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의 여행법

by 열혈인생

‘여행은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그런 점이 여행의 묘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일정 시간마다 체력이 점점 줄어드는 디버프가 걸려있는 것 같은 나 같은 사람은 여행용 짐을 쌀 때마다 그냥 집을 통째로 들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집순이다.


아침 9시에 나가서 밤 9시에 돌아오는 분 단위로 쪼갠 여행 계획을 세워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숙소 바닥이 따듯해서 내 집처럼 편안히 누워있다 오는 힐링여행, 휴식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유전자의 영향으로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거나 추진하는 사람이 없다. 여름휴가도 반나절밖에 나가 놀다가 돌아오거나 집 근처에 잠시 산책 갔다가 돌아오는 것은 즐기는 ‘잠은 집에서’ 주의다.


하지만 예외인 곳이 우리 동네 대운산 자연휴양림이다. 거리가 집에서 자가용으로 20분 미만으로 가까운 데다 휴양림의 경치와 공기가 좋고 가격마저 저렴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봄, 가을이면 꼭 대운산자연휴양림을 찾는다.


가을을 맞아 가족과 함께 대운산 휴양림을 찾을 때면 마치 집인 양 익숙하게 펜션의 문을 열고 짐을 정리한 후 곧장 난방을 틀고 바닥에 이불을 깐다. 차가워진 가을 공기와 함께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들이 가득 찬 펜션 창문 앞에 드러누워 1~2시간 정도 따뜻한 이불속에서 마냥 쉰다.


휴양림의 상쾌한 공기와 감탄을 자아내는 단풍의 정경에도 우리 식들은 아무도 밖에 나갈 생각이 없다.

놀러 온 목적이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쉬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힘 안 들이고 심신이 평안한 상태로 즐기는 것.


그게 나에겐 재밌게 놀다 가는 것이다.


뛰어논다거나, 노느라 바쁘다는 수식어는 집순이의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들고 온 블루투스 스피커에 스마트폰을 연결하고, 잔잔한 노래들만 뽑은 재생목록을 틀어놓으니 완벽한 힐링 여행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창밖으로 보이는 대운산의 풍경까지 더해지니 괜히 감성이 차올라서 노래에 맞춰 발을 까딱거렸다.


사 온 간식은 이불속에서 벌써 동을 내고, 저녁 만찬을 준비한다. 메뉴는 집에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먹으면 또 색다른 느낌이다. 음식의 맛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집에서 먹는 맛과 여행 와서 먹는 맛은 너무나 다른 것 같다. 저녁 시간에 찾아와 음식을 달라는 산 고양이 들도 떠나가고, 깜깜한 대운산에 풀벌레 소리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이불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있으면 여행 만족도가 최고치를 찍는다.

늘 꿈꾸는 집의 로망은 펜션 같은 전원주택이지만 내 집이 아닌 숲 속 펜션은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역시 내겐 조금 불편하다. 나는 여전히 자기 집이 제일 편하고 좋은 집순이지만, 어렸을 때의 꿈같은 나무집에서 하룻밤 머무르는 건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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