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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Oct 07. 2022

죽도록 뛰어왔는데 또 뛰라구요?

경춘선 숲길에서 들깨 칼국수집을 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살던 집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지으셨어요.

집을 짓는 동안 안 쓰는 짐은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온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지요.

아버지 엄마 큰 남동생 올케 조카 둘 작은 남동생 이렇게 일곱 식구가 건물을 다 올릴 동안

저희 집에서 지내게 되었죠.

순백의 목련이 예쁘게 피던 2층 집에서 살 때였어요. 갑자기 네 식구 살다가 부모님 동생 조카까지 11명의 대식구가 되었어요.     



= 갑자기 대가족으로 변해버렸답니다



70이 된 아버지는 집을 짓는 동안 새벽에 제일 먼저 현장에 출근하시고 마무리가 다 되는걸 보고서야 퇴근하셨어요. 공사하시는 감독님이 집이 다 지어지는 5개월 동안 아버지를 겪어 보시고 감탄을 하셨어요.      

“어르신 참 대단하세요. 존경스럽습니다”라고요.    


  

아버지는 말씀이 별로 없는 분이셨어요. 술 한 잔이 들어가야 살아온 얘기를 들을 수 있었죠.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오신 후 고생도 많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1년 전까지 일하실 만큼 성실하셨어요. 아버지의 말씀에는 살아가는 데 참고가 될  지혜의 말씀이 많았어요. 크고 작은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롤러코스트를 타며 살아온 산 증인의 목소리이니까요.     


  

아버지가 잘 나갈 때는 자가용을 타고 학교에 다녔어요. 그러다 바닥으로 떨어질 때면, 늘 집안이 시끄러웠어요. 자다가 잠이 깰 정도로 두 분이 옥신각신 하시며 엄마와 많이 다투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때는 새눈을 뜬채 자는척하고 일어나지 못했어요.


   

아버지를 무척 따랐기에 제일 존경하는 분을 꼽아 보라면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언니 둘은 시집가고 큰 동생은 군대 복무 중이었고 막내는 고등학생이었을 때였어요. 주말 저녁에 아버지랑 8시부터 저녁을 먹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새벽 4시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어요. 엄마는 "밤이 늦었는데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며 성화를 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께 밤새 인문학 강의를 들었던 것 같아요. 한때 한문강사를 하실 만큼 모르는 한자가 없으셨고 필체가 유독 뛰어나셨던 아버지께 동생들과 하는 일과가 있었어요.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 앞에 쭈욱 무릎 꿇고 사자소학을 배웠어요. 몸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父生我身(부생 아신) 하시고 母育我身(모육아신) 하시다”

지금도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몸을 흔들흔들하며 소학이니 천자문을 읽었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출처: https://www.cyberseodang.or.kr/webtoon/webtoon_new.asp?writercode=yoon&workcode=saja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국숫집     



2002년 8월에 남편이 불완전한 자세에서 간판을 달다가 허리를 다쳤어요. 디스크 판정을 받았죠.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수술은 두렵기도 해서 조금 있어보자며 수술 날짜를 연기한 채 운동으로 치료를 해보자 버티고 있었지요. 예기치 않은 일은 그렇게 닥쳐오네요.걱정스러운 마음과 달리 시간은 잘도 흘러 아버지의 3층 건물은 거의 다 지어지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국수 종류를 참 좋아하셨어요. 오죽하면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드신 음식도 자장면이었을까요.  어느날 인가 가끔씩 “이 집은 국숫집을 했으면 좋겠다”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워낙에 국수를 좋아하시니 그런가 보다 했었죠. 남편이 디스크 판정받으면서 “내가 뭐라도 해야 되나 보다”라고 고민이 많았어요. 자연스레 아버지의 첫 세입자가 되어 한 번도 해보지도 않은 식당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운명처럼 국숫집을 하게 된 거지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한 번에 덜컥 붙을 정도로 음식 하는 건 좋아했어요. 하지만 우리 식구 입맛을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여러 사람의 입맛을 맞추는 식당을 어떻게 하겠어요. 짜다 싱겁다 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어떻게 맞출까 처음엔 엄두도 안 났습니다. 국숫집을 하리라고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21년째 하고 있으니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봅니다.      




딸의 이름을 담은 바지락 칼국수     





신가네는 바지락 칼국수 하나의 메뉴로 태어났어요. 예전에 아이들을 10명도 낳았고 5명도 낳았고 3명 낳다가 이제는 2명 그리고 1명. 점점 줄어들고 있네요. 저희 메뉴는 거꾸로 바지락 칼국수 하나로 시작해서 파전까지 해서 제가 낳은 메뉴 아이들이 6명이 됐어요.   

바지락 칼국수를 우리 큰딸에 비유해요. 처음 만든 메뉴라서 애정도 많습니다.

첫 딸 신선혜가 딸아이 이름이지요. 신선혜처럼 신선한 바지락이 생명인 신가네 바지락 칼국수는 그렇게 탄생했어요      



국숫집을 하겠다고 어쩌다 사장이 되어 용감하게 시작했지만, 저의 가게처럼 뒷골목 국숫집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40그릇도 못 팔고 육수를 다 버리기도 했었죠. 육수는  그날 끓인 것으로 해야만 시원한 바지락 본연의 맛이 살아나거든요. 그날 못 판 육수는 과감히 하수구로 내려 보내요. 아까워서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그렇게 신가네 바지락 칼국수로 사업자를 냈었던 날 2002년 11월 1일부터 바지락 칼국수 하나를 정성스럽게 키웠습니다. 그다음 해 둘째가 태어났어요. 보리밥입니다.  


         

시지프스처럼, 슈호프처럼


21년 전 처음, 어쩌다 초보 사장이 되어 식당을 처음 할 때가 생각납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육수 끓이는 솥에 불을 켜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열무를 다듬어 열무김치를 하고 반죽을 해서 면을 뽑고, 고기를 삶고 설거지하고 식재료를 사 오고 등등 하루 종일 1 5역을 했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사장은 5역은 해야 한다고요. 맞아요 그렇게 해야 돌아가는 일이 식당이에요. 특히 처음 식당을 차려 놓았으니 경험도 없는 데다 노하우도 없었지요. 손님 또한 없었고요. 


 

손님이 많아질 때까지 이것저것 5인의 몫을 다 해내야 했어요. 종일 서빙을 하고 청소를 마치고 집에 12시나 되어 퇴근을 한 후 집안일 조금 하고 나면 새벽 한 시였어요. 다음날 아침 눈을 떴는데 장거리 산행을 하고 난 다음날과 같았어요.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프고 젖은 솜이불처럼 천근만근에 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또 출근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일을 또 해야 했어요. 시지프스 신화의 시지프스처럼 굴러 떨어진 돌을 다시 밀어 올리듯 또 하루를 그렇게 밀어 올려야만 했어요. 언제 끝날지 모를 일상이었어요.

너무나 힘든 나머지 아이고소리가 뼈 마디마디에서 저절로 나왔어요.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내가 불쌍해서, 아니 나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울면서 말했죠.     



“어떻게 사람이 매일 이렇게 살아!


빨리 달려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 좀 쉬어야 하는데, 또 뛰어야 하는 거예요. 가게문을 열어야 하니까요. 쉬는 날도 없이 16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근무시간. 일하는 시간이 길면 일의 강도라도 낮아야 하는데 식당일은 업무강도까지 높았어요.

죽어라 하고 달려왔는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또다시 뛰어야 해!"라고 현실은 저에게 말합니다.   



출처: 시지프의 신화 -네이버 블로그 [레고 Review]


다그치는 현실에 맞짱 뜨기로 했어요. 시지프스처럼 묵묵히 감내하는 것이 아닌 솔제니친의 소설『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주인공 슈호프처럼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자고요. 수용소에 끌려간 슈호프가 신명을 바쳐 벽돌 쌓기 하는 것처럼 저의 일 역시 윤이 나도록 빛나게 하자고요.

시지프스처럼 묵묵히, 슈호프처럼 일의 의미를 찾기로 결심했지요.



어느 날 퇴근길에 10년 넘게 저를 도와주는 박 언니가 10시에 퇴근하면서 잠자고 올게~~ ”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섬광처럼 생각이 떠올랐어요.      


"맞아! 지금 가계 시계가 12시에 가까우니 집에 올라가서 잠자고 내일 눈뜨면 8시에 다시 내려와야
박 언니를 10시에 만나는구나! 잠만 집에서 자고 여기서 16시간을 있는구나.
이런 게 식당이구나. 자영업 하는 사람의 삶이 이렇구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의 루틴은 똑같아요. 집은 그냥 베드 타임 용도로만 사용해요. 

잠만 자고 오는 거지요. 우리 직원들에게 퇴근할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잠자고 내일 만나요.~~”          



내 가족에게 먹이는 마음으로 오래 일을 하려고 해요     



어제 창고 정리한다고 안 쓰던 근육을 썼더니 오늘 아침 눈을 뜨자 밀려오는 어깨 고통이 처음 식당 할 때를 생각나게 했어요.


커피가 몸에 인이 박히듯. 일이 몸에 인이 박히듯.

내 몸이 일에 최적화되어 몸에 인이 박히고 몸으로 알게 되기까지 21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오늘도 눈만 뜨면 가게로 향해요. 힘은 들지만 일이 없으면 삶이 지루할 것 같기는 해요.     


 

길게 일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희 가게에 오셔서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신가네 국숫집을 일터로 생각하는 직원들을 위해 장수하는 가게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기쁘게 일하고 있어요. 제가 즐거워야 정성이 담긴 음식으로 사람들을 대접할 수 있으니까요.

내 식구에게 먹일 음식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하지요. 


저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기차가 다녔던 경춘선 숲길에서
들깨칼국수집 식당을 하는 아줌마입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힘을 내봅니다.   
일상이 크리스마스 축제처럼 기쁜 나날이 되도록이요.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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