한 채로 머무는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존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침묵을 미덕이라 말한다. 고통을 말하는 이를 ‘유난스럽다’ 하고, 불의에 민감한 이를 ‘눈치 없다’고 비웃는다. 그렇게 많은 말들이 꺾인다. 우리는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해진다. 그렇게 매일 아주 작은 말들을 삼키는데 익숙해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루가 견딤의 방식이 되고, 침묵은 몸에 밴 습관처럼 굳어진다.
우리는 어느새 하루를 “괜찮아”라는 말로 넘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말은 점점 표정을 잃었고,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피로와 오래 묻힌 질문들이 엉켜 있다. 다정하게 묻는 이들은 줄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살아 있음의 증거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묻지 않은 질문들, 외면된 고통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진심이 우리를 천천히 갉아먹는다. 잊은 줄 알았던 상처는, 잊은 척하는 태도로 남는다. 하지만 모든 침묵이 존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침묵은 오래된 무관심이고, 닫힌 귀의 흔적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왜 나만 참아야 하지?”라는 물음은 파문처럼 번진다. 말은 그렇게, 한 사람의 결심이 또 다른 이의 숨결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전해진다.
그러니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정말로 괜찮은지. 아니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견디는 유일한 방식이었을 뿐인지. 그 질문의 의도는 다만 누군가가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는 일일 것이다. 쉽게 꺾이지 않도록 말의 온기를 지켜주는 일, 그 말이 오래 기다려도 닿을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주는 일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다정한 말보다 더 조용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설명이 아닌 기다림, 판단이 아닌 유예. 언제나 다정할 수는 없겠지만, 한 번 더 묻고, 조금 더 듣는 일. 그 조심스러운 숨결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아주 천천히 자란다. 침묵에 가려진 진심이 말이 되어,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는 빛이 된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다정함의 결을 잃고 있었다. 그 겨울, 나는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익숙한 공간에서도 금세 몸을 일으켰고, 마음은 자꾸만 비어 있는 자리를 향해 흘러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방 안에서 나는 종종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 자세로 오래 머물렀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멈춤이 아니라 아주 느린 흔들림이었다. 탈출과 복귀. 떠남과 되돌아옴. 매번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듯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실패했다는 감각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설명되지 않았고, 이름 붙여지지도 않았다. 다만 한 차례 스친 바람처럼 내 안을 지나가며 어딘가를 조용히 흔들었다. 실패는 내 삶의 가장 무거운 짐이 되었고, 소리 없이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감정은 형태를 잃었고, 생각들은 흩어졌다. 돌아보았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분명한 파열음 하나 없이, 작고 조용한 균열들이 내 안을 지나가며 삶의 결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어떤 실패는 삶을 뿌리째 흔들지만, 내가 겪은 실패는 더 조용하고, 더 내밀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없었고, 말은 허공에 머물렀다. 나는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법을, ‘아프다’고 인정하는 법을, ‘모르겠다’고 멈춰 서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아주 처음처럼. 그것은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다시 마음속 어딘가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세상은 어쩌면, 자신이 사라지는 감각과 맞닿아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생각 속에 오래 머물렀고, 그 고요한 틈에서 아주 느리게 다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다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눈을 감고도 누군가의 말을 떠올릴 수 있었고, 마음속 어디선가 다정했던 문장들이 되살아났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지나간 자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건넸다. 처음부터 다시, 누군가의 마음 곁에 머무는 일부터.
자기 자신을, 타인을, 삶의 방식과 견딤의 이유를 이해하려 애쓰는 모든 일들이 힘이 겨워졌다. 어쩌면 그 애씀 자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이해는 언제나 미완성의 형태로 남는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했다고 느낀 순간에도, 어딘가는 비어 있고 어딘가는 닫혀 있다. 그 비어 있는 자리, 닫힌 마음, 설명되지 못한 조각들. 그 틈새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무언가를 포기하며 살아간다. 웃는 척, 걷는 척, 괜찮은 척, 견디는 척. 어떤 날은 그런 척들이 몸보다 무거워진다.
그는 그 모든 ‘척’이라는 말들 사이에서 조용히 멈춰 서 있던 사람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거나, 누군가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러다가 문득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는 사람. 말이 나올 듯 말 듯 머뭇거리다가 입을 닫는 사람.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할 자신이 없다고, 굳이 설명해서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마음이 찾아오는 데에는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드라지게 아픈 일이나 큰 절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주 오랜 시간,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써온 사람. 표정을 조절하고, 침묵을 유지하고, 혼자일 때마저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사람.
그러다 어느 순간, 이유도 없이 멈춰 서게 되는 거다.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가슴 한쪽이 뻐근한데 어디서부터 아픈 건지 짚을 수 없는 날. 손끝에 감각이 남아 있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느낌. 그래서 그는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지도 모른다. 지친 것 같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자꾸 마음이 흔들리고, 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닌 일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고.
그 말은 무겁지 않았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래 묵힌 문장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채 오래도록 마음속을 떠돌다 끝내 바깥으로 밀려나온 말 같았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사람은 조용히 멈춘다.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그 안에서 혼자 조용히 멈춰 선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걷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 걷는 걸음엔 이전과는 다른 무늬가 남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문장 하나가, 몸속 어딘가에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어떤 고통은 쉽게 언어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 고통의 결을 조심스럽게 더듬으며 말하려 노력할 뿐이다. 살아 있다는 건, 어쩌면 그런 일이었다.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입을 여는 일. 닿지 않을 귀를 향해 손을 뻗는 일. 그 무력한 움직임 속에서도 우리는 무너지며 견디고, 다시 살아가는 중이었다.
불안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이 흔들릴 때 생기는 미세한 진동이었다. 그 진동은 삶의 구조를 조금씩 허물었고, 우리는 그 틈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불안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마주해야 할 진실이었다. 두려워지는 건, 사라지지 않으려는 증거였다.
기억은 항상 발자국을 남기지는 않는다. 함께한 시간이 분명히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 남은 이야기들은 끝내 말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말들은, 소리 없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가장 조용히 살아온 사람이,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때로 기억은, 우리가 무엇을 견뎌야 했는지를 말없이 알려준다. 불안은 여전히 무겁고 하루를 짓누르지만, 나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망설이며.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두렵다”고 털어놓고, 때로는 “모르겠다”고 멈추는 일. 그 모든 문장 속에,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어느 날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말이 된다. 마치,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낯선 사람처럼. 작고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는 서로를 흔들고, 서로를 붙잡으며, 그렇게 여전히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