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 말하지 마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뻔히 다 알겠으니까
자기 의견을 말할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빌어 얘기하는 사람이 꼭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당신을 이런저런 사람이라고 얘기하더라", "내가 좋아서 당신과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나보고 '네가 호구냐?'라고 묻더라"라는 식이다.
속이 뻔히 보이는 말에 나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결론을 재차 물어보곤 하는데 직설적으로는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류들과 대화하면 당시에는 답답하고, 뒤돌아서면 찜찜한 마음으로 계속 되뇌게 되는데, 둘러둘러 얘기하는 게 나를 위한 건지 자신의 천사표 이미지를 위한 건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어릴적 겉과 속이 다른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매우 격멸하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진심으로 친밀도를 쌓을 수 없는 사람은 아예 안 만나곤 했다. 그때는 철이 없었는지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으려 무척 애썼고. 대인관계를 모 아니면 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경험이 쌓이면서 사람의 관계는 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리테스트를 통해 사람의 성향은 다양하게 분류 정의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직설적인 내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둘러둘러 얘기하는 사람이 잘못인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타고 태어난 유전자적 요인이거나 자라온 환경이 만든 결과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기엔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기에 결국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는 모 아니면 도가 아닌 가족, 친인척, 경조사 챙기는 사람, 비즈니스 파트너, 인사나 간단한 대화를 하는 사람, 안면만 있는 사람 등 내 마음속에는 6가지 이상의 대인관계 분류표가 있다.
그에 따라 형식적인 인사와 질문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언제 밥 한번 먹자는 국민 인사말도 가끔 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양심상 옳다고 생각하지만 내 양심상 옳은 것이 상대에게도 옳은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통념 안에서 형식적인 말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나는 소위 말하는 사회에 적응해서 어우러져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지만 사람을 만나다 보면 노력해도 좀처럼 좁힐 수 없는 거리와 벽을 느낄 때가 있는데, 노력했음에도 벽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을 나와는 다른 종족으로 인식해버리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 더 노력하고 기대하며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나에게 편안함과 여유를 선물한다.
마음속의 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마음과는 상관없이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것.
이것이야 말로 엄청난 생각과 에너지가 필요한 진짜 어른들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