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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풍경, 북유럽의 르네상스

브뤼겔, 얀반에이크

by 미키

2023년 6월에 <거장의 시선, 사람으로 향하다>에 관한 내용으로 북유럽 르네상스에 관한 전시회가 열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1500년-1600년 대에 등장했던는 르네상스의 작품을 다루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인간의 지성을 최고의 덕으로 여겼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지금처럼 기술 혁명이 일어나려는 움직임과 동시에 인간중심적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인류의 지성이 폭풍처럼 성장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다시(re) 태어남(naissance)'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부활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죠.



두 갈래로 흐르는 르네상스의 강물

르네상스는 하나의 통일된 흐름이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와 북유럽은 각각 다른 문화적 토양 위에서 서로 다른 예술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거장들이 종교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그들은 인체 비례미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으며, 영웅적인 남성 누드를 최상의 미로 여겼습니다.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미켈란젤로는 다비드 상을 통해 해부학적 구조와 인체 비례미에 대한 이상적 관념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불멸의 걸작을 남겼습니다.

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Lady with an Ermine> 1489
미켈란젤로의 <Statue of David> 1501~1504, Galleria dell'Accademia



반면, 북유럽 지역에서의 예술은 이상주의를 추구했던 이탈리아와 다르게 실제로 보이는 대상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이를 정직한 묘사법이라 하는데,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나타내는 묘사법을 말합니다.


예로 들면,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은 농부들의 삶, 서민들의 삶을 풍자적으로 다루면서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예술가로 유명합니다. <농부의 결혼식> 작품 안에는 무려 40명 가까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결혼식인데요, 주인공인 신부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벽에 걸린 녹색 천 앞에서 앉아 있는 모습인데요. 신성함이나 화려한 신부의 모습이 아닌 시끌벅적한 축제 같은 공동체적 분위기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지금도 결혼식 장에 가면 시끌벅적한 예식장에서 뷔페 식사까지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브뤼겔의 작품이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1_(23).png <The Peasant Wedding> 1567-68년경, Kunsthistorisches Museum



브뤼겔을 대표하는 유명한 작품은 '월령서(The Months)' 시리즈로, 각 달의 생활과 자연의 변화를 묘사한 6점의 연작입니다. 그중에 제가 좋아하는 작품 〈눈 속의 사냥꾼(The Hunters in the Snow)〉을 가져왔습니다. 사각형의 정해진 캔버스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넘어서 확장적 공간 연출을 표현한 구도감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오른쪽에 눈썰매를 타는 사람들의 풍경과 그 너머의 설산의 풍경들이 마치 동양화의 확장적 여백처럼 그 너머를 상상하게 만들죠. 계절과 인간의 관계, 자연의 순환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작은 서사를 담은 시적인 그림이 틀림없습니다.


브뤼겔.jpg The Hunters in the Snow, 1565, Kunsthistorisches Museum (오스트리아)


가을 풍경을 묘사한 작품 <수확하는 사람들(The Harvesters)>를 살펴볼까요? 한국에서 가을은 9월부터 시작이지만, 북유럽은 7-8월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여름일 때 북유럽은 가을이 시작됩니다. 농사를 짓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봄에 열심히 씨 뿌리고 농작한 수고를 보상받는 계절입니다.


20250322_220556.png <The Harvesters>, 1565, Metropolitan Museum of Art


잘 익은 금빛 밀밭의 색감, 추수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일하는 게 아닙니다. 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죠. 낮잠을 자는 사람, 밥을 먹는 사람, 허드렛일을 돕는 사람 등등 다양한 역할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묘사했습니다. 왼쪽 상단 부분에는 밀밭 너머로 보이는 아득한 자연 풍경을 스푸마토 기법처럼 뿌옇게 표현했는데 브뤼겔의 뛰어난 색채 원근법과 선원근법의 실력이 느껴집니다.


세속 속의 신성함을 찾아서

브뤼겔뿐만 아니라, 북유럽에는 자연과 주변을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예술작품들이 많습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c.1390~1441) 도 빼놓을 수가 없죠. 대표적으로 얀반에이크의 <아널드 피니 부부의 결혼식>의 작품은 그 안에 담긴 소재들마다 상징이 있습니다. 그 안에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이 잘 담겨 있는 거죠. 두 사람이 신발을 벗은 모습, 테이블 위에 놓인 오렌지, 거울에 비친 사람들 등 저마다 다양한 상징적 암시를 해두는 얀 반 에이크는 이 두 사람이 부부의 결실을 맺는 것이 당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짐작케 하게 합니다. 붉은색의 침대는 섹스와 자손을 상징하고, 신발을 벗었음은 신성함을 상징하죠. 개 한 마리는 충절을 뜻합니다. 거울 속에 비친 사람들은 이 결혼식의 증인을 상징하고, 샹들리에는 오로지 하나의 촛불만 켜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를 상징하는 화려한 물건들의 사실적 표현,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소재들의 싱그러운 느낌마저 각 물체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특징을 세밀하면서도 정확하게 포착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정도면 얀 반 에이크는 ‘세속 속의 신성’을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했던 예술가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얀 반 에이크 <The Arnolfini Portrait>


제약이 빚어낸 창의성

북유럽 사람들에게 신앙은 이탈리아만큼이나 경건하지 않았을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북유럽은 신성한 종교적 가치관을 위해 철저하게 자유를 통제를 했던 나라였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북유럽(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등)은 개신교가 강해진 나라입니다. 칼뱅주의에서는 특히 십자가, 성상, 예수 형상화 등이 제한되거나 금지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회화나 조각으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종교 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처럼 종교적 이유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정물화, 풍경화, 장르화(서민들의 일상) 등이 발달하게 된 것이죠. 어려운 환경이 예술가들의 눈을 더 넓게 열어두게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양대 산맥으로 흘러갔던 이탈리아와 북유럽 르네상스는 훗날 바로크 양식에서도 그 영향을 지엽적으로 줍니다. 세분화되어 이탈리아, 플랑드르,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프랑스로 나눠져 그 나라의 문화와 정치, 경제의 변화와 맞물려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탈리아는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감정적이며 극적이 요소가 결합된 바로크 미술 양식이 탄생했으며, 플랑드르는 다른 스타일의 미술 전성기를 맞이하죠. 바로 램브란트, 할스, 루이스달 거장들이 바로크 양식이라는 무대의 커튼을 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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