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자부심
오늘은 본격적으로 질문을 먼저 해보겠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예술가가 그린 한 여성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고 말로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누드화든, 어떤 장르든 상관없습니다.
반은 농담이지만, 당신이 상상한 그 여성에 대해선 진심입니다.
네. 이해합니다. 처음엔 당황하거나 난감해할 수 있겠지만, 당신은 이야기할 것입니다. 취향에 맞춰 완만한 에스 곡선 아니면 급격한 능선의 곡선이거나, 부드럽고 화사하고 밝은 톤의 피부결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시겠죠?
저는 여성의 신체를 부드러운 곡선의 라인과 연약한 근육, 하얀 피부결이 특징을 기본적으로 잘 담아내는 예술가들의 작품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만 해도 풍만한 몸과 부드럽고 화사한 색채감으로 여성을 표현했던 루벤스가 있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빛과 어둠을 통해 화면을 극적으로 연출한 카라바조 모두 여성들의 신체를 하얗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하는 화가였습니다.
바로크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 시대는 어땠을까요?
'부활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름의 르네상스는 실제로 인문학과 과학 문명의 꽃을 피웠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르네상스 사람들은 과거 중세의 문화와 분위기에 익숙해있었고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말년에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는 풍족함을 누리게 되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우울하고 시대종말론적인 드로잉을 즐겨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홍수가 일어나 도시가 물에 잠기는 장면이나, 기괴하게 생긴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게 그들을 찾아가 인물 드로잉을 그리고 했죠. 성스러운 성경 속 인물과 아름답고 고전적인 초상화, 풍경을 그려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입니다.
그런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여성을 묘사할 때 일반적인 여성의 신체 특징을 묘사했습니다. 중세의 양식과 지성적 느낌이 어우러진 여성의 모습으로 우아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외곽의 형태와 함께 자애롭고 선한 여성상을 중심으로 표현했죠. 루벤스의 작품처럼 풍만한 느낌이 들지만, 훨씬 더 지성적이고 자비로운 느낌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의 고유한 신체적 성격을 일반적으로 담아낸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린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쌍벽을 이루며 경쟁했던 예술가, 미켈란젤로입니다. 그는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양식으로 표현된 여성들과 완전히 다른 누드, 여성화를 그렸습니다. 조각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는 회화의 우수성을 강조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부드럽고 우아한 선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다른 근육질의 남성성과 다부진 소년미를 뿜어내는 강인한 신체의 구조를 탐미했던 예술가였죠. 심지어 미켈란젤로 작품 속의 여성들은 마치 그가 조각한 남성들만큼이나 단단한 근육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여성화는 리비아, 에리트리아, 델피 무녀가 대표적입니다.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정화로 그려진 무녀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표현한 여성의 신체가 명확히 남성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 어디에도 제가 상상하는 여성의 부드러움, 풍만함, 섹시미, 성스럽고 헌신적 이미지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무녀의 팔에서 울퉁불퉁 튀어나오는 남성적 근육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덩치는 그야말로 그녀 옆에 그려진 어린아이들을 압도할 만큼 큽니다.
도대체 미켈란젤로가 여성을 남성처럼 묘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회화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신체를 각각 표현할 때 큰 기술적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눈에 보이는 피부 표면의 근육을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거나 강하게 표현하거나 하는 정도, 외곽선에서 드러나는 선의 느낌 정도로 분위기가 강조되는 편입니다. 하지만 당시 조각의 영역에서는 남녀의 신체 접근 방식이 매우 다르다고 합니다. 남성의 신체를 조각하는 것은 여성의 신체를 조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죠. 또 조각의 경우 피부 아래의 근육과 힘줄 및 등 상당한 신체 해부학적 지식과 해석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에게는 스스로 조각가이자 예술가의 자부심이 굉장했는데, 남성의 신체를 조각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느낀 만족과 기쁨이 매우 컸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 상상력을 담아봅니다.
이처럼 단순한 스케일의 차이도 있었지만, 더 깊은 미학적, 사회적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적 관념과 가부장적 가치관이 우세했던 시절에 예술 세계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신체적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조각에서 남성의 신체가 여성보다 더 완벽한 조형미를 갖춘다고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죠. 남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미적 취향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미켈란젤로도 외모콤플렉스가 심했던 탓에 미소년과 건장한 체격의 남성의 신체를 좋아했고 그게 여성의 신체 표현에 반영된 게 아니었을까요?
또 하나의 추론은 동성애 입니다. 르네상스에도 새로운 제3의 성이라 불리우는 동성애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알릴 수 없었을 뿐, 실제로 비밀리에 동성애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금욕주의자이자 경건한 종교인으로 알려진 미켈란젤로는 사회적으로 죄악시하던 동성애를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처럼 보관하고 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뜻이라기 보다, 동성애자들의 판도라 상자를 알고 있는 남자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하는 거죠. 이처럼 그의 독특한 여성의 표현을 보고 있으면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말없는 미켈란젤로만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